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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2-10-20 22:54
[출판/공연] <최후의 인간>출간
 글쓴이 : 전영숙기자
 

“이 작품으로 인해 서양 문학사는 다시 씌어지고 있다”
도서출판 b에서 장-바티스트 쿠쟁 드 그랭빌의 〈최후의 인간〉을 번역하여 출간했다. 
우리에게 익숙한 제목인 〈최후의 인간〉을 되짚어 떠올리자면, 1816년 바이런은 시 「어둠」에서 세계의 종말과 관련해 신학적 차원이 아니라 파국의 사회적, 도덕적 결과에 방점을 두고 최후의 인간을 묘사한 바 있다. 또한 동시대의 작가 메리 셸리는 1825년 장편소설 〈최후의 인간〉에서 지구상에 남은 마지막 인간을 통해 종말의 비전을 보여주었던 바가 있다.

우리는 서구 문학의 무대에서 최초로 ‘최후의 인간’이라는 형상의 등장을 영국의 낭만주의 문학에서 찾아왔다. 그러나 서구 문학 최초로 ‘최후의 인간’이 탄생한 곳은 영국이 아니라 프랑스였다. 공식적으로 최초의 ‘최후의 인간’ 창시자가 된 사람은 다름 아닌 ‘최후의 인간’이라는 제목을 단 미완의 원고를 남겨둔 채 자살로 생을 마감한 프랑스인 전직 가톨릭 신부 장-바티스트-쿠쟁 드 그랭빌이었다. 프랑스 대혁명의 회오리 속에서 저자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생전에 출간되지 못했던 〈최후의 인간〉은 1805년 작가 사후 곧바로 서문 없이 출판되었다가 1811년 샤를 노디에의 서문과 함께 재간행되었지만, 오랫동안 평단과 독자의 관심 밖에 놓여 있었다. 흥미로운 것은 저자의 죽음 이후 우여곡절 끝에 빛을 본 바로 이 작품이 바이런의 「어둠」과 메리 셸리의 〈최후의 인간〉 탄생에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이다.

그랭빌의 〈최후의 인간〉이 발간된 이듬해인 1806년 영국에서 〈최후의 인간, 또는 오메가루스와 시데리아, 미래의 로맨스〉라는 제목의 영어 작품이 익명으로 출간된다. 이 작품은 출간 직후부터 영국의 공공 도서관을 통해 유통되면서 수많은 모작과 패러디들을 만들어냈고, 바이런과 메리 셸리 같은 작가들에게도 영감을 주었을 뿐만 아니라, 영국 낭만주의 문학 연구자들로부터 상당한 관심을 받았다.

이들 작품 간의 관계가 밝혀진 것은 20세기 후반 SF 연구 분야에서 일어난 우연 덕분이다. 영국의 SF 연구자 I. F. 클라크가 1961년 출간한 〈미래의 이야기〉에서 작자 미상의 영어 텍스트를 인용했고, 프랑스의 SF 연구자 피에르 베르생이 1972년 자신의 저서 〈유토피아, 기이한 여행, 과학소설의 백과사전〉에서 그랭빌의 프랑스어 텍스트를 인용했는데, 평소 서로의 연구에 관심을 두던 차에 두 텍스트의 긴밀한 유사성을 알아본 것이다. 그 후 두 사람은 공동 연구를 통해 메리 셸리의 〈최후의 인간〉에 영감을 준 것으로 종종 인용되던 작자 미상의 1806년 영어 소설이 그랭빌이 프랑스어로 쓴 작품의 해적판 번역이었음을 밝혀냈다.

1970년대 들어서 그랭빌의 작품에 관한 연구가 활발해지면서 작품 안에 담긴 SF적 요소들, 예컨대 천문학과의 관계, 다른 행성에서의 삶의 가능성, 미친 과학자의 비유, 미래의 테크놀로지, 그리고 무엇보다 인구가 지구의 자원을 고갈시킨 데서 비롯된 기후와 인구 재앙을 골자로 하는 세속적 아포칼립스 개념 등에 주목한 연구자들이 많아지면서 시기적으로 메리 셸리의 작품에 앞서는 이 작품에 SF 문학의 효시라는 명칭을 돌려주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1811년판 서문에서 샤를 노디에는 〈최후의 인간〉이라는 작품에 대해 독자들이 무감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를 찾아낸다. “그랭빌 씨의 사망 직후 어떠한 서문 격의 글도 없이 잘 정렬되지 못한 종이에 인쇄되어 출간된 탓에 어떤 이들은 이 작품을 그저 시시한 소설로만 생각했고 그 결과 작품은 판단 능력이 없는 일군의 독자들 수중에 떨어지게 되었다. 다른 이들은 이 작품에서 언뜻 아름다운 서사시의 밑그림을 알아보긴 했으나, 출간 당시의 상태로는 엄밀한 비평의 대상이 되기에는 너무나 불완전했다.” 그럼에도 그 진가를 알아본 “사람들이 하는 말에 따르면, 그랭빌 씨는 나이 열여섯에 〈최후의 인간〉을 처음으로 구상했는데, 유감스러운 죽음이 그를 덮쳤던 무렵이 되어서야 이 작품을 완성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게 되었다고 한다. 말하자면 출간된 판본은 그가 막 운문으로 작성하기 시작했던 작품의 위대하고 훌륭한 밑그림에 지나지 않는 것이었다. 따라서 우리가 지금 읽고 있는 것은 끔찍한 파국이 문학에서 앗아가 버린, 그 진가를 인정받지 못했던 위대한 인물로부터 남은 것 전부일 뿐이다.”
저자 : 장 바티스트 쿠쟁 드 그랭빌
프랑스 작가. 1746년 르아브르에서 태어나 1805년 아미엥에서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철학자이자 시인이요 사제였던 그랭빌은 무엇보다 그의 사후 출간된 작품 <최후의 인간>을 통해 세계의 종말을 목도한 최후의 인간의 형상을 창조함으로써 SF문학의 선구자로 자리매김한다.
번역: 신정아
한국외국어대학교와 동대학원을 졸업하고 프랑스 파리 3대학에서 「17~18세기 라신과 그 작품 수용에 관한 사회 시학적 연구」로 문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파리 고등통번역학교(ESIT) 번역학부 한불과를 졸업했다. 현재 한국외국어대학교 프랑스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지은 책으로는 <바로크>, <노랑신호등>(공저)이 있고, 옮긴 책으로는 <프랑스 연극 미학>(공역), <번역가의 초상-남성 번역가 편>, <페드르와 이폴리트>, <신앙과 지식, 세기와 용서>(공역), <수전노 외> 등이 있다.
최후의 인간|저자 장 바티스트 쿠쟁 드 그랭빌|역자 신정아|도서 출판b|값1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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