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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3-02-17 00:00
[불교어록방] 성도절
 글쓴이 : 편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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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제풀이

성도절 : 음력 12월 8일. 석존이 우주의 진리를 깨달으신 날을 기념함.

보리수 : 도수. 각수라 번역. 도량수라고도 함.
부처님이 정각을 이루시던 곳을 덮었던 나무. 이 나무는 부처님에 따라서 일정치 않음. 석가모니불의 보리수는 필발라나무. 미륵불의 보리수는 나가수(용화수)라 함.

정각 : 등정각의 준말. 부처님은 무루정지를 얻어 만유의 실상을 깨달았으므로 정각자임.

수자타 : 석존에게 우유죽을 공양한 처녀. 수자타는 '선한 생명'이라는 뜻임. 최초의 우바이 (재가 여신도).

권청 : 석존이 개오하셨을 때 그 가르침을 만인에게 설해 주시도록 범천이 권해서 청한 일을 일컬음. 이를 범천권청이라 함. 40여 년간 유행하시던 때에는 여러 제가가 권청함.

범천 : 색계의 초선천을 말함. 이 하늘은 욕계의 음욕을 떠나 적정청정한 경지임. 대범천왕을 흔히 지칭함.

제석천 : 도리천의 임금.

마왕파순 : 부처님이 보리수에서 득도시 방해한 마귀들의 왕. 이름은 파순.

길상초 : 고사. 구시. 구서라 음역. 상모. 유초. 희생초라 번역. 습기있는 땅이나 논에서 자라며, 피나 박하와 비슷한 풀. 길상이란 이름은 석존이 이 풀을 깔고 보리수 아래 앉아서 성도한 데서 연유. 또는 이 풀을 석존에게 바친 이가 길상동자라는 데서 연유했다고도 함.

▧ 예화

마왕 파순의 항복

부처님은 정각을 이루기 위해 좌선하고 계셨다. 그 모습에선 살아 있는 사람이라는 느낌을 받을 수 없었다. 숨을 쉬는 것 같지도 않았다. 때때로 움푹 파인 눈의 동공이 빛을 발할 뿐이었다.

더운 여름의 무더위 속에서나 겨울의 추위 속에서도 그의 자세는 한결 같았다. 파리와 모기와 벌레가 몸에 붙어 피를 빨아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소나기가 쏟아져 그의 몸을 씻어 내려도 그는 앉은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마치 감각이 없는 썩은 나무토막과 같이 육체는 정신과 떨어져 있었다. 부처님은 때떄로 그가 정신을 잃고 쓰러졌던 일을 기억하였다. 육체를 버리고 정신만으로 수행이 가능한가 의심스러웠다.

현세에 있어서 보리를 이루기 위해서는 육체를 버려서는 아니 되리라 생각햇다.
정신과 육체가 그 연계를 끊으면 그것은 죽음이며, 죽음은 현제의 종말이 아닌가?
부처님은 그가 보아온 고행자들을 생각했다. 그들은 육체의 고통을 이겨내는 것으로 바라는 일이 내생에서 이루어질 것을 희망했다. '그러나 나는 육체를 잊고 정신만으로 살고자'고 하였다.

그것은 저들과 같지는 않으나 역시 정신에만 치우친 것이다. 치우친 생각으로는 바른 도를 이룰 수가 없다.
부처님은 그가 지난 수년 동안 고행을 해서 얻은 것이 무엇인가 생각하였다. 자신의 무한한 정신력을 믿게는 되었으나, 그가 바라는 깨달음을 얻지는 못했다. 정신과 육체와의 싸움이 치열하면 할수록, 그 만큼 자신이 그 싸움에 말려 들었음을 그는 인정하였다. 그것은 저 고행자들과 다름이 없는 것이었다. 고통을 참는 노력이 크면 클수록 느껴지는 고통도 컸다. 뼈를 깎고 살을 에이는 고통이지만 고통을 이겨내고자 하는 노력을 쉬고 마음을 비었을 때 고통이 느껴지지 않던 것을 생각하였다. 부처님은 마음을 비우고 생각이 쉬면 고통이 사라지며, 마음과 생각이 일면 고통이 살아난다는 사실을 발견하였다. 그것은 중대한 발견이었다.

부처님은 자신을 가리고 있던 베일이 벗겨져 갑자기 밝은 곳에 나온 느낌이었다.
그는 이제야말로 선정에 들어 참구해야 할 대상을 찾았다고 생각했다. 그는 무익한 고행을 버리고 새출발을 해야 할 때라고 생각하였다. 그는 육체를 괴롭히는 방법이 아니라, 육체의 힘을 잘 이용해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이같은 부처님의 생각을 안 마왕은 그 동안 7년을 따라다니며 바라던 기회가 왔다고 생각했다. 부처님이 궁성을 나온 그날로부터 줄곧 그를 떠나지 않고 유혹할 기회를 노리던 마왕은 쾌재를 부르며 부처님에게 말하였다.

"당신은 쇠약하여 얼굴빛이 좋지 않소. 당신의 죽음은 가까왔소. 세상에 생명만큼 소중한 것은 없소. 살아 있고서 수행도 잇는 것이 아니겠소. 당신과 같이 고행해서는 아무것도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오. 그런데 되지도 않을 그 같은 수행은 해서 무엇하겠소. 수도에 정진하는 길은 나아가기 어렵고 행하기 어렵고 성취하기 어려운 것이오."

부처님은 마왕에게 말씀하셨다.

"마왕이여, 내가 구하는 것은 네가 말하는 그러한 공덕도 이익도 아니다. 그러한 것을 원하는 사람을 찾아가 그와 같은 이야기를 하는 것이 좋으리라. 나에게는 확신이 잇으며, 정진할 힘이 있고 지혜가 잇다.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수도하는 나에게 죽음을 말하는가? 생명이란 언젠가는 끝나게 되어 있으므로 나는 죽음을 두려워 하지 않는다. 바람이 강을 마르게 하듯 고행을 계속하면 살과 피는 마를 것이다. 그러나 나의 마음은 안정되어 있다. 내 정신의 청정함을 보아라 ! 나는 온갖 대상에 대하여 욕망을 일으키지 않는다. 무익하게 살기만을 바란들 무엇하겠는가. 나는 용감한 군인처럼 죽음을 두려워 하지 않고 너와 결전을 하리라. 나는 너의 군사력을 잘 알고 있다. 너의 제 1군은 애욕이다. 또 제 2군은 불만이며, 제 3군은 목마름과 굶주림이요, 제 4군은 갈망하는 것이다. 제 5군은 의지가 없는 것이며, 제 6군은 불안과 공포이며, 제 7군은 의구심이며, 제 8군은 자신의 잘못을 감추려고 하는 비굴한 마음이다. 이 세상의 모든 사람이 너의 군사력과 대항하여 싸워 이길 수 없다 해도, 나는 지혜로써 너의 군사를 질그릇을 깨뜨리듯이 분쇄할 것이다. 장차 나는 널리 제자들을 교화하여 그들로 하여금 나의 가르침을 실천하도록 하고, 그들을 탐욕이 없는 경지에 이르도록 하리라."

마왕은 말했다.

"나는 7년 동안 당신의 뒤를 그림자처럼 따라 다니면서 떠난 적이 없었으나, 마음에 틈이 없는 구도자에게 접근하기란 쉽지가 않았소." 마왕은 탄식하며 사라졌다.

그때 하늘 사람들은 부처님의 허약한 몸을회복시키기 위하여 영양이 많은 하늘음식을 가져와 공양하였다. 그러나 부처님은 이를 거절하셨다. 밖으로 보기에는 단식을 하는 것 같으면서 실제로는 음식을 취하는 것이므로 그것은 세간을 속이는 것이기 때문이다.

법천왕의 권청

12월 8일 새벽, 수행자 고타마는 마침내 모든 번뇌의 쇠사슬로부터 벗어나 다시는 윤회하지 않는 대자유를 얻었으니 일체지자요, 일체승자요, 무상의 정각자가 되었다. 이 때 부처님은 선정에 깊이 들어가 생각하셨다. '나는 이곳에서 바라던 도를 이루었다. 내가 얻은 법은 매우 깊고 커서 중생들이 이해하기 어렵다. 오직 부처님만이 알 수 있다. 일체중생은 다섯 가지로 흐린 세상에서 탐내고 교만하고 아첨하기 때문에 그에 가리고 막혀 있으며 복이 엷고 근기가 둔하며 지혜가 없어 나의 법을 이해하기 어렵다. 내가 법륜을 굴리면 그들은 반드시 정신을 혼미하여 믿지 않고 오히려 비방할 것이다. 바른 법을 비방한 죄업으로 인하여 그들은 장차 나쁜 세계에 떨어져 온갖 고통을 받을 것이다. 차라리 잠자코 열반에 드는 것이 좋으리라' 그러면서 계송을 읊으셨다.

그 때 대범천왕은 부처님 앞에 나타나 합장하고 엎드려 예배하고서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먼 옛날로부터 무수한 생사의 고해에 나시어 모든 것을 버려 보시하면서 도를 이루기를 원했고 그것은 오직 중생을 위하는 자비심에서 나온 것이었읍니다. 지금 세존께서는 도를 이루셨는데 어찌하여 도를 설하시지 않사옵니까? 중생은 오랫동안 생사에 빠져 있고 무명의 어움에 빠져 있으며 뛰쳐나올 기약이 없읍니다. 세존이시여, 많은 중생 가운데는 그래도 지난 세상에 선한 벗을 가까이 하여 덕의 근본을 삼는 이들이 있읍니다. 부디 이들을 가엾이 여기시어 미묘한 법륜을 굴려 주십시오."

이와 같이 세 번을 간청하니 드디어 부처님은 대법륜을 굴릴 것을 허락하여 중생 교화의 길을 열어 보이셨다.

▧ 요지

부처님께서는 "부처의 힘은 모든 신과 인간의 세계를 뒤덮는다"고 하시었다. 위대한 스승의 출현은 그만한 위력을 갖고 오랜 세월 수많은 곳에서 생명을 사랑하는 모든 이에게 깊은 감화를 주는 크나큰 열매를 맺었다.

그러한 빛이 탄생한 날이 성도절이다. 부처님이 이루신 성도라는 과정을 우리는 당연한 일처럼 받아들이는 관념에 빠지기 쉽다. 성불은 부처님만이 이루실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모든 중생이 이룩할 수 있는 현실적인 목표이다.

이러한 적극적인 수행의 정진을 통하여 성도는 곧 내가 이룰 경지라는 마음의 자세가 필요하다. 이것이 성도절을 맞는 불제자의 자세이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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