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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1-11-01 00:00
[학술포럼] 11월의 문화인물 ˝대각국사 의천˝
 글쓴이 : 이주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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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관광부는 역사상 훌륭한 문화적 업적을 남긴 인물로서 전 국민의 귀감이 되고 청소년들의 삶의 사표가 될 문화인물을 선정해오고 있다.

 11월의 문화인물로서는 고려시대 천태종의 개조(開祖)이며 선(禪)과 교(敎)의 수행을 함께 추구한 대각국사 의천(大覺國師 義天 : 1055∼1101)) 선생을 선정했다.

 왕자로 태어나 11세에 출가하고 47세로 입적할 때까지, 오직 구법(求法)과 전등(傳燈)을 발원하며 수행과 학문과 강학(講學)으로 일생을 살았던 의천(義天), 그는 고려 전기의 대표적 고승이면서 탁월한 불교학자였고, 우리나라 천태종의 시조였다. 그리고 교장(敎藏, 즉 續藏經)의 간행, 천태종의 창설, 활발한 국제 교류 등 그의 활동과 업적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동아시아 불교 전체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의천의 여러 업적 중에서도 그의 천태종(天台宗) 개창이 갖는 의의는 적지 않다. 국사는 선교(禪敎) 통합을 위해서 노력했는데, 천태종 창립이 당시 선종에 미친 영향은 대단했다. 선종 승려 중에 천태종으로 옮겨 온 자가 10명 중 6·7명이나 되었다고 한다. 국사는 교종인 화엄종과 선종인 조계종 모두에서 발견되는 선교 어느 한 쪽의 결함을 보완하기 위해 선교의 통합을 지향했다. 그는 화엄종의 모순을 극복하기 위해서 교관병수(敎觀竝修)를 주장하고, 선교일치사상으로 선종을 포섭하려 했던 것이다.

 그는 불교학에 대한 깊고 넓은 이해를 가졌기에 장소(章疏)의 수집과 {신편제종교장총록}의 편성, 교장의 조판과 그 전파 등의 업적을 남길 수 있었다. 이러한 그의 업적은 세계 불교사에서도 선구적인 것이었다.

 교장을 간행하고, 천태종을 창설했으며, 교관병수의 주장은 모두 그의 업적이자, 사상적인 특색이지만, 교학 연구 자세나 방법이 갖는 현대적 의의 또한 적지 않다. 손에서 책을 놓지 않았다는 학구열, 전통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하되 천년 이후를 생각하는 진지한 자세, 동아시아 불교의 보편성과 신라 불교의 특수성에 대한 균형 있는 인식, 활발한 국제학술교류, 방대한 자료의 수집, 엄격한 비판과 정밀한 교정, 후학을 위한 계속된 강의 등의 진리 탐구 자세는 지금도 그 빛을 잃지 않았기 때문이다.

 의천 선생의 업적을 기리기 위한 문화사업은 서울 관문사에서 국제학술대회(11.16)와 천태예술제(11.17)를, 예술의전당 미술관에서 기념특별전(11.6∼11.14)을 개최하는 등의 사업을 실시할 예정이다.

[이주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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