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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5-03-05 00:00
[전문불교코너] 불교의 전래
 글쓴이 : 전수진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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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1895(고종 32) 4월에 승려의 도성출입이 자유화되어 서울에서의 포교가 자유로워졌다. 1899년 동대문밖에 원흥사(元興寺)를 세워, 한국불교의 총종무소(總宗務所)인 국내 수사찰로 삼고 13도에 각각 하나의 수사(首寺)를 두어 전국을 통합하였다. 그뒤 1902년에는 정부에서 사원관리를 궁내부소속 관리서를 설치하여 사사관리 (寺社菅理) 세칙을 정하였다. 1906년에 원흥사에 불교연구회가 설립되어 여기에서 명진 (明進) 학교라는 근대적 불교교육의 최초의 모태가 되어 오늘날 동국대학교(東國大學校)의 전신이다. 1910년 일본에에 의한 조선의 멸망으로 불교도 조선 총독부하에 들어가 지배되었다. 30본산제가 마련되고 각황사(覺皇寺)가 연합사무소가 되었다. 1941년에는 태고사(太古寺, 지금의 曹溪寺)를 세워 총본산으로 삼고 조계종(曹溪宗)이라 개칭했다. 1945년10월 광복 후 새로운 불교 교헌을 제정하고 초대교정에 박한영(朴漢永)을 추대하였다. 1940년 혜화전문학교 (惠化專門學校)를 설립, 1946년 9월에는 동국대학으로, 1953년에는 종합대학인 동국대학교로 승격되었다. 일제의 식민지 통치 아래에서 3. 1독립의 대운동을 전개함에 있어서 만해(萬海) 한용운(韓龍雲)같은 이가 출현하여 앞장선 것도 근2천년에 걸친 한국불교의 생명이 용출(湧出)된 하나의 계기가 되었다고 볼 수 있다. (7) 현대 현대 한국불교사에 있어 가장 큰 과제는 비구, 대처간의 갈등의 정화에 있으며, 또 하나는 구미각국으로부터의 문화 침략에 대한 구조적 대처이다. 전자는 일본식민의 잔재이고 후자는 21세기 국가가 정신적 문화적 살아남기 위한 민족정기의 승화와 최소한도의 기본적 자세이다. 물질주의와 상업주의에 빠진 세계에 그 민족문화의 구심적인 문화정신이 빠져버린다면 소화불능에 빠진 인간과 다름이 없다. 1954년 6월 24일 서울 선학원에서 교단정화위 결성, 1 · 2차 전국 비구승대회 개최(1954. 9. 28), 1993년 10월 성철종정 반열반(般涅槃, 入寂) 1994년 현재 한국불교종단(曹溪宗)은 개혁불교표방, 새로운 종풍진작과 세계 속의 불교를 목표로 하고 있다. 불교재산관리법에 등록된 18개 종단에서 이제는 이 관리법을 악법으로 규정, 많은 군소종단이 형성되었다. 지금은 약 30개의 종단이 있으나, 그 규모나 사찰수나 신도수나 문화재 보호로 보더라도 대한불교 조계종이 그 중심을 이루고 있다. 결론적으로 불교는 한국문화에서 지워버릴 수 없는 정신적 어머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