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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5-05-17 00:00
[불교어록방] 일심과 보살
 글쓴이 : 전영숙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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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효스님에 따르면 '일심'은 단순히 각의 본체로서의 평등무이(平等無二)의 실재 자체일 뿐만 아니라, 또한 생동하는 각의 주체로서 절대 무집착의 대지혜(大知慧)와 절대무애(絶對無碍)의 대자비행(大慈悲行)을 일으키는 여래의 청정법신(淸淨法身)으로서 작용한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맑고 깨끗한 지혜의 모습은 법력(法力)의 영향에 의하여 진여를 수행하여 방편을 만족시킨다.
그 결과로 화합(和合)되어 있는 식(識)을 파괴하고 상속(相續)되는 마음의 상(相)을 멸하여 법신(法身)이 드러나게 된다. 이 법신은 그 지혜가 소박하고 깨끗한 것이다.

세속의 생각으로는 파악되지 않는 능력의 모습[不思議業用]은 맑고 깨끗한 지혜[智淨相]에 의하여 일체의 뛰어난 세계를 창조한다. 이른바 무량한 공덕의 모습은 영원하며 단절이 없다.
중생의 근본능력에 따라 스스로 그들과 맞추어가며 나타나 그들의 이익을 얻게한다.

또한 진여의 작용은 모든 부처님 여래가 본래 부처가 되려고 수행하는 단계에서 큰 자비를 내고 여섯가지 바라밀을 닦아 중생을 포섭하고 교화하며 큰 서원을 세워 무한한 겁을 통해 미래가 다하도록 모든 중생의 세계를 한결같이 해탈시킨다. 일체의 중생을 자기의 몸같이 여기기 때문이다.
중생을 낱낱의 모습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모든 중생과 자신의 몸이 진여이고 평등하여 그 사이에 어떤 차별도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여실히 알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지헤를 갖추고 있으므로 무명을 없애고 법신을 볼 수가 있으며 자연히 불사의한 여러 가지 작용을 함으로써 진여와 동일하게 되어 어느 곳에나 두루 미치지 않는 곳이 없게 된다.
그러나 그 작용의 외형적인 모습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지정상(智淨相)의 대지혜가 부처 즉 중생, 생사 즉 열반의 이사무애법계(理事無碍法界)의 실현을 의미한다면 지정상의 대지혜에 의하여 자연히 일어나는 이타행(利他行)의 완성으로서의 대자비(大慈悲),즉 진여의 '불사의업용(不思議業用)'은 "모든 중생과 자신의 몸이 동일한 진여이고 평등하며
그 사이에 어떤 차별도 있는 것이 아님을 여실히 아는 "사사무애법계(事事無碍法界)의 실현을 의미하며, 이러한 지혜에 의하여 일즉다 다즉일(一卽多 多卽一)의 새로운 우주관에 도달합니다.

지(止)의 수행의 완성을 '일체무애인 일도출생사(一切無碍人 一道出生死)'로 표현한다면 '무리지지리 불연지대연(無理之至理 不然之大然)'은 사사무애법계의 완성을 의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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