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ksoolforum_header.jpg

 
작성일 : 05-01-18 00:00
[불교어록방] 삼배를 올리는 까닭
 글쓴이 : 전수진 기…
  추천 : 0   비추천 : 0  
일체중생은 새벽예불로 하루를 시작한다. 아니 깨어나는 것이다. 그리고 삼보전에 귀의한다. 도량석이 끝나고 불전사물(법고,목어,운판,범종)이 울려 퍼지는 가운데 주변 전각에서의 예불이 끝나면 모든 대중들은 대웅전(큰법당)으로 모여든다. 그때 비로소 큰법당 안의 소종이나 금고(金鼓)를 두드리기 시작하고, 대중들은 본존불을 향해 삼배(三拜)를 올리고, 고요히 무릎을 꿇고 앉아 부처님을 우러러 보면서 삼보의 은덕을 생각한다.
  그런데 여기서 "왜 삼배를 하는가?"  "불가에서 삼배를 절의 기본 수(數)로 삼는 까닭은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삼배는 거룩한 부처님과 불변의 진리인 부처님의 가르침과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라 화합하면서 수행하는 승가(僧伽)를 향해 한번씩의 절을 올리는 예배법이다. 마땅히 공경해야 할 바를  향해 존경의 마음을 바치는 의식인 것이다. 이것은 대부분의 불자들이 알고있는 사항이다.
  그러나 그 이면에 '나 스스로가 삼독(三毒)을 끊고 삼학(三學)을 기른다' 는 의미가 담겨져 있어야 한다는 것을 아는 불자가 의외로 드물다. 공손히 올리는 삼배 속에는 탐욕과 분노와 어리석음의 마음을 거두어, 청정한 계율과 고요한 선정과 밝은 지혜로 바꾸어 놓겠다는 결의가 담겨 있어야 하는 것이다. 이와같은 마음속의 일을 글로 옮겨보자.
  "거룩한 불보와 법보와 승보님께 귀의하옵니다. 이제 탐욕과 분노와 어리석음으로 가득한 이 마음을 되돌려 계(戒). 정(定). 혜(慧) 삼학을 기필코 이루오리다."
  이러한 결심으로 삼배를 하는 것이다. 불전에서 뿐만이 아니라 큰스님을 친견하면서 삼배를 올리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삼배를 올리는 까닭은 절을 받는 큰스님이 위대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절을 받는 스님의 수행 정도나 나이의 많고 적음을 따질 것 없이 삼배를 올리며 절을 해야 하는 것이다.
  이와같은 마음가짐으로 절을 하면 한량없는 공덕을 심는 것이 된다고 한다. 절을 받는 스님은 바로 공덕의 씨를 뿌릴 수 있도록 해주는 밭, 곧 복전인 것이다. 그러므로 절을 받는 스님은 공덕의 씨를 자라나게 하는 연(緣)에 불과하다.
  어떠한 복도 스님에게는 돌아가지 않는다. 결국 복의 씨를 뿌리고 복을 거두는 이는 진실한 마음으로 삼배를 올리는 바로 그 사람일 뿐이다.
  '내가 누군데, 과거에 어떠어떠한 사람인데, 내 나이가 몇 살인데, 친부모에게도 삼배해 본 적이 없는데, 쑥스러워서, 아직 정식 불자 되기 위한 오계 조차 받지 않았는데, 관절이 안 좋아서' 등등 이유가 많은 불자들이 필히 유념하여 가슴에 새길지어다.
  물론 스님이라고 다 같은 스님이 아니고 정식으로 계를 받고 수행에 힘쓰는 불제자에 한해서만 해당된다. 스스로 스승도 없이 혼자 이발소에서 머리깍고 큰스님 흉내내는 , 종단도 없이 혹은 이름없는 사이비 종단에 속해 제대로 불제자의 수행공부 과정없이 머리 속이 텅 비어 천수경이나마 겨우 외워 예불 흉내 내고, 불자들에게 점을 보며 생계를 유지하는 그러한 사이비 땡추는 분명 발본색원하여 퇴치하는 선구안을 우리 불자들은 분명 가져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 모두 끊임없이 공부와 수행에 힘써야 한다는 것이다. 지역에 가까운 불교대학이라도 필히 수료하든가, 역사와 전통이 있는 사찰에서 충분한 예절과 교리를 습의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가족법회를 활성화 해야 한다. 그것이 정법인 것이다.
  삼배를 올리는 이러한 이치를 올바로 인식하고 참다운 신심으로 삼배를 올릴 때, 부처님의 깨달음인 연기법을 알게 될 것이며, 우리의 마음은 계.정.혜 삼학으로 그만큼 채워지게 되는 것임을 깊이 명심하여 번뇌망상으로 가득한 이 마음을 백색광명의 세계로 바꾸어 나갈 지어다.
 

 
   
 



불교일보 동영상 전문채널
서울 불교방송
가장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