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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4-02-11 00:00
[불교어록방] 동지와 팥죽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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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악산 대청봉에 첫눈이 내렸다는 소식을 전하면서 몸보다 마음이 앞서 눈쌓인 골짜기로 달려갔었는데, 기다리다 지쳤는지 성미 급한 겨울 눈이 소담스러운 모습으로 우리 곁에 포근히 다가왔습니다. 가을걷이를 끝낸 논바닥 가득이 쌓인 눈이 동짓달이 다가왔음을 느끼게 합니다.

동짓달에는 대설과 동지라는 절기가 있습니다. 절기란 태양의 황경에 따라 24등분하여 계절을 세분한 것입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환경이란 태양이 춘분에 지나는 점을 기점으로 하여 황도에 따라 움직인 각도를 말합니다. 황도는 지구에서 보았을 때 태양이 1년 동안 하늘을 한바퀴 도는 길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 황경이 0도 일때를 춘분이라 하고, 15도 일 때를 청명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15도 간격으로 24절기가 정해지는데, 황경이 270도가 되는 날이 바로 동지인 것입니다. 동지는 보통 12월 22일에 드는데 때로 12월 23일에 들기도 합니다. 어떤 분들은 "동지가 양력이예요, 아니면 음력이예요?"라고 묻기도 하는데 다시 말씀드리지만 태양을 기준으로 하기 때문에 양력 12월 22일 또는 23일이 동지인 것입니다.
 동지가 음력으로 상순에 들면 이를 애동지라 하고, 음력으로 하순에 들면 노동지라고 합니다.

전해오는 우리 풍속을 살펴보면 재미있고 교훈적인 것이 많이 있는데 그 가운데 동지에 관한 것도 있습니다. 즉 애동자가 드는 해에는 아이들에게 좋고 노동지가 드는 해에는 노인들에게 좋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풍속은 동짓날에는 누구나 한 살씩 더 먹는데 어린 아이들은 빨리 크기를 원하기 때문에 동지가 며칠간이라고 빨리 들면 좋아할 것이고, 또한 노인들은 오래오래 사시기를 바라기 때문에 동지가 늦게 들면 몇 날을 더 살아야 한 살은 먹게 되므로 즐거워한다고 하지 않았을까 생각됩니다. 그래서 각 가정에서는 보통 애동지가 드는 해에는 떡을 해서 먹였고, 노동지가 드는 해에는 팥죽을 쑤어서 먹었다고 합니다.

보통 동지시가 언제냐고 묻곤 하는데, 동지시는 황경이 정확히 270도가 되는 시각을 말하는 것입니다. 동지시를 특별히 따졌던 것은 하지로부터 차츰 낮이 짧아지기 시작하여 동짓날이 되면 일년 중 낮이 가장 짧아졌다가 동지시를 기점으로 하여 낮이 점차적으로 길어지게 됩니다. 그래서 태양의 부활을 뜻하는 큰 의미를 지니고 있다하여 설 다음가는 작은 설로 생각했던 것입니다.

중국 주나라에서 동지를 설로 삼은 것도 이날을 생명력과 광명의 부활로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동국세시기>에서는 동짓날을 '아세'라고 하였고, 민간에서는 '작은 설'이라 하여 정월 설날에 떡국을 먹고는 '한 살 더 먹었다'고 하는 것처럼 동지에 팥죽을 먹고는 '한 살 더 먹었다'고 했던 것입니다.

어렸을 때 많이 불렀던 노래가 생각납니다. 여러분도 감회가 새로울 거 라고 봅니다.

'까치까치 설날은 어저께고요, 우리 우리 설날은 오늘이래요.'
이 노랫말 가운데 어저께는 전알이라기 보다 가까운 과거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옛날의 우리 고대 풍속에는 큰 명절 이전에 반드시 작은 명절을 두는 것이 상례였기 때문에 까치까치 설날은 둥지를 가리켰을 것입니다.

옛부터 작은 설인 둥지에는 새해 달력을 주고 받았다고 합니다. <동국세시기>의 기록을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관상감에서는 달력을 대궐에서 올린다. 그러면 임금은 황색으로 단장한 황장력과 백색으로 단장한 백장력을 모든 단원에게 나누어 준다. 그달력에는 동문지보라는 임금의 옥새를 찍는데, 각 관청과 아전들도 각기 나누어 받을 몫이 정해져 있다. 각 관청의 아전들은 이것을 가지고 각자 친한 사람을 두루 문안하는 것이 통례이다.

이조의 아전들은 각기 벼슬하는 집으로 가서 자기가 고신을 써준 사람이 새로 군이나 현의 수령으로 나가면 그로부터 당참전을 받는다. 그러면 통례에 따라서 청장력 한 권을 그 사람에게 증정한다. 그러므로 서울의 옛 풍속에서 단오날의 부채는 관원이 아전에게 나누어 주고 동짓날의 달력은 아전이 관원에게 바친다. 이것을 '하선동력'이라고 한다. 관원은 그 달력을 자기 고향의 친지와 묘지기, 농토를 관리하는 사람에게 고루 나누어 준다.」

무릇 동지라 하면 떠오르는 것인 절에 가서 불공 드려야겠다는 생각과팥죽을 먹어야 겠다는 것이겠지요.

동지에 팥죽을 먹는 풍습은 삼국시대부터 이어져 온 풍속으로 당시 나라에서 주도하여 권장한 행사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나라의 행사란 백설들의 재정 낭비를 막아야 하는데 그러한 의미로 볼 때 동짓날 팥죽을 쑤어 먹는 것은 아주 적합했던 것입니다. 그 까닭은 동짓날에는 해가 짧고 추울 때이며, 농한기여서 대부분의 농민이 휴식상태에 있기 때문에 농민들을 옥외로 동원하여 행사를 거행하기 보다는 오히려 집안에서 팥죽을 쑤어 먹는 것은 아주 적합했던 것입니다.
끼니를 때우게 하여 양식과 부식 비용을 절약하게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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