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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3-11-08 00:00
[불교어록방] 주인의식으로 삼불(三不)을 청산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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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항간에는 우리의 현실을 이른바 삼불(三不)시대라고 빗대서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삼불이란 불신(不信)과 불만(不滿)과 불안(不安)을 말하던데, 아닌게아니라 지금 우리 주변에는 불신과 불만이 팽배해져 있을뿐만 아니라 이런 것들이 원인이 되어 전 국민이 불안한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특히 대다수 국민들이 불안감에 사로잡혀 있는 것은 정치. 경제. 사회적인 분야에 대한 예측 불가능한 불안요소들이 잠재해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현상들이 시대가 엄청난 속도로 변화하는 데 따른 일시적인 현상이라면 크멕 염려할 문제가 아닙니다만 우리 사회의 이른바 삼불현상은 그 원인이 대부분 정치. 경제. 문화 등의 지도적 인사들의 도덕성 결핍에서 비롯되고 있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 세 가지의 부정적 요소가 사라지지 않는 한 이상적인 사회, 보다 더 살기좋은 세상은 이룩될 수 없습니다. 이를 청산하지 않고는 불국정토의 건설은 한낱 빈 메아리에 불과하고, 민주사회의 건설도 가진 자들의 기득권 유지를 위한 사탕발림에 불과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서둘러 이른바 삼불현상을 청산하고 서로 믿는 사회, 불만보다는 만족하는 사회, 불안이 아닌 안정된 사회를 건설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저는 국민 각자가 그 책임을 지도층 인사들에게만 돌리지 않고 스스로 책임지는 올바른 주인의식을 갖는다면 능히 불신과 불만과 불안을 청산하고, 반대로 믿음의 사회, 만족의 사회, 안정된 사회를 이룰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특히 금년은 여러 차례의 선거를 치루게 되는데 이때에 전국민, 특히 우리 불자들이 대오각성함으로써 우리 사회에 만연된 삼불풍조를 청산하고 새로운 사회 건설을 위해 도약하는 계기로 삼았으면 합니다.

그래서 오늘은 '우리 다같이 주인의식으로 삼불을 청산하자'는 주제를 가지로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먼저 불신과 불만과 불안이 어떤 폐단을 가져오는지 그리고 왜 이런 현상을 초래하게 되었는지 함께 생각해 봅시다. 병의 원인을 알고 그 결과도 알아야 치료할 수 있는 것 아닙니까? 불신은 결코 어떤 형태로든 바람직한 결과를 가져올 수 없습니다.

<<화엄경>>에는 '신위도원공덕모'라는 말이 있습니다. 믿음이 도의 원천이요, 공덕의 어머니라는 뜻입니다. 여기서 도는 불도, 부처가 되는 길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부처가 되는 길, 불도란 추상적인 견성성불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가장 이상적인 삶의 길, 올바른 인생의 이정표입니다.

왜냐하면 세간과 분리된 '부처의 길'이란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부처는 주앵이 있음으로써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처의 길은 곧 올바른 중생의 길, 우리네가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길입니다.

이 올바른 삶의 길인 불도의 원천이 되는 것은 믿음입니다. 이때의 믿음은 부처님의 가르침에 대한 믿음, 부처님의 가르침을 믿으면 누구나 행복해질 수 있다는 믿음, 또한 누구나 수행을 통해서 가장 이상적인 인간이 붓다가 될 수 있다는 자신의 존재가치에 대한 믿음입니다.

이 믿음이 없이는 결코 불도는 이뤄지지 않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이상적인 사회, 이상적인 국가를 건설하는 길에도 역시 믿음이 있어야만 가능한 일입니다.

국민들에게는 이상적인 사회, 일반적인 개념으로 민주주의를 기본으로 한 복지국가가 이 땅에 이룩될 수 있다는 믿음이 있어야 하고, 또한 그러한 사회를 건설하겠다는 정치 지도자들에 대한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정치 지도자에 대한 일반 국민의 믿음과 국민에 대한 지도자의 믿음이 필수적인 요건입니다. 아무리 지도자가 훌륭한 자질을 가진 사람일지라도 국민이 지도자의 말을 믿지 못한다면, 반대로 지도자가 국민을 믿지 못하면 이런 사회는 바른 길을 찾지 못하게 되고, 따라서 좋은 결과를 가져올 수 없습니다.

공덕은 믿음의 결과입니다. 민주주의나 복지사회는 지도자와 민중의 믿음이 만들어 내는 공덕입니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민주화를 외치면서도, 복지사회를 추구하면서도 서로서로 믿지 못하는 사회, 믿음보다는 오히려 의심의 눈초리로 서로를 경계하는 사회가 되었습니다. 정부와 국민, 기업가와 근로자, 교수와 제자, 성직자와 신도, 이들 관계에 있어서 최우선적인 요소는 두말할 거 없이 믿음입니다. 한 가정에 있어서도 남편과 부인 사이에 믿음이 없을 때, 부모와 자신 사이에 믿음이 없을 때, 그 가정은 원만한 가정이 될 수 없듯이 사회도 국가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불행히도 우리가 당면한 불신이 팽배한, 서로서로 의심하다 못해 마음과 마음 사이에 높은 철책을 두르고 외부와 단절학 사는 세태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이처럼 서로를 의심하기 때문에 불안할 수밖에 없습니다. 정부의 정책을 믿을 수 없기 때문에 국민들은 불안하기 마련입니다.

계강자가 공자에게 정사를 물어 보았습니다. 공자께서 대답하기를, "정은 정이라 그대가 솔선하여 몸을 바르게 가지면 누가 감히 바르게 행하지 않으리오."라고 하였습니다.

이런 공자님 말씀이 아니라도 정치를 하겠다는 사람은 바른 마음을 가지고 바른 행동을 함으로써 다른 사라미들에게 믿음을 주어야 하는게 아닐까요?

그런데 불행히도 옛날부터 정치가에 대한 일반 대중의 인식은 별로 좋지 않았고, 정치를 하겠다는 사람들에게도 문제가 많았던 모양입니다.

A.까뮈는 그의 비망록에서 "정치와 인간의 운명은 이상도 없고 위대함도 없고 인간들에 의해 만들어진다. 자기 자신 속에 위대함을 지난사람은 정치를 하지 않는다. 만사가 이와 마찬가지다. 그러나 이제 자기 내부에 새로운 인간을 창조하는 것이 문제다." 라고 정치인을 신랄하게 꼬집었고, 아리스토파네스는 "오늘날 정치를 하는 사람은 이미 학식이 있는 사람이나 성품이 바른 사람이 아니다. 불학무식한 깡패들에게나 알맞는 직업이다"라고까지 혹평했습니다.

이와 같은 정치에 대한 회의는 그 당시의 시대상을 대변한다고도 볼 수 있고, 그런 말을 한 당사자들의 개인적인 감정까지도 고려해서 생각해 볼 문제이긴 하지만 20세기 후반을 살아가는 대한민국이라는 우리의 현실에 비추어 볼 때도 그다지 어긋난 말은 아닌 듯 싶습니다.

이처럼 정치자 정치가에 대한 불신은 뿌리깊은 전통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는데, 그러나 정치란 공기와 같고, 물과 같아서 싫어한다고 없어지는 것도 아니요, 멀리하려 한다고 해도 멀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어차피 우리의 어떤 정치형태 속에서 생활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정치에는 부정적인 측면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정치를 잘하면 국민의 생활이 보다 더 윤택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혐오하는 대상은 비도덕적인, 부정직한 정치인들이지 정치 자체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상적인 사회는 어떤 모습일까요?

우리는 불자이므로 부처님이 보신 이상적인 사회상에 대해서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부처님 당시는 정치적으로는 원시적인 초기 국가형성 단계였기 때문에 국가권력이 비대해지고, 온갖 권모술수가 난무하는 오늘의 정치현실, 국가형태와는 판이합니다. 직접적으로 비교하는 데는 문제가 없지도 않습니다만, 정치인이나 국민들이 가져야 하는 기본 자세는 옛날이나 지금이나 조금도 다를 게 없다고 봅니다.

부처님께서는 이상적인 국가, 이상적인 사회를 밧지국에 예를들어 말씀하셨습니다. <<>장아함유행경>>에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부처님께서 아난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아난다, 너는 밧지국 사람들이 자주 모임을 가지고 바른 일을 서로 의논하며 몸소 지킨다는 말을 들은 일이 있느냐? 밧지국의 임금과 신하가 화목하고 윗사람들과 아랫사람들이 서로 공경한다고 들은 일이 있느냐? 밧지국 사람들이 법을 받들어 삼가해야 할 것을 알고 예의를 어기지 않는다고 들은 일이 있느냐? 그 나라의 부녀자들이 정숙하고 진실하며 웃고 농담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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