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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2-05-16 00:00
[학술포럼] 연등 불빛으로
 글쓴이 : 윤재수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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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 초파일은 연등 불빛의 아름다움으로 다가왔다. 전기가 흔치 않던 때라, 야경이랄 게 없던 터에 꽃밭처럼 수놓아진 연등, 그 빛에 매료되어 더 잘 보려고 일부러 높은 곳으로 올라가곤 했다. 나중에 불교 공부를 하면서 '빈자일등(貧者一燈)', 거지 여인이 바친 꺼지지 않는 등불의 의미를 알았지만, 다시 내 삶을 비추는 등불로서 연등의 의미를 생각해 본다.
해마다 행사로 연등을 만들고, 제등행렬이 있고, 절마다 초파일 등을 단다. 더러는 위치와 크기에 따라 등값이 다르지만, 대부분 빈부귀천의 차별이 없는 마음으로 그저 차례대로 정성껏 등불을 밝힌다는 정신은 안다. 그러면서도 등을 다는 이유는 제각각이다.
빈자일등의 가르침에는 무엇보다 보시바라밀의 의미를 다시 새겨보는 데 있을 것 같다. {오늘 부처님께 묻는다면}(전재성 역저)에서 [참다운 보시를 하기 위해 무엇을 이겨내야 할까]가 눈에 들어왔다. 그 가운데 한 하늘사람의 게송이 있다.
 
인색한 자는 두려워서 베풀지 않네.
 베풀지 못하게 하는 두려운 것은
인색한 자가 두려워하는
굶주림과 목마름
이 세상과 저 세상에서
어리석은 사람이 만나야 하는 운명이네.
 
인색함을 반드시 이겨서
마음의 티끌을 극복하여 보시하세.
이러한 공덕은 저 세상에서
뭇삶들에게 의지처가 되네.

 
진정한 무소유의 정신에서 '보시가 된다'는 뜻으로 읽었다. 무소유는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는다는 뜻이라기보다, 없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따라서 가진 것을 주는 데에 장애가 있을 일이 없이 기꺼이 주는 마음, 이것이 진정한 무소유겠구나, 그런 생각을 했다.
그런데 내 마음에는 앞날을 걱정하는 계산이 많다. 아끼는 것인지 인색한 것인지, 내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너무 많다. 후원금을 내고 보시를 하긴 했지만, 보시바라밀을 실천하지는 못했다. 아주 가끔은 지갑을 비워 내기도 했지만, 인색함을 비워 보지는 못했다.
하루 백 원씩 모아 어려운 이웃을 돕는 일을 하는 '백원회' 소식을 보았다. 그러려면 게으름도 없어야겠지. 그 일을 주도하는 별명 '깡통동장'은 날마다 재활용 쓰레기를 모으는 일도 열심히 했다. 그이는 다시 지어야 할 것 같은 낡은 집에 살았다. 가진 것 모두를 주는 데 아낌이 없는 어진분들은 가난을 진짜 벗으로 삼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번 초파일에는 가장 쉽게 내는 부처님 마음을 연습해 볼까. 가난한 여인이 전부를 주는 마음으로 밝힌 등불처럼, 작은 것으로도 전부를 주는 보시바라밀로. 말 한마디에서, 주고받는 마음에서, 자리라도 내주는 작은 행동에서, 백 원이라고 모아주는 물질에서, 내 자신의 바라밀로 삼아 등불을 켠다는 마음으로 부처님오신날을 마중한다. 내 마음의 밭을 어릴 때 보던 연등꽃밭처럼 가꿔 보았으면…


불교포럼 공동대표 박승원 김연규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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