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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6-08-18 00:00
[전문불교코너] [불교의 향기]석가
 글쓴이 : 전수진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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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석가(釋迦:Sakyamuni, BC 563?∼BC 483?)</b>

석가모니(釋迦牟尼), 석가문(釋迦文)등으로도 음사하며, 능인적묵(能仁寂默)으로 번역된다.
보통 석존(釋尊),부처님이라고도 존칭한다.
석가(Sakya)는 민족의 명칭이고 모니(muni)는 성자라는 의미로, 석가모니라함은 석가족(族) 출신의 성자라는 뜻이다.
본래의 성은 고타마(Gotama:瞿曇), 이름은 싯다르타(Siddhartha:悉達多)인데, 후에 깨달음을 얻어 붓다(Buddha:佛陀)라 불리게 되었다.
또한 사찰이나 신도들 사이에서는 진리의 체현자(體現者)라는 의미의 여래(如來:Tathagata), 존칭으로서의 세존(世尊:Bhagavat),석존(釋尊) 등으로도 불린다.
석가모니는 현재의 네팔 남부와 인도의 국경부근인 히말라야산(山) 기슭의 카필라성(Kapilavastu:迦毘羅城)을 중심으로 샤키야족(釋迦族)의 작은나라가 있었다.
석가모니는 그나라의 왕 슈도다나(Suddhodana:淨飯王)와 마야(Maya:摩耶)부인 사이에서 태어났다.
샤키야족은, 그왕호가 정반왕, 그리고 정반왕의 동생이 백반(白飯),감로반(甘露飯) 등으로 불리고 있는점에서 미작(米作) 농경생활과 깊은 관계가 있었던것으로 생각된다.
석가모니는 크샤트리야 계급출신이라고 하지만, 샤키야족 내부에 카스트의 구별이 있었던것 같지는 않다.
또한 그가 순수한 아리아인(人)이라는것도 확실하지는 않으며, 오히려 네팔계(系) 민족에 속하는 종족이라는 추측도 있다.
그러나 압도적인 아리아 문화의 영향하에 있었던 것만은 의심할 나위가 없다.
마야 부인은 출산이 가까워짐에 따라 당시의 습속대로 친정에 가서 해산하기 위해 고향으로 가던 도중 룸비니(Lumbini) 동산에서 석가를 낳았다.
이는 아소카왕(阿育王)이 석가모니의 성지를 순례하면서 이곳에 세운 석주(石柱)가, 1896년에 발견·해독됨으로써 확인되었다.
전설에 따르면 석가모니가 태어났을 때, 히말라야산에서 아시타라는 선인(仙人)이 찾아와 왕자의 상호(相好)를 보고,“집에 있어 왕위를 계승하면전세계를 통일하는 전륜성왕(轉輪聖王)이 될 것이며, 만약 출가하면 반드시 불타가 될것”이라고 예언하였다고 한다.
그의 생몰연대에 관하여는 이설(異說)이 많으나, 그중 유력한것은 스리랑카의 도사(島史:Dipavamsa), 대사(大史:Mahavamsa)에 근거하여 불교학자 W.가이거가 주장한 BC 563∼BC 483년 설이다.
이설은 중국의 역대삼보기(歷代三寶紀)에 전하는 중성점기(衆聖點記), 즉불멸(不滅)후 최초의 율장(律藏)이 결집되었을 때 제1점을 치기 시작하여매년 1점씩 쳐서, 제(齊)나라의 영명(永明) 7년(AD 490)까지 975점에 이르렀으므로 불멸이 BC 485년이라는설(BC 565∼BC 485년)과도 대략 일치된다.
그외에 BC 64∼BC 544년설, BC 463∼BC 383년설 등이 있으나, 한국에서는전자를 채용하고 있다.
석가모니는 생후 7일에 어머니 마야 부인과 사별하였다.
그것은 석가모니에게는 슬픈 일이었다.
그 후 이모에 의하여 양육되었는데, 왕족의 교양에 필요한 학문,기예를 배우며 성장하였다.
그생활은 물질적으로는 매우 풍부하였을 것이다.
당시의 풍습에 따라 그는 16세에 결혼하였다.
부인은 야쇼다라(耶輸陀羅)라고 하며, 곧 아들 라훌라(羅羅)도 얻었다.
이같이 안락하고 행복한 생활을 보내던 중 석가모니는 인생의 밑바닥에 잠겨 있는 괴로움의 문제와 직면하게 되었다.
이러한 점은 전설적으로 새가 벌레를 잡아먹는 모습, 또는 생로병사(生老病死)와 사문(沙門)을 목격한 이른바 사문출유(四門出遊), 또는 사문유관(四門遊觀)으로써 설명된다.
석가모니는 29세때 고(苦)의 본질 추구와 해탈(解脫)을 구하고자, 처자와왕자의 지위등 모든것을 버리고 출가하였다.
남쪽으로 내려가 갠지스강(江)을 건너 마가다국(國)의 왕사성(王舍城:Rajagrha)으로 갔다.
여기에서 알라라칼라마와 우다카 라마푸타라는 2명의 선인(仙人)을 차례로 찾아, 무소유처정(無所有處定),비상비비상처정(非想非非想處定)이라는선정(禪定)을 배웠다.
그것은 일종의 정신통일에 의하여 하늘에 태어나 보려는 것이었는데, 석가모니는 그들의 방법으로써는 생사의 괴로움을 해탈할수 없다고 깨닫자, 그들로부터 떠나 부다가야 부근의 산림으로 들어갔다.
여기에서 그는 당시의 출가자의 풍습이었던 고행(苦行)에 전념하였으나,
신체가 해골처럼 되었어도 해탈을 이룰수는 없었다.
고행은 육체적인 면의 극소화를 통하여 정신의 독립을 구하는 2원적 극단론에 근거한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는 6년간의 고행 끝에 고행을 중단하고, 다시 보리수(菩提樹:Bodhi-tree) 아래에 자리잡고 깊은 사색에 정진하여 마침내 깨달음을 얻었다.
이 깨달음을 정각(正覺:abhisambodhi)이라고 한다.
그 깨달음의 내용에 대하여 아함경(阿含經)에는 여러 가지로 설명하고 있다.
사제(四諦:苦,集,滅,道의 네 진리, 즉 현상계의 괴로움과 그원인 및 열반과 그에 이르는길), 십이인연(十二因緣),사선삼명(四禪三明) 등을
깨달았다는것이 그것이다.
그러나 기본적으로는 선정에 의하여 법(法:dharma)을 깨달았다고 하겠다.
즉 선정은 강렬한 마음의 집중이며, 여기에서 생긴 지혜는 신비적 직관(直觀)이 아니라 자유로운 여실지견(如實知見)이다.
이지혜가 진리를 깨달아 진리와 일체가 되어 확고부동하게 되었는데, 공포에도 고통에도, 나아가서는 애욕에도 산란을 일으키지 않는 부동(不動)의깨달음이라 할것이다.
이것은 마음이 번뇌의 속박에서 해방된 상태이기 때문에 해탈(解脫:moksa)이라고 하며, 이해탈한 마음에 의하여 깨우쳐진 진리를 열반(涅槃:nirvana)이라고 한다.
현대적 의미에서의 해탈은 참 자유, 열반은 참 평화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