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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5-02-22 00:00
[전문불교코너] 우리 탑 이야기
 글쓴이 : 전수진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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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의 기원 탑은 탑파(塔婆)의 줄임말로 산스크리트어 스투파(Stupa), 팔리어 투파(thupa)의 음사이며, 달리 솔도파(卒都婆)·수두파(藪斗婆)·부도(浮屠) 등으로 표기한다. 현존하는 가장 이른 탑은 인도의 산치대탑이다. 형태상으로 커다란 복발이 탑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어 마치 반구형 발우를 엎어놓은 모습이다. 우리나라 석탑을 보면 최상층 노반석 위로 반구형 석재가 놓여 있는데 이것이 복발의 잔흔이다. 탑은 인도 재래의 장례시설로, 아쇼카 왕(기원전 268~232)은 84,000탑을 세워 석가여래의 사리를 봉안했다고 한다. 현장의 『대당서역기』에 따르면 서역으로부터 인도에 이른 여러 나라에 진흙탑(泥塔)·석탑·벽돌탑·목탑·칠보탑·금강탑(金剛塔)이 있었음을 전하고 있어 다양한 재료로 건축되었음을 알 수 있다. 불교도들은 오래 전부터 이 탑을 중심으로 교단을 형성하였다. 또 승원(僧院, Vihara)과 같이 승려들의 수행과 포교 근거로 삼은 사찰 건립의 중추적 역할을 담당하였다. 보통 중국은 전탑(塼塔), 한국은 석탑, 일본은 목탑의 나라라고 부른다. 중국은 풍부한 황토를 이용해 한(漢)대부터 벽돌을 구워왔으며, 한국과 일본은 산천에 풍부한 화강암과 나무를 이용해 탑을 조성했던 것이다. 전형석탑의 탄생과 발전 우리나라 최초의 탑은 분황사모전석탑 또는 미륵사지석탑으로 알려져 있으나, 전형양식의 출발은 감은사탑(사진1)에 이르러서이다. 특히 불국사 석가탑에서 발견된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은 탑을 조성하면서 얻을 수 있는 공덕에 관한 것으로 이후 조탑경(造塔經)으로서의 역할을 담당하였다. 조탑경의 유행은 탑 내부에 다라니 봉안을 유행시켰고, 나아가 소형의 탑을 별도로 만들어 봉안하기도 하였다. 탑의 층수는 일반적으로 3·5·7의 배수로 조영되는데 전통적으로 동양에서 홀수는 양수, 짝수는 음수라는 사고가 바탕에 깔려있기 때문에 나타난 결과다. 탑의 면석에 남아있는 우주(隅柱)와 탱주(撑柱)는 목조건축의 기둥을 표현한 것으로 목조건물을 석재로 번안한 장인들의 놀라운 결과물이다. 일반적으로 전형석탑이라고 하면, 후에 조성되는 탑의 모델이 되는 것으로 감은사탑이나 석가탑을 기준으로 삼고 있다. 이후 기단이나 탑신에 팔부중, 사천왕, 사방불, 십이지신장(사진4) 등 다양한 불보살과 신중상을 조각하였다. 뿐만 아니라 초층 탑신석에는 문비(門扉)라고 하여 목조건축에서 보이는 출입문을 표현하였는데, 사리봉안에 대한 공덕을 강조하는 역할을 한다. 문비는 사실적으로 내부공간을 마련하기도 하지만(사진2) 얕게 음각 혹은 돋을새김(사진3)하고 자물쇠 혹은 인왕을 표현하는데, 사실적인 표현이 시기적으로 앞선 것이다. Ⅳ. 탑 속의 탑 “한 알 한 알 염주 알을 돌리며, 마음을 모아보지만 눈앞에는 한 기의 탑 두 기의 탑 그림자로 이어져 일만 기의 탑이네”라는 어느 시인의 노래가 떠오른다. 탑은 단순한 무덤이 아니다. 버릴래야 버릴 수 없는 마음, 마음의 무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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