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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2-01-10 00:00
[전문불교코너] 대각국사 의천의 업적-(3) 불교문화의 교류와 국제적 지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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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불교문화(佛敎文化)의 교류(交流)와 국제적(國際的) 지위(地位)

  위에서 이미 살펴본 바와 같이 불교문화를 수집하고 정리하고 교류한 점에 있어서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그 업적은 유일무이한 것이었다.
  선종 2년 송에 건너가기 이전에 수차례에 걸쳐 송의 고승인 정원법사와의 서신왕래로 학계의 소식을 교환한 일이 있었다. 또 당시 중국은 당 무종의 회창법난과 오대의 병화를 겪어 오는 동안 불교전적이 많이 소실 또는 산실되었다. 이에 국사는 선종 2년 송나라로 유학을 가면서 중국 화엄학의 대성자였던 지엄의 「공목장」,「화엄수현기」,「기신론의기」등과 현수의 「화엄탐현기소」,「법계무차별론소」,「십이문론소」등과 청량의 「정원신역화엄경소」등을 가지고 가서 논의하였던 까닭에 천하의 학자들이 운집하였고 송으로서는 귀중한 장소들이 없어졌던 것을 국사에 의하여 다시 번전된 것은 크게 주목할만한 사실이다.
  국사가 송나라에서 체제한지 14개월 동안 50여명의 고승 대덕들과 법요를 담론한 것은 위에서 이미 살펴보았으며, 귀로에 오를 때에 불교전적 3000여권을 구해 가지고 온 것은 물론 환국 후에도 송나라에 체재했을 때 친교하였던 인사들과 서신 또는 전적의 교환을 꾸준히 하였다.
  특히 혜인원의 정원법사에게 감지에 금자로 쓴 화엄경의 삼역본과 그리고 이 경을 봉안할 장경각의 수축비로서 금 이천냥을 보낸 일이다. 이 때문에 혜인원은 속칭 고려사라 하여 서호의 명승지로 손꼽혔다.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국사가흥왕사 주지로 있을 때 천태학을 수입하여 조적에 착수하였으며, 한편 교장사를 두어 멀리 송, 요, 일본 등 여러 나라에서 구입한 장소류만도 그 수가 4700여권에 달하였다. 이 장소류의 수집 정리 간행을 위하여 제작된 것이 「신편제종교장총록」이며 이 총록에 의하여 간행된 것이 「고려속장」이다. 불교의 발원지인 인도는 물론이요, 중국 등지에서도 엄두를 못 내던 불교문화의 대사업을 국사의 염원에 의하여 실행되었음은 민족적인 큰 자랑이다. 이 총록에 소록되었던 장소류가 오늘날 80%이상이 전하여 오지 못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 속장은 수집 정리된 당시에 있어서는 말할 것도 없고 오늘날 남아 있는 목록만으로도 학계에 지중한 참고가 되고 있다.
  국사는 「화쟁론」과 「통불교」의 이념을 제창한 원효대사를 매우 존승하였으며 따라서 원효사상의 세계적인 전파를 꾀하여 지서를 요나라까지 보냈다. 요의 황제는 원효의 저서를 받아보고 크게 감격하여 찬탄하면서 칙명으로 간행 유포시켰다고 한다. 원효의 저서등을 요에 보냄과 동시에 요로부터도 불교서적을 많이 구하여 들여왔다. 문종 17년을 비롯하여 동왕 26년에 거란 장경이 들어왔으며, 이로 인해 「신편제종교장총록」에 수록된 요나라 학승들의 저술은 도종, 각원등 12인의 저술로서 29부 190권이 들어있다.
  그 가운데 「속일체경음의」는 오대이래 중국에서 일실되었던 혜림의 「일체경음의」는 매우 중요한 의의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석마하연론」은 중국에서는 일찍 일실된 것으로 국사가 이를 요에서 구하여 다시 중국에 반전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이 「석마하연론」에 대한 요나라 승려 지복의 「통현초」와 수진의 「통찬소」와 법오의 「찬현소」 및 「대일경의석연밀초」등은 고려를 거쳐 일본에 전해졌다.
  또 고려속장으로 간행된 요나라 승려 선연의 「화엄경담현결택」6권은 송, 요 양굴간의 서적 교류가 통제되었던 시기에 고려를 통하여 송에 전해졌다.
  이렇게 볼 때 불교문화 내지 문헌교류사에 있어서의 고려의 국제적 위치와 아울러 국사의 활약과 공헌은 지대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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