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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1-12-12 00:00
[전문불교코너] 백용성의 찬불가 이야기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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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불가 이야기]

3. 백용성의 찬불가운동 -찬불가가 필요했던 이유

 이러한 상황에서 용성은 불교가 다시 새롭게 태어날 수 있는 방법의 하나로 불교의 명칭을 대각으로 '대각교'라는 이름 아래 새로운 대중불교운동을 시작하였다. 그 당시 나날이 기세를 장악하고 있던 천주교 및 개신교의 극성스러운 포교활동은 침몰위기에 있는 불교계에 큰 부담이 아닐 수 없었다. 이런 저간의 배경은 용성의 대각교운동에 많은 자극을 준 것으로 보이는데, 당시 용성이 쓴 어록에 기록된 내용을 보면 비참했던 불교계의 현실을 짐작해 볼 수 있다.

 날이 갈수록 곳곳에 풀숲과 같이 교회가 늘어났으며 교회의 종소리와 찬송가 소리가 쟁쟁 울려 퍼지고 줄을 지어 교회에 가는 신도들의 모습을 본 용성의 강한 집념은 조금도 변함이 없었다. 그럴수록 그는 더욱 대각교운동에 박차를 가하게 됐는데 이 과정에서 가장 필요했던 것이 바로 찬불가였다. 용성은 직접 작사ㆍ작곡하고 풍금을 연주하면서 찬불가를 가르쳤다. 이때 용성에 의하여 창작된 찬불가는 한국 불교음악의 새로운 역사를 여는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이 음악은 불교음악으로써 아니라 우리나라 음악계에서 창작음악의 새로운 장르를 개척하는 데 큰 업적을 남기게 되었다.

 이러한 용성의 중요한 업적이 그 동안 음악계를 비롯하여 불교계에서마저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용성은 1911년부터 1940년 입적할 때까지 오직 대각교운동에 전념하면서 많은 찬불가를 작사ㆍ작곡한 것으로 알려 졌는데 안타깝게도 용성이 직접 집필한 '대각교의식' 에는 왕생가와 '권세가' 두 곡의 악보만이 수록되어 있고, 이번에 찾아낸 김정묵 '찬불가집' 에 5곡의 악보만 전하고 있을 뿐이다.

자료출처: 불교음악 학술 강연회 중 박범훈 중앙대음악대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