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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1-12-12 00:00
[전문불교코너] 백용성의 찬불가 이야기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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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불가 이야기]

2. 백용성의 찬불가운동 -대각교 운동과 찬불가

용성이 찬불가에 관심을 갖게 된 근본적 원인은 대각교 운동으로부터 시작한다. 음악을 전공하지 않았던 그가 승려의 신분으로 찬불가를 작사하고 작곡까지 하게 된 동기를 알기 위해서는 먼저 용성이 대각교를 설립하게 된 시대적 배경과 근본적 원인부터 살펴봐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이것이 결국 1920년대에 최초로 찬불가가 탄생하게 된 동기였기 때문이다.

한보광은 "용성선사 연구"에서 용성이 대각교 운동을 시작하게 된 근본적 원인을 크게 역사적ㆍ사회적ㆍ교단적 배경으로 나누어 논하고 있다. 그 내용을 종합해보면 조선시대의 숭유억불정책과 일제하에서의 불교탄압, 그리고 당시의 부패된 불교계와 외래종교의 난립 등에 그 원인을 두고 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보면 다음과 같다.

불교는 조선시대로 접어 들면서 국가적 정책에 의하여 탑압을 받기 시작하였다. 태조(1392~1398)때의 승려도첩제를 시작으로 성봉(1469~1494)이 즉위하면서 승려들을 도성에서 추방하고 도성출입을 금지 시켰으며 중종(1506~1544)때에는 승과제를 없애고 승려들을 군적에 올렸다.

인조 때에는 승려들을 남한산성 등 성을 쌓는 일에 동원했으며 현종(1659~1674) 때에는 양민이 삭발하고 승려가 되는 것을 금지시켰다. 그리고 승려들을 보는 대로 환속시켰으며 사원을 우범지역으로 취급했다. 이 때 승려들의 사회적 계급은 팔종 천민으로서 사역과 천대의 대상이 되었다.

사원은 철폐되고 신도들과 만날 수 없게 된 승려들이 깊은 산속에 은둔하게 되면서 무종적 산승불교시대로 접어들게 되었다.

고종(1863~1907)대에 들어와서는 외세에 밀려 어쩔 수 없이 문호를 개방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1876년에는 한일통상조약이 체결되고 일본의 진종과 일련종이 한국에 포교소를 설치했다. 1884년에는 개화당에 의해 갑신정변이 일어나고 다음해(1885)에는 부끄럽게도 300년 동안이나 금지됐던 승려들의 도성 출입이 일련종의 승려에 의하여 해제되었다.

자료출처: 불교음악 학술 강연회 중 박범훈 중앙대음악대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