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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2-09-28 18:47
[인물포커스] 일붕 서경보대종사 전기<붕새의 꿈과 기적>
 글쓴이 : SBC불교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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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장 개운사 대운암 시절

 

< 박한영 스님과의 만남>


위봉사 유춘담 주지스님의 후원으로 서울 개운사 대원암에 가게 된 일붕스님은 덜컹거리는 완행열차에 몸을 실었다. 일붕스님은 갖가지 감회가 뇌리를 스쳤다. 세속이 싫어 머리를 깍고 중이 된 자신이 속인과 덜컥거리는 기차를 타고 경성(서울)이라는 같은 목적지를 향해 간다는 것에 무척 신기한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 이 기차에 탄 사람 모두가 경성으로 가거나 그쪽으로 가고 있다. 같은 곳을 향해 같은 시간에, 같은 교통수단을 이용하는 것은 똑같지만 무엇하러 그곳으로 가는가 하는 목적은 제각기 다르다. 마찬가지로 이 세상사람들이 모두 삶을 살아간다는 점은 동일하다. 그러나 어떻게 어떤 목적으로 살아가는가 하는 점에 출가자와 속인은 다르다

이런 생각을 하며 일붕스님은 처음 경성으로 향했다.

 

이리묻고 저리 물으며 안암동 대원암을 찾아가 박한영 스님을 뵈옵고 절을 하였더니 지체가 단아하고 이목이 수려한 일붕스님을 도수 높은 안경너머로 바로보며 물었다.

어디서 온 학인이고? ”

완주(지금 전주의 옛이름) 위봉사에서 왔습니다.”

위봉사에서 왔어? 그곳에 진진응 화상이 강주로 계시다는 말을 들었는데 어찌 그곳에 있지 않고 이곳으로 왔는고?”

진진응 스님으로부터는 구례 화엄사에서부터 가르침을 받았습니다만 위봉사로 옮긴지 얼마 안되어 재정난으로 강원이 폐지되었습니다.”

 

박한영 스님은 저런하며 혀를 끌끌 차시더니,

남이 장에 가니까 의관만 차리고 따라간다는 식으로 다른 절에서 강원을 연다니까 덩달아 하다가 재력이 붗였던 것이로군

그런 모양입니다

모든걸 심사숙고하고 먼저 경제토대부터 닦아놓고 일을 시작하지 않고 먼저 일을 벌리기부터 하는 것이 우리 조선 사람들의 탈이야

 

이렇게 처음 뵈운 박한영 스님의 외모는 장대하신 진진응 스님과는 아주 대조적이었다.

진진응 스님이 체구와 위풍이 당당하신 반면 단아한 체구였으면서도 골격이 단단하게 생기셨고 눈은 가늘고 길었다. 외관으로 볼 때는 평범한 시골 할아버지 같으셨다.

그러나 이런 외모와는 달리 교와 선을 겸한 스님으로 재주가 천재셨으며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공부하실 당시 노재봉 스님과 진진응 스님과 더불어 한국불교의 3천재라 일컬으셨던 분이다. 박한영 스님과 진진응 스님은 다행히 장수하시어 한국 불교발전을 위해 천분을 발휘하셨으나 노재봉 스님은 아깝게도 요절하셨다.

 

< 살아있는 사전 박한영 스님 >

박한영 스님의 뛰어난 기억력은 다음과 같은 에피소드를 남기고 있다. 스님은 불교에만 밝으셨던 것이 아니라 유불선(儒佛仙) 3교에 두루 밝고 한번 읽고 들은 것은 평생 잊지 않으셨으며 스님이 평생 보신 책이 2만권이 넘고 그 2만권의 내용을 모조리 외우고 계셨다.

 

이런 까닭으로 육당 최남선 선생은 박한영 스님을 가리켜 살아있는 사전 이라 존경하고, 무엇이고 막히는 것이 있으면 박한영 스님께 여쭈었다고 한다.

박한영 스님은 선.교 뿐만이 아니라 계행으로도 유명하시었다. 동자삭발로 평생에 여자의 손목 한번 잡아본 일이 없을 정도로 동정을 지킨 노총각이셨고 술과 고기는 물론 마늘과 파와 같은 오신체는 전혀 잡수시지 않으셨다.

 

< 박한영 스님의 면모 >

물욕이 전혀 없으셨고 자신에 관해서는 전혀 무관하신 박한영 스님에 얽힌 또 다른 이야기를 일붕 큰스님의 기억을 통해 옮기면 다음과 같다.

당시 박한영 스님은 불교전문학교 교장으로 계시면서 받은 봉급의 전액을 의례히 장서를 구입하거나 대원강원의 경비로 충당하셨는데 신도들이 이런 스님을 생각해서 버선과 양말을 가지고 찾아와 절을 하고 뵈어도 책을 읽거나 글쓰는 동작을 멈추지 않으셨다.

 

기다리다 못한 신도가

스님, 여기 버선과 양말을 가지고 왔습니다. 한번 신어 보십시오하고 권하면

그냥 거기에 놓고 가십시오. 아무 때 신어도 내가 신을 것이니까...”

그래도 저희 보는데서 한번 신어보셔야죠. 그래야 맞으신지 안맞으신지 알고 후일에는 맞으시도록 해 가지고 오지 않겠습니까?” 라고 간청하면

그게 그렇게 주기가 아깝소? 아깝거든 도로 가지고 가시오하고 톡 쏘아버리셨다고 한다.

 

또 이런 일도 있었다고 한다. 어느날 나이 많은 여신도들이 몰려와서,

스님, 스님을 친견하러 왔습니다. 절 받으십시오하고 절을 하면 스님은 안경너머로 여신도들을 힐끔 바라보시고는 몸을 전후좌우로 돌려보이시며,

앞을 볼테요? 뒤를 볼테요? 아니면 옆을 볼테요? 마음데로 보시고 가구려라면서 어린아이의 유희동작과 같은 모습을 해 보이시곤 하셨다.

 

여신도에 대하여 항상 이런식으로 대하니까 한두번 뵈옵고는 다시는 찾아오지 않았으며 그런 까닭으로 여신도들 사이에서는,

멋대가리 없는 노장이라 불리우게 되었다.

 

또 독자들은 이해할 수 없는 얘기같지만 박한영 스님은 음식의 맛을 모르기로도 소문이 나 있었다고 한다. 다른스님들이 국이 짜다고 하면 덮어놓고 물을 타고, 싱겁다고 하면 덮어놓고 간장을 들어부어 자셔서 시봉하는 스님들이 배를 움켜쥐고 웃은일도 있었다고 한다.

 

박한영 스님은 의복에도 전혀 관심이 없으셔서 깨끗하거나 더럽거나 전혀 관계치 않으셨으므로 두루마기를 걸치고 시장에 나가시면 시골뜨기 할아버지나 붓장수 늙은이, 아니면 복덕방 노인 취급을 당하기 일쑤였고, 옷을 입으신 체로 주무셨고, 세수를 하실 때에도 옷을 입으신데로 언제나 찬물방울을 찍어 얼굴에 바르는 것이 고작이셨다고 한다.

 

< 박한영 스님의 명쾌한 가르침 >

박한영 스님에 대한 에피소드는 이 정도로 소개키로 하고, 일붕 서경보 큰스님께서 제주도에서 경서를 읽으면서 문리를 미쳐 깨치지 못한 사항에 대하여 박한영 스님은 어떤 명쾌한 대답을 주셨던가를 일붕 큰스님의 구술을 받아 여기에 옮긴다.

 

선생님, <대학>에서 보면 대학의 도는 명덕을 밝힘에 있다고 하였는데 그 명덕이란 무엇입니까 ?”

덕이란 일심인 마음을 가리킨 것일세. 옛날 하택(河澤)스님이 이르되 안다는 뜻의 알지()자 한 자가 온갖 묘한 문()이라 하였으니 일심을 내놓고 더 밝은 것이 어디 있겠는가?

유생들이 무얼 아는가. 글을 배워도 수박 겉핥기야 불교를 배워야만이 잘 깨달아 유교도 알 수 있는 것일세

 

선생님, <중용>에 보면 천명지위 성()이요, 솔성지위 도(), 수도지위 교()니라 하였는데 성과 도와 교가 무엇입니까? ”

그게 다 일점영명(一點靈明)의 마음자리를 가르친 것이니, 여러 가지로 말한 것은 감()이란 한 물체를 감.곶감.건시. 침시. 풋감. 땡감. 홍시라 부르는 것과 같은 것이니 때를 따라서 방편으로 이름이 달라지는 것일세

 

또 묻겠습니다. 선생님, <논어>에 보면 공자께서 아침에 도를 듣고 저녁엥 죽어도 여한이 없다 하였는데 그 도는 무슨 도이며, 하나로 꿰인다고 했는데 하나는 무엇을 뜻하는 것입니까?”

내나 그 말이지. 공자의 도라는 것은 일심정각(一心正覺)의 도를 말한 것이니 인()이니 충()이니 효()니 하는 것이 다 밝은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 아닌가. 그것을 똑바로 적당하게 표현할 수가 없기 때문에 여러 가지의 말을 한 것일 뿐이지. 하나로 꿴다는 것은 일심으로 통달한다는 말일세. 공자는 유교의 성인이지만 그 분도 다 우리 불가의 조사나 보살의 지위에 오를 분이신데 무슨 말을 하였겠는가

 

선생님, <맹자>에 보면 호연(浩然)의 지기를 양()한다는 말이 있는데 호연지기는 무엇을 뜻하는 것입니까?”

그것은 우리 불가에 일체의 애욕과 집착을 버리고 무념무상하여 법회선열의 기분을 향한다는 말일세

 

선생님, 삼경의 <주역>에 대하여 말씀해 주십시오

그것은 천지음양의 이수(理數)가 고정하여 있지 않고 금목수화토의 5(五行)기운이 우주에 차서 두루 옮기어 바뀌어진다는 말일세. 그러기에 주역을 점치는 질서라고 하지 않던가. 인도의 철학은 천지조화를 지수화풍으로 풀이하고, 동양의 중국철학은 금목수화토의 상생상극으로 미래의 길흉화복을 풀이하는 것이니 그 이치가 고정적이 아니요 두루 바뀌어 돌아간다고 해서 주역이라고 한 것일세. 무극. 태극. 음양. 양의 사상과 8쾌와 64괴가 벌어졌으니 옛날에는 이것을 가지고 국가의 운명을 판단하고 천하의 대세를 의논하고 각 개인의 운명을 판단한 동양철학의 기본이 되는 셈일세. 그러나 불교에 비추어 보면 한 생각이 나면 주역의 무극. 태극이 되고, 한 생각이 가라앉으면 주역의 무극. 태극이 없어지는 것일세

 

선생님, 노자의 도덕경에 보면 도가도면 비상도요, 명가명이면 비상명(道可道非常道 名可名非常名)이라 하였으니 그것은 무슨 뜻이오니까?”

그것도 별 것인 줄 아는군. 불교의 실상은 무상(無相)이요, 묘음(妙音)은 무음(無音)이요, 진도(眞道)는 방도가 없는 무방(無妨)이란 말과 같은 것일세

 

일붕 큰스님은 박한영 스님의 이런 가르침을 받았을 때 마치 안개속을 헤매던 중에 갑자기 해가 떠서 안개가 걷히던 환희와 같더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박한영 스님을 대하는 사람마다에게 일붕스님을 소개하며,

경보가 나이는 어리지만 한학이 대단하다고 칭찬하셨다고 한다,

 

박한영 스님으로부터 3년반 동안 사교(四敎)와 대교(大敎)의 가르침을 받았는데 졸업하자 박한영 스님은 전강(傳講)을 하여주신 표시로 일대시교의 사기(私記)를 전수하여 주시고 강원도 평창군 오대산 월정사의 불교강원 강사로도 천거하여 주셨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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