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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2-04-06 21:39
[불교어록방] 지장스님 <알기쉬운 불교교리>
 글쓴이 : 지장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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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생존(生存)의 열두가지 중요한 것(十二緣起說)


현실의 갈피를 잡지 못하는 생존과 깨달음의 세계가 이루어지는 과정을 설명한 것이 십이연기(十二緣起)이다. 십이연기란 우리들의 생존에 있어서의 중요한 것은 열두가지로 끄집어내어 그 의존관계, 조건관계를 더듬어서 미혹(迷惑)한 생존의 근원을 밝힌 것이다. 이 열두가지의 관계를 더듬어 현실의 미혹의 근원을 탐구하고 어떻게 하면 미혹의 근원을 끊어버릴 수 있는가를 추구해서 생존의 중요한 것을 찾아낸 것이다.

 

열두가지란 것은 노사(老死). (). (). (). (). (). (). 육처(六處). 명색(名色). (). (). 무명(無明)으로서 보통 무명에서 노사에 이르는 순서로 설명되어 있다.

그러나 문제점은 최후의 늙고 죽는일에 있는 것이다. 우리들의 생활를 보면 차츰차츰 노인이 되어가고 있는 까닭에 하루 살면 하루 만큼 죽음에 가까워지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죽음에 이른다. 이 늙고 죽는것에 관련되어 모든 괴로움이 일어나는 것이며 이것이 우리들의 현실이다. 그런데 인간은 죽음을 두려워한다, 어떻게해서든지 죽음을 피하려고 하기 때문에 이러한 늙음과 죽음의 괴로움으로부터 해탈(解脫)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를 탐구한 것이 <십이연기설>이다.

 

즉 늙고 죽는 <노사>는 많은 원인, ()이 있기 때문이지만 그 가장 본질적인 <>은 태어났기 때문에 현실의 생존이 있다. 다시말해 <()>에 의해 연()하여 노사가 있다>는 것이 된다. 인간이 태어났다는 것은 특정한 향친 아래 태어난다. 보다 훌륭한 어버이, 뛰어난 지능을 지니고 태어나고 싶어도 유전병 같은 것을 지니고 태어나는 수도 있다.

 

이렇게 태어난다는 <>은 어디에 기인한 것인가.

전세(前世)의 업()에 기인한다. 출생이 결정되는 그 <>을 유()라고 한다.

다시 말하면 이 <>에 의해서 <>이 있다는 것이 된다.

 

그럼 <()>는 무엇에 의해서인가. () 즉 유()를 만드는 조건은 무엇인가. 이는 취(). 취란 집착을 말한다. 이 집착의 취는 무엇에 바탕을 두고 일어나는가. 집착의 밑바탕에는 갈애(渴愛)가 있다. <()>이다.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것, 그 번뇌의 밑뿌리에 있는 가장 기본적인 것이 갈애이다. <>의 근거로 <>가 발견된다.

 

그러면 이 애() , 갈애는 무엇에 의해서 일어나는가 . 그것은 느낌을 갖게되는 ,즉 인식에 있어서의 좋고 나쁘다는 감수(感受)가 조건이 된다. 이것을 수()라고 하는데 이같이 대상에 대한 좋고 나쁜 것이 있어서 갈애가 일어나는 것이다. 그럼 이러한 감수,()는 무엇에 의해서 생기는가 . 그것은 접촋에 의해서 일어난다. 이것을 촉()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외계와의 접촉은 무엇에 의해서 성립되는가. 이것은 인식기관, 인식능력 여섯종류의 영역에서 성립되는 것으로서 본다는 영역() 듣는 귀,냄새를 맡는 코.맛을 보는 혀, 덥거나 춥다거나 거칠다거나 미끄럽다는 촉각(신체), 그리고 마지막에 마음(이식) 이상의 여섯가지 인식의 영역에서 외계와 마음과의 접촉이 성립되는 것이다. 이를 육처(六處)라 한다.

 

이 여섯가지 인식의 영역은 우리들의 정신가 육체가 있기 때문에 있다. 그 근거에 명색(名色)이 있다. 색은 신체, 명은 마음을 가르킨다. 이것들이 있을 때 앞의 여섯가지 영역이 있게 되는 것이다.

 

명색의 조건은 식()이다. 우리들의 인식을 성립시키는 것을 식이라도 부른다.

식과 명색은 육체와 정신이 있음으로해서 그곳에 인식이 성립되는 점에서는 ,명색에 의해서 식이 있는 것이지만 인식론으로 말하자면 식에 있어서 육체와 정신이 자각되고 발견되기 때문에 식에 의해거 명색이 있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상호의존관계에 있다고 이해할 수 있다.

 

다시 우리들의 마음은 업()에 의해서, 특수한 성격이나 유전 따위에 의해서 개인적으로 채색되어 있는데 이를 행()이라 하고, 이 행이 식의 조건이 된다. , 즉 업은 우리들의 의식이 미혹에 채색되어 있기 때문이 만들어진다. 의식의 근거에 무명(無明)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무명은 우리들이 그를 발견하는데서 없어진다. 생존이 미혹하다는 것을 알게되면 실로 그곳에 미혹한 생존의 없어지는 것이다. 그러기에 이 무명의 조건은 없다.

 

독자들의 혼란을 막기 위해서 덧붙여 두거니와, 이 십이연기설은 부처님의 직설로 평가되는 아함경에 설명되어 있는 원시불교의 설이거니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여러 가지 해석이 생기게 되었는데, 그 가운데 가장 유명한 것은 소승불교의 업감연기설(業感緣起說)이다.

 

이에 의하면 인간이 윤회해 나가는 모양을 십이연기설로 파악하고, 과거.현세. 미래세에 있어서의 인. 과로 구분하고 있다. 잎서 유()와 행()을 업()이라고 설명한 바 있거니와 , 행을 전세(과거세)의 업으로 그리고 유는 현세의 인()으로서 내세에의 업으로 이해한다.

 

일념(一念)을 미()하여 되풀이 미혹을 일으켜 생사유전(生死流轉)하는 것을 유전문(流轉門), 생사 가운데서 일념을 반조(返照)하여 되풀이 하며 그 근원을 찾아 최후의 무명(無明)을 멸하는 것을 환멸문(還滅門)이라 부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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