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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2-04-06 21:32
[인물포커스] 일붕 서경보대종사 전기<붕새의 꿈과 기적>
 글쓴이 : SBC불교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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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장 스님들과의 대화

 

< 결혼 당시 >

큰스님은 인습에 따라 혼례식은 올렸지만 조혼인터에 온누리에 학자로서 명성을 떨치고야 말겠다는 뜻을 저버릴 수가 없었다. 그래서 결혼생활에 별 흥미도 느끼지 못하셨음이 분명하다.

다시 신부로 맞이한 규수에 대한 스님의 애기를 들어보도록 하자.

 

규수의 집은 비록 경제적으로 넉넉한 편은 아니었지만 처가 일대에서는 뼈대있고 화목한 지반으로 제법 소문이나 있었지. 규수도 무척 여성다웠고 상당히 예쁜편이었어요. 평소에 말수가 적은 여인으로 전형적인 한국적인 규수라고 할 수 있었어요. 남편 봉양도 잘했고, 특히 시부모님과 조부모님에 대한 봉양은 지극한 데가 있었어요. 그런데도 왠지 집이 싫었던 것은 달리 마음에 두고 있던 다른 규수가 있어서였던 것도 아니고, 평생 중으로 살아야 했던 내 팔자였던 것 같아요. ”

 

< 자신도 모르게 법화사로 향하는 발길 >

왠지모르게 집이 싫어진 가장, 자신이 생각해도 보통일일 아니었다. 집이 싫어진 후부터 읽던 책이 머리에 들어오지 않으면 몰래 집을 나섰다.

그때 , 내 발걸음은 나도 모르게 제주도 남군 하원리 라는 곳에 있는 법화사로 향하곤 했지. 그곳에 간다고해서 누구하나 반가히 맞아줄 사람이 없었지만 그곳에 가서 스님들과 만나 이 애기 저 애기를 나누다 보면 시간가는 줄 몰랐지요.

 

나는 주로 경서(經書)에 대한 애기를 했고, 스님들은 불경(佛經)에 대한 애기를 했지요. 어느부분에서는 뜻이 엇갈리기도 했지만 경서중에서 특히 장자(莊子)를 좋아했던 나는 장자사상과 불교사상이 어느면에서는 일맥상통한다고 느꼈지요. 그리고 내가 읽었던 경서보다 불교의 교리(敎理)가 더 오묘하다는 사실도 깨닫게 되었고... ”

 

이처럼 법화사 스님들과의 대화에서 사상이 통하게 되자 스님들로부터 불서를 빌려다 보게 되었다. 처음 빌려다 본 책이 만해 한용운스님이 편찬한 <불교대전(佛敎大典)>이었다.

 

<불교대전>은 지금의 콘사이스 영한사전 크기의 책자였지만 1천 페이지가 넘었고 토씨만 한글을 썼고 본문 전체가 순 한문으로 되어 있어 한자에 익숙해 있던 경보청년으로는 읽기가 무척 좋았다. 이어서 빌려본 책이 해인사에서 펴낸 목각본 선문찰요였으며 <능엄경>,<반야경>, <원각경>도 그때 읽었던 불서로 기억된다고 큰스님은 말씀하셨다.

 

< 독경소리에 흔들리는 마음 >

경서를 통하여 읽은바에 의하면 이 세상에서 가장 듣디 좋은 소리는 어린자녀 글 읽는 소리와 카랑카랑한 부모님의 말소리라고 알았지만 야반삼경에울리는 종소리 또한 듣기 좋은 소리의 하나요, 스님네의 독경하는 소리도 아름다운 소리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도 그 절을 드나들면서 새로이 터득한 사실이라고 큰스님을 말씀하셨다.

 

그때 처음 들었던 불경소리중에 지금도 기억되는 불경소리는 다음 두 구절의 불경소리라며 큰스님은 조용히 눈을 감으시고 조용히 읊조리셨다.

 

문종성번뇌단 (聞鍾聲煩惱斷)

지혜장보리생 (智慧長菩裡生)

이지옥출삼계 (離地玉秫삼계)

원성불도중생 (願成佛度중생)

종소리 들으니 번뇌 끓어지고

지혜가 깊어지고 보리심이 나는구나

지옥을 여의고 삼계에 뛰어나

부처를 이루어 중생을 제도하리.

 

원비종성편법계 (願比鐘聲遍法界)

철위유암실개명 (鐵圍幽暗悉皆明)

삼도이고파도산 (三途離苦破刀山)

일체중생성정각 (一切衆生成正覺)

원컨대 이 종소리 법계에 두루하여

철산 위의 어둠 다 밝혀서

삼도의 고를 여의고 지옥산 깨어져서

일체중생 모두 정각을 깨치게 하소서.

 

종소리에 실려서 들리는 스님들의 이러한 독경소리는 비록 처음 듣는 소리였지만 일찍이 자신이 외우고나 있었던 것처럼 전혀 생소하게 들리지 않았다. 만일에 전생이 있는것이라면 그것은 전생에 자신이 스님시절에 외웠던 독경임이 분명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 나는 전생에 분명 중이었을 것이다. 내가 출가하여 중이 된다는 것은 본래의 내 모습으로 되돌아가는 것이 아닌가

 

< 어느 스님께 밝힌 첫 출가의 뜻 >

예불이 다 끝나자 경보 청년을 주지스님 방 앞으로 나아가 마음을 가다듬고 스님을 불렀다.

스님, 조용히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드릴 말씀이라니요? 언제나 제 방을 무상출입하시던 처사님이 오늘은 왠일이오. 어서 들어오시오

아닙니다. 꼭 스님께만 조용히 드릴 말씀이 있어서...”

그래요. 알았습니다.”

 

주지스님은 방안에 있던 다른스님들을 밖으로 내보내고 경보 청년을 맞이했다. 비록 오래전부터 결심한 바이지만 막상 주지스님을 대하고 나니 무슨말을 먼저 꺼내야 할지 하고싶은 말이 입가에 뱅뱅 돌기만 했다. 경보청년을 맞대면한 스님은 아무 말없이 지그시 눈만 감고 있었다

 

“..., 스님, 제가...”

겨우 첫마디를 어렵게 떼려고 하자 주지스님은 손을 저으며 조용히 입을 여셨다.

처사님께서 출가하시고 싶다는 말씀을 하시려는 것 같은데 아니 될일입니다. 처사님께서는 모셔야 할 조부님과 양친 부모님이 계시고,또 새로이 식솔도 거느리시지 않으셨습니까? 더욱이 얼마아니면 귀여운 자제분도 두실 것 같다고 하던데요. 우리처럼 머리를 깍고 중노릇하는 것도 세상 살아가는 하나의 도리입니다. 또 출가하여 중이 되려면 조부님과 부모님의 허락을 얻어야 하는데 집안 어른께서 허락하실 것 같습니까? 괜한 생각하시지 말고 마음 가다듬고 집에 돌아가 속가인(俗家人)의 도리를 다 하시오. 우리야 이것이 모두 전생의 인연 때문인걸요

 

그러나 스님...”

어허, 그냥 돌아가시라는데도요. ”

경보청년은 더 이상 입을 뗄 수가 없었다. 막무가네 떼를 쓰는것도 주지스님에 대한 예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더 이상 쪼그리고 앉아있을 수도 없었다.

 

경보청년은 내키지않는 발길을 집을 향해 돌렸다. 자신의 말을 끝까지 들어보지도 않고 박대한다는 생각에 앞서 주지스님이 어떻게 자신의 속마음을 읽었는지가 궁금했다. 그리고 자신이 출가한 후의 가족들의 모습이 주마등처럼 흘러갔다.

 

< 출가 결심에 따른 인간적 번민 >

출가 결심 후 제일 먼저 머리에 떠오른 사람이 조부님이셨다. 장가들기 전까지 한 이불속에 재우며 금이야 옥이야 애지중지 돌봐주시던 조부님, 어부생활로 생활도 어려운 판에 자신의 눈을 틔워주신 분이 할아버지가 아닌가. 손자가 젊은 나이에 훈장이 되었다고 무척이나 자랑스럽게 여기던 손자가 그것도 장가든지 겨우 몇 년만에 중이 되겠다고 했을 때 조부님의 실망이 얼마나 클 것이겠는가 하는 생각이 자신을 괴롭혔다.

 

앞으로 모셔봐야 불과 몇 년에 지나지 않을터인데 끝까지 모시지 못하면 운명하실 때 조부님은 결코 눈을 감지 못하실것만 같았다.

다음에 떠오르는 얼굴이 어머님이었다. 평생 저리 비켜서라는 말 한마디 없으셨던 인자하신 어머님, 자신이 출가하겠다고 하면 네 뜻대로 해라하면서 조용히 치맛자락으로 눈물을 닦아내시며 우실 어머니.

 

끝으로 아내와 아들 생각이 떠올랐다. 오직 나 하나만을 바라보고 우리집에 와서 시부모님을 봉양하고 사는 아내가 아닌가. 더욱 할아버지의 소원인 진손자도 낳아 준 여인이 아닌가.

20의 젊은 나이에 가장도 없이 가여운 여인의 몸으로 얼마나 고통이 따르겠는가 하는 인간적인 번민이 가슴을 쥐어뜯는 듯이 아팠다.

 

그런 생각들을 떨쳐버리고 몇 번이나 머리를 흔들었다. 경보청년은 마음을 다그쳐 먹었다.

그렇다. 사사로운 정에 얽매이지 말자. 살아가는 것 자체가 고생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그 고생의 무게가 문제이겠지. 정에 사나이의 꿈을 꺽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한 일이 아니겠는가.....”

 

< 조부님의 불호령 >

경보청년은 이렇게 마음을 고쳐먹고 빠른 걸음으로 집을 향했다. 그로부터 며칠 후, 조부님과 양부모님만이 앉아 계신 자리에서 무겁게 입을 열었다.

저는 절에 가서 주잉 되고 싶은데 허락하여 주십시요! ”

“...미친녀석같으니, 뭣이 모자라 중이 되겠다는게냐.

요 몇해동안 툭하면 절에 올라가더니 중에 물든 모양이구나.

이 할애비와 네 부모, 처자실은 어떻게 하고 .....

내 눈에 흙이 들어가지 전에는 안된다. 안돼. 그래, 얼른 죽어줄터이니 중이 되든지 목탁이 되는지 마음대로 해라!”

할아버지의 이런 역정에 집안은 일시에 아수라장이 되었고, 할아버지의 노기 어린 목소리에 애기가 놀랐는디 자지러지게 울고 있었으며 문 밖에서는 우는 애기를 달래는 아내의 목소리도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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