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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2-03-13 19:26
[인물포커스] 일붕 서경보대종사 전기<붕새의 꿈과 기적>
 글쓴이 : SBC불교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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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장 학문에 대한 최초의 의구심

 

< ()은 무엇이며 도()란 무엇인가 >

큰스님께서 서당을 다니며 글을 익힌지 어연 7년여의 세월이 지나 나이 13세이 이르자 사서삼경을 보게 되었다. 유년시절에 워낙 열심히 글을 읽었던 터여서 웬만한 글자는 모두 알수있었지만 쉽게 물리를 통할 수는 없었다.

 

<대학(大學)>의 경우, 그 첫머리에 대학의 도는 명덕(明德)을 밝히는데 있다고 하였는데 그 명덕이 무엇인지 확연히 손에 잡히지 않았다.

<중용(中庸)>에는 하늘이 명()한 것이 경품이요, ()에 따르는 것이 도(), 도를 닦는 것이 교()라고 하였는데 성이요, 도요, 교요 하는 등의 깊은 뜻을 헤아릴수가 없었다.

 

<맹자(孟子)>에는 호연(浩然)의 기운을 양()한다는 말이 있는데, 호연이 무엇인지, 양한다는 말이 어떻게 양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논어(論語)>

나의 도는 하나로 뀌느니라라는 말이 있는데 이 하나로 꿴다는 말의 하나가 무엇을 상징하는 지,

아침에 도를 듣고 저녁에 죽어도 옳으니라라고 설파한 도()란 도대체 무엇인지 의심은 꼬리를 물었다. 이미 글이란 단순한 글자나 알아 외우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그 깊은 뜻을 헤아려 알아야만이 올바른 학문의 길에 접어드는 것이로구나 하고 스스로 터득한 경보소년은 기필코 학문의 깊은 뿌리를 알기 위해 스승님과 대면했다.

스승님, 덕명이란 무엇입니까? 이미 밝은 덕이라면 더 이상 밝힐것이 없지 않습니까?”

그런 것은 물어서 아는 것이 아니다. 나이가 차면 알게 되고, 글을 많이 읽으면 저절로 깨닫게 되는니라

스승님께서도 그 깊은 뜻을 알지 못하시기에 가르쳐주시지 않는 것이 아닙니까?”

내가 왜 모르겠느냐, 알기야 다 안다만 그것은 말로는 설명할 수 없을뿐이니라

설명을 하실수 없으시다면 결국 모르시는 것이 아닙니까?”

아는것과 설명한다는 것은 근본적으로 다른 것이니라

“<중용>에 천명지위성(天命之謂性)이요, 솔성지위도(率性之謂道), 수교지위교(修敎之謂敎)라고 하였는데 성(). (). ()가 각각 다른 것입니까? 같은 것입니까?”

각각 다르느니라. 같으면 왜 여러말을 하였겠느냐

다르다면 어떻게 다른겁니까?”

“ .....”

“<맹자>에 호연지기(浩然之氣)란 무엇입니까?”

넓은 기운을 뜻하느니라

넓은 기운이란 얼마나 넓은 것을 말하며, 넓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 ..... ”

“<논어>에 이르되 조문도(朝聞道)면 석사(夕死)라도 가의 (可矣)라 하고, 나의 도는 하나로 꿴다고 하였는데 도()란 무엇이며 하나로 꿴다고 했을때의 하나는 무엇을 뜻하는 겁니까?”

내가 사서를 만들었느냐? 주자(朱子)님의 주에 해석한데로 그냥 외워주어라

아무리 읽어봐도 그 뜻이 석연치 않아서 그렇습니다.”

그럼 네가 주자보다 낫다는 말이냐?”

나아서가 아니라..... 뜻을 알 수가 없어서 스승님께 여쭈었던 것입니다.”

스승님은 역정을 내셨다.

어디 너 같아서야 어찌 글을 가르쳐 먹을 수 있겠느냐. 그만 나가거라

소년 경보는 더 이상 스승님의 심기를 거스릴 수도 없었다. 그러나 제대로 풀리지 않은 문리가 학문의 앞을 가로막는다는 생각은 지울 수가 없었다.

 

< ()를 스스로 깨치기로 결심하다 >

더 이상 스승님께 물어봤자 심한 꾸중만 들을 것 같아서 스스로 깨쳐 알아내기로 작정했다. 외진 바닷가 마을이라 스승님 말고는 달리 물어볼만한 사람도 없었다. 경서의 깊은 뜻을 헤아리고야 말리라고 생각한 경보 소년은 물리를 깨치는 다른 방도가 없다고 생각하고 스스로 깨칠때까지 알로 매진 공부에 전념키로 했다. 경보 소년은 <주역(周易)>을 읽고 <노자(老子)>의 도덕경(道德經)을 읽고 <장자(莊子)>의 남화경(南華經)을 읽었다.

 

그렇다. 공자님께서는 주역을 깨치기 위해 가죽 책갈피가 달아서 세 번이나 갈아끼울 정도로 읽으셨다고 하니 나는 가죽 책갈피는 고사하고 종이 책갈피 세 번은 갈아끼울 정도로 읽고 또 읽어 깨치고 말리라

이렇게 결심한 경보 소년은 학문의 물리를 깨치기 위해 달빛과 반딧불, 눈빛을 벗삼아 밤낮없이 책을 읽었다. 하도 책을 읽어 문장을 다글다글 외울 정도에 이르자 책갈피가 달아 넝마조각이 다 되어 조부님께서 다시 풀칠을 하여 책갈피를 바꿔 끼워줄 즈음 안개같던 무명이 서서히 걷히며 문리가 떠오르는 것이었다. 문리를 깨치기 시작한 즈음의 큰스님의 증언을 들어버기로 하자.

 

그때 내 나이가 15세였어요. 아직 확연히 문리를 통할 단계는 아니었고, 말하자면 창문에 쳐놓은 커튼 너머로 지나가는 사람의 얼굴은 알 수 없어도 남자인가 여자인가 구분할 정도의 문리는 탄 셈이지요. 그때의 희열이란 나의 서당 스승님께서 내게 말씀하신 것처럼 말로는 표현할 수는 없지요. 마치 한여름 몇날며칠 골방에 쳐박혀 있던 사람이 바닷물에 풍덩 뛰어들어 온 몸의 때를 다 벗기고 난 후의 그런 상쾌함이었지요.”

 

이렇게 반눈을 뜰 무렵 가르치시던 스승님께서 신경통으로 몸져 눕게 되었고, 스승님의 며엥 따라 스승님 대신에 학동들을 가르치기 시작하셨다고 한다. 열다섯 나이에 자신보다 7~8살 내지는 10여살 이상 더 먹은 아이를 가르친다는 것은 여간 힘든일이 아니었다.

 

온 정성을 다하여 학동들을 가르친 후에는 머리도 식힐 겸 서당 주위의 나무 밑이나 마을 곁으로 흐르는 개천가를 거닐기도 했다. 시원한 바닷바람이 땀을 식혀주었다. 15세의 나이에 자신보다 연상의 아이들에게 글을 가르친다는 자부심도 생겼다.


< 세상의 붕새가 될 웅지를 품다 >

그러나 그것도 잠시뿐, <장자(莊子)>의 글이 생각났다.

그렇다, ()새는 날개를 펴면 하늘을 덮고, 한번 물을 들이키면 오대양의 물이 마른다고 하지 않았던가. 세상에 나같은 사람으로 태어나 사서삼경과 같은 불후의 명작을 남기는 사람도 있는데 겨우 그들의 글을 가르치는 것에 만족해야 하다니

붕새가 어찌 글에나 나오는 환상의 새 일소냐. 나는 기필코 도()와 학문으로 세상을 덮는 붕새가 되리라. 그렇기 위해서는 이것을 빠져나가야 한다. 예부터 말새끼는 나면 제주도로 보내고 , 사람은 나면 서울로 보내라고 하지 않았던가. 어려운 형편에 글공부 하도록 뭍으로 보내달라고 할 수 없지 않은가. 내 스스로 이 곳을 빠져나가 붕새가 되리라

 

우리는 여기서 큰스님의 호 즉 한마리의 붕새라는 뜻의 일붕(一鵬)이라는 호가 어떻게 지어졌는가를 알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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