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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2-02-14 21:27
[불교어록방] <법천대종사 법어>무심코 뱉은 한마디 말의 과보
 글쓴이 : 법천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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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심코 뱉은 한마디 말의 과보>

오늘은 일상생활 가운데 빼놓을 수 없는 말의 과보에 관해서 설화를 중심으로 말씀드리려고 합니다.우리가 짓는 업은 몸과 입과 뜻의 삼업(三業)이 있는데,그 가운데서 입으로 짓는 업을 구업이라 합니다.우리의 생활은 다른사람과의 대화를 통해서 이루어진다고해도 과언이 아닙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구업의 과보가 얼마나 막중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큰 비중을 두지 않는 듯합니다.그러나 이제 소개하려고하는 인연설화를 통해서 보더라도 그 과보는 참으로 두려운 것입니다.

 

우리 인간이 다른동물과 비교해서 두드러진 장기를 든다면 말이라는 수단을 통해서 서로의 의사소통이 가능하다는 점입니다.그러니 이 장점이 때로는 큰 재앙의 원인이 된다는 사실도 간과할 수 없습니다.

 

옛날 부처님이 사밧티의 기원정사에 계실때였습니다.부처님의 십대제자 가운데 한분으로 지혜제일인 사리불 존자는 밤낮으로 세차례씩 천안(天眼:하늘눈이란 뜻으로 모든것을 걸림없이 보는 지혜의 눈)으로 세상을 살피면서 제도할 만한 일이 있으면,곧 그 자리에 가서 제도하셨습니다.

 

마침 그때 한 무리의 장사꾼들이 다른나라로 장사하러  떠나면서 개 한마리를 데리고 갔습니다.도중에서 장사꾼들은 피곤하여 잠을 잤습니다.이때 배가 고픈 개는 장사꾼이 가지고 가던 고기를 훔쳐 먹었습니다.한숨 자고 일어난 상인들은 고기가 없어진 걸 보고 잔뜩 화를 내어 개를 두들겨 팼습니다.이 바람에 개는 다리가 부러졌고,그들은 빈들에 개를 버리고 떠났습니다.이때 사리불 존자는 그 개가 땅에 쓰러져 굶주리고 괴로와 신음하면서 거의 죽게 된 것을 보살펴주었습니다.존자는 가사를 입고 바리를 가지고 성에 들어가 밥을 빌었습니다.얻은 밥을 가지고 성을 나와 굶주린 개한테 가서 밥을 주었습니다.개는 그 밥을 먹고 생기가 돌자 기뻐하면서 비록 짐승이지만 고마운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리불 존자는 이 개를 위해 좋은 법문을 자상하게 들려 주었습니다.그런일이 있은 후로도 사리불은 여전히 홀로 다니면서 걸식하였습니다.하루는 개가 환생한 바라문의 집앞을 지나가고 있었습니다.바라문은 존자를 보고 물었습니다.

"존자께서는 홀로 다니시는데 시중드는 사미가 없으십니까?"

"내게는 사미가 없습니다.당신에게 아들이 있다는데 내게 줄 수 있습니까?"

"내게 균제라는 한 아들이 있긴 하지만 아직 나이가 어려서 심부름을 시키지 못할것입니다.앞으로 좀더 자라면 존자께 출가시키도록 하지요."

 

존자는 그 말을 듣고 마음에 새겨 두었다가 그 아이가 일곱살이 되었을때 다시 바라문을 찾아가 그 아들을 청했습니다.바라문은 곧 그 아들을 사리불께 맡겨 출가를 시켰습니다.사리불은 그 아이를 제타숲에 데리고 가서 미묘한 법문을 차례차례 일러주었습니다.그는 곧 마음이 열리고 뜻이 풀려 아라한이 되었습니다.아라한은 큰 깨달음을 얻은 성자를 말합니다.사미 균제는 처음으로 도를 얻도 나서 자신의 혜안(慧眼)으로 지나간 세상일을 돌이켜 보았습니다.

"나는 본래 어떤 업을 지어 현재의 몸을 받았으며,거룩한 스승을 만나 아라한이 될 수 있었을까?"

그는 자신의 전생을 살펴보다가,한 마리의 개이던 그가 스승 사리불 존자의 은혜로 이 몸을 받아 도를 얻게 되었음을 알았습니다.

 

그는 환희심이 솟아 안으로 다짐했습니다.

"나는 스승의 고마운 은혜를 입고 축생의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이제는 이 목숨이 다할때까지 스승을 잘 모셔드리고 언제까지든지 사미로 있으면서 큰 계(비구계)는 받지 않으리라."

이때 아난다가 부처님께 여쭈었습니다.

"세존이시여,저 사미 균제는 전생에 어떤 나쁜 업을 지었기에 개의 몸을 받았으며,또 어떤 착한 일을 했기에 해탈을 얻었는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러자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그 옛날 카샤파 부처님 시절에 여러비구들이 한 곳에 모여 살았었다.어떤 비구는 음성이 맑고 낭낭하여 범패(梵唄)를 잘 불렀으므로 사람들은 모두 즐겨 들었다.그러나 한 비구는 나이가 많아 음성이 둔탁하여 범패는 잘 부르지 못했지만,항상 노래를 부르며 혼자서 즐겼다.그리고 이 늙은 비구는 아라한이 되어서 사문의 공덕을 갖추고 있었다.

어느날 음성이 고운 젊은 비구는 노 비구의 둔탁한 범패소리를 듣고 조롱하였다.'스님의 음성은 마치 개 짓는 소리같습니다.'노비구는 그를 불러 물어 보았다.'그대는 나를 잘 알고 있는가?''저는 스님을 잘 압니다.카샤파 부처님의 제자지요.'노 비구는 의연히 말했습니다.'나는 이미 아라한이 되었고,사문의 위의와 법도를 온전히 갖추었느니라'

젊은 비구는 이 말을 듣고 두려운 생각이 들고 온몸이 굳어지려고 했다.그는 자기의 잘못을 뉘우치고 참회했다.노비구는 그의 참회를 받아주었다.젊은 비구는 덕이 있는 노비구를 깔보고 조롱한 과보로 개의 몸을 받았고,집을 나와 청정한 계행을 가졌기 때문에 해탈을 얻게 되었느니라."

현우경 사미균제품

 

우리가 죽어서 무엇이 될 것인가?또는 어디로 갈 것인가? 사후의 세계는 진정 존재하는 것인가? 이런 의문은 누구나 가져볼 수 있는 의문입니다.불자들은 대부분 막연하게나마 윤회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다.기독교인들은 윤회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습니다.다만 사후의 세계를 천당과 지옥으로 나누어서 신의 뜻에 따라 천당으로 보낼 사람은 천당으로 보내서 영생을 얻게하고,지옥으로 보낼 사람은 지옥으로 보내서 영원히 꺼지지 않는 유황불 속에 집어 넣는다고 합니다.그러므로 기독교의 교리에 따르자면 무조건 예수를 믿어야만 합니다.아무리 선한 사람이라도 예수의 이름을 모르면 지옥행입니다.예수의 이름을 알아도 믿지 않으면 소용이 없습니다.

 

그러나 불교의 윤회사상은 그런것이 아닙니다.천당과 지옥행을 결정하는 심판관은 존재하지 않습니다.부처님께서 보리수 아래서 깨달은 진리는 이 세상 어디에도그런 허무맹랑한 신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었습니다.이른바 '이것이 있으므로써 저것이 있고 이것이 멸하면 저것이 멸한다는 연기의 법칙은 창조신이나 주재신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부처님께서 도를 이루시기 전의 인도사회는 대부분 지금의 기독교인들처럼 절대적인 능력을 가진 브라만이라는 신이 존재한다는 관념이 지배적이었습니다.그러나 부처님께서 '위없는 깨달음'을 얻으시고 이를 강력하게 부정하셨습니다.

 

그러면 무엇이 우리의 생사를 좌지우지하는가?생사를 주관하는 것은 무엇인가?그것은 다름아닌 업력(業力)입니다.오직 자신의 업의 힘에 의해 모든 생명체는 육도를 윤회하게 되는 것입니다.그렇다면 업이란 무엇인가?

 

()이란 범어로는 카르마(karman)라고 하는데,우리가 짓는 업에는 신구의(身口意)삼업(三業)이라고해서 몸과 입과 뜻으로 짓는 세가지 없이 있습니다.이것을 자세하게 나누면 십업(十業)이 됩니다.몸으로는 살생,도둑질,음행,음주의 네가지 업을 짓게되고 입으로는 거짓말,악담,이간질 하는 말,교묘하게 꾸미는 말등이 있고,마음으로 짓는 업에는 탐욕,진애,치심의 삼독심이 있습니다.이를 십악업(十惡業)이라고 하고,이와반대로 이 역가지의 악업을 짓지 않는 것을 십선업(十善業)이라고 합니다.그런데 이 십악은 어떤것이나 그 밑바탕에 탐ㆍ진ㆍ치의 세가지 중의 하나가 그 뿌리가 되어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의 삼업 가운데 의업이 가장 무겁다고 합니다중아함경 권32우바리경에 보면,고행을 위주로 수행하는  니간타의 수행자가 부처님을 찾아와서 부처님과 문답을 나누는 장면이 있습니다.여기서 니간타는 신..의 삼업 가운데 몸으로 짓는 업이 가장 중하다고 주장합니다.그러나 부추님은 여러가지 비유를 들어서 뜻으로 짓는 업이 가장 중하다는 사실을 깨우쳐 주게 됩니다.

 

'니간타'는 자이나교를 말하는데 그들은 결과론에 치중해 있다고 볼 수 있고,불교는 동기론에 입각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몸이나 입으로 짓는 온갖 행위는 그 근본 동기가 마음에서 일어나기 때문입니다.또 깊이 생각한 후에 일부러 한 업과 그렇지 않고 뜻밖에 즉 무의식적으로 한 업에는 차이가 있습니다.아무런 뜻도 없이 짓는 업은 그 행위만으로는 갚음을 받지 않는다고 합니다.즉 죄가 되지는 않습니다.그러므로 ㅇ리는 무엇보다도 마음을 잘 다스림으로써 몸과 입으로 짓는 업을 청정히 하도록 해야 합니다.

 

또 업에 의해서 과보를 받는 시기는 일정하지 않기때문에 이에 대해서도 우리는 잘 이해하지 않으면 안됩니다.더러는 정말로 인과응보가 있다면 어떻게 악인이 잘 살 수 있으며,선한 사람이 못사는 현실이 전개되는가?하는 의문을 갖게 됩니다,업의 결과가 나타나는 시기가 다르기 때문에라는것을 모르기 때문에 발생한 오해입니다.

 

업은 그 결과가 나타나는 시기에 따라서 삼시업(三時業),즉 순현업(順現業),순생업(順生業),순후업(順後業)으로 나누어 집니다.각기 이 세상에서 지은 업에 의해서 현세에서 과보를 받는 것이 순현업이고,다음 태어난 세상에서 세상에서 받는것이 순생업,다음 세상도 아니고 그 다음 세상에서 받는 업이 순후업입니다.업에 대한 설명을 하자면 한량이 없습니다만,한가지 우리가 명심해야 할 것은,업은 반드시 그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입니다.단지 몸이나 입으로 지은 업만이 아니라 마음으로 짓는 업도 그 결과가 필연적으로 나타납니다.그러므로 불교를 잘 믿는 사람은 마음을 잘 다스리는 사람입니다.'일체유심조'라 하지 않습니까?온갖 현상은 마음의 조화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그러므로 우리 불자님들은 얼굴 가꾸고, 몸 단장하는데만 정력을 소비할 것이아니라 마음을 바르게 갖는 마음의 미용에 더 큰 노력을 해야 합니다.

 

오늘 소개한 설화는 '균제'라는 한 사미의 전생담입니다.불행하게도 한 마리의 개로 태어나 굶주리다 못해 주인의 음식을 훔쳐먹은 벌로 실컷 두들겨 맞고 다리병신이 된 후 들에 버려진 개의 전생담이기도 합니다.그러나 그 불쌍한 신세의 개는 다행히 천안통을 얻어 불쌍한 중생을 살펴 제도하시던 사리불존자의 덕택으로 음식을 얻어먹고 거기에 법문까지 듣고 죽은 후에는 바라문의 아들로 다시 태어났습니다.더구나 출가하여 사리불존자의 제자가 되었고,열심히 수행한 결과 아라한이라는 최고의 경지에 이르렀던것입니다.

 

우리는 이 설화를 통해서 몇가지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첫째는 모든 중생이 평등하다는 사실입니다.사람이 개가 될수도 있고,개가 사람이 될수도 있다는 사실은 바로 모든 생명체의 근원이 동일하다는 논리에서만 가능합니다.이는 바로 모든 생명체의 절대평등을 의미합니다.현실적으로는 여러가지 형태의 차별이 존재하지만 그 근본은 평등하기 때문에 이와같은 변신이 가능한 것입니다.<열반경>'일체 중생은 다 불성을 갖고 있다.다만 번뇌에 덮혀 있음으로 볼 수가 없구나'하셨고,<대집경>에는 '모든 중생이 다 자기 몸이 있고 자기의 몸도 또한 중생의 몸 가운데 있음이 마치 그림자의 난타남과 같은 줄 알아서,능히 중생으로 하여금 불신(佛身)이 되게하라.또 자기의 몸으로 하여금 중생의 몸이 되게 하라'하신 말씀 등은 모든 중생이 불성의 소유자로 제하기에 따라서는 부처가 될 수 있는 존재임을 역설하고 있습니다.이 온갖 존재의 평등성은 단지 거기에 머물러서는 안되고 생명존중의 실천으로 옮겨져야 합니다.불교에서 불살생을 제일의 계목으로 설정한 것이라든지,육식을 금기로 하는것은 바로 이같은 절대평등의 사상이 모든 생명을 존중하는 자비정신으로 승화한 것입니다.

 

둘째는 어느 한가지만으로 사람의 인격을 판단해서는 안된다는 점입니다.사람은 누구나 장점과 단점이 있습니다.잘하는것이 있는가 하면 못하는 부분도 있기 마련입니다.만능탈렌트는 흔치 않습니다.뿐만아니라 더욱 겉으로 나타난 재주는 그것이 곧 인격을 나타내지는 않습니다.설화에서 젊은 비구가 자신이 범패에 능한것을 뽐내는 마음에서 목소리가 나쁜 노비구를 비웃었습니다.그러나 그 노비구는 아라한의 경지에 오른 성인이었습니다.우리 신도님들 가운데도 염불을 잘하는 스님,목청이 좋은 스님을 따르고 그렇지 못한 스님을 경원하는 분들도 계십니다.그러나 이것은 잘못된 것입니다.염불이란 '부처님을 생각하는 것'을 뜻합니다.그러므로 입을 꼭 다물고도 염불을 할 수 있고,입으로는 애절하게'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을 부른다고해도 마음속에 딴 생각이 들어있다면 이는 염불이 아니라 송불에 불과합니다.진정한 염불은 마음에 있는것이지 목소리에 있는것이 아닙니다.

 

<금강경>'약이색견아(若以色見我) 커나 이음성구아(以音聲求我)하면 시인행사도(是人)은 행사도(行邪道)라 불능견여래(不能見如來)니라'하셨습니다.겉모습에서 부처님을 찾거나 목소리로 부처님을 구한다면 이는 삿된 길로 가는 사람이어서 필경 여래를 볼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설화에 나오는 균제 사미는 전생에서 자신의 목소리가 고운것에 자만해서 큰스님의 노랫소리를 듣도 마치 개가 짓는것과 같다는 망발을 했던것입니다.그 과보로 자신이 개의 몸을 받았던 것입니다.혹자는 그까짓 실수를 가지고 그런 큰 과보를 받을 수 있겠는가 할지 모르겠습니다만 여기서 아라한은 부처님과 버금가는 성인입니다.얕은 재주만 밑고 성인을 비웃었으니 그 과보가 막중해서 그런 과보를 받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끝으로 비록 어떤 어려운 환경에 처했을지라도 개과천선하면 새사람으로 거듭날수 있다는 무한한 가능성을 이 설화를 통해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또한 이 일은 계행을 잘지킴으로써 가능하다는 사실입니다.노비구를 얕잡아 보고 함부러 지껄인 과보로 개가 되었지만 츨가하여 계행을 잘 지킨 공덕으로 결국은 아라한으로 성자가 되었다는 사실은 아무리 약한 사람이라도 선인이 될 수 있고,미천한 중생이라도 부처가 될 수 있다는 무한한 가능성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부처님께서 이 설화를 통해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는 교훈의 핵심은 '자신의 작은 재주를 믿고 남을 업신여기는 마음을 가져서는 안된다'는 점입니다.입으로 남을 비웃는 일을 해서도 안될 악업입니다.그 밑바닥에는 남을 업신여기는 마음,자신이 잘났다고 생각하는 교만한 마음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입니다.모든 사람의 인격을 존중하는 마음을 갖는다면 설사 자신보다 더 재주가 없는 사람이라도 결코 비웃는 일은 없을것입니다.

 

불자여러분!

"세계는 업에 따라 존재하고,사람 또한 업에 따라 존재한다.수레바퀴가 쐐기에 얽혀져 굴러가듯이 생존하는 모든것은 업에 속박당하고 있다."숫다니파타에 나오는 말씀입니다.

이 세상은 어느 절대자에 의해서 움직여지는 것이 아닙니다그렇다고 아무런 질서도 없이 아무렇게나 움직이는것은 더더욱 아닙니다.그렇다고 아무런 질서없이아무렇게나 움직이는 것은 더더욱 아닙니다. 받은 행.불행은 모두 나 자신의 업력의 결과입니다.우리 다같이 이 엄연한 인과응보와 윤회의 실상을 깨달아 후회없는 삶을 삽시다. 그러기위해서는 모든 사람을 부처님처럼 존중하는 마음을 가집시다.

나무 석가모니불!

나무석가모니불!

나무 시아본사 석가모니불!

불교설법연구원편 

법천스님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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