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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2-01-15 23:09
[인물포커스] <법천스님 자전적 에세이>세상에서 가장 귀중한 것 (三寶)
 글쓴이 : 법천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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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세상에서 제일 소중한 것,가장 값진 것이 무엇이냐?하는 것을 주제로 불교의 교리 가운데 가장 기본이 되는 삼보에 대해서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무엇이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이냐 하는 질문을 받으면 여러분은 무엇이라고 대답하시겠습니까?

돈이라고 하는 불자는 아마 없을 것입니다.설령 속으로는 돈이 제일 소중한 것이지 무어야!라고 생각하는 분도 있겠으나 명색이 불자인데 차마 돈이 최고다 이렇게 말할 수는 없겠지요.

돈이란 것은 아무리 많이 모아도 죽을 때는 한푼도 가져갈 수 없을뿐만 아니라 살아 생전에도 돈으로 인해 오히려 생명을 잃기도 합니다.주머니가 텅텅 빈사람은 밤길을 두려워하지 않지만 주머니가 불룩하면 대낮의 한길도 두려운 법입니다.
하기사 요즘은 인신매매단이 활개를 치므로 젊은 여자들은 안심하고 살 수 없는 세상이긴 합니다.

아무리 애를 써고 돈을 모아도 돈이 행복과 직결되지는 않습니다.오히려 죽을 고생을 해서 돈을 모은 사람은 돈이 아까워서 마음껏 쓰지도 못하고,쓰는 사람은 따로 있다고도 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옛사람은.

"꽂마다 찾아다녀 애써 꿀을 모았지만 누글 위해 고생했는지 알 수 없구나"
      < 선가귀감 >
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명예는 어떨까요?
우리 국민은 일찍부터 유교적인 사고방식으로 교육을 받아 왔기 때문에 명예를 소중히 할뿐 아니라 명예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버리는 사람도 있습니다.그래서 명예가 가장 소중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명예가 가장 소중하다는 생각은 잘못입니다.왜냐하면 아무리 명예가 높더하더라도 그 드높은 명예로 인하여 사람의 생활이 행복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들이 구하는 명예는 헛이름을 명예로 알고 그에 속는 것입니다.진실한 명예는 세월이 가도 변하지 않는 것이라야 할텐데 대개는 살아 생전에도 지키기 어려운 것들을 명예라고 생각합니다.

서산대사는 선가귀감에서,
"세상의 뜬 이름을 탐하는 것은 쓸데없이 몸만 괴롭히는 것이요,세속의 잇속을 쫓아 허둥대는 것은 업의 불에 섶을 더하는 것과 같다"라고 간파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처자권속이 가장 소중한 것이냐?
부모형제를 비롯해서 아들.딸이 가장 소중한 것이냐?
그것도 아닙니다.여러분은 자식들을 위해서 할 짓.못할 짓을 다하지만 그 자식들이 여러분의 행복을 보장해 주지는 못하지 않습니까?

여러분 가운데는 자식들의 뒷바라지에 꽃다운 청춘을 다 보내버리고 이제는 나이들어 오히려 자식들의 눈치보기에 바쁜 분도 있을 것입니다.

'무자식이 상팔자'란 말이 있고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잘 날 없다'는 속담처럼 자식이 도리어 근심.걱정의 덩어리가 아닙니까?더구나 요즈음은 핵가족제도라는 것이 전반적인 사회풍조가 되어서 부부끼리만 살려고 하는 세상이므로 오히려 부모를 귀찮아 하는 실정입니다.
만일 여러분불자님들이 자식을 이 세상에서 가장 값진 보물로 알았다가는 언젠가는 닭똥같은 눈물을 줄줄 흘릴날이 올 것입니다.

그렇다고 자식들을 원망할 수도 없을 것입니다.여러분들도 여러분의 부모님들이 기대한 만큼 부모님들에게 만족하게는 못했을테니까요.

<백유경>에 재미있는 비유가 하나 있습니다.
옛날에 한 노인이 있었습니다.무더위를 피해 몇 아름되는 큰 나무의 그늘에서 쉬고 있는데 갑자기 큰 곰이 나타났습니다.이 노인은 갑자기 당한 일이라 멀리 달아나지도 못하고 나무를 빙빙 돌면서 피하려고 했습니다.

그러자 곰은 한쪽 앞발로는 아람드리나무를 끌어 안고 또 다른 한발로는 노인을 잡으려고 했습니다.노인도 너무나 급한 나머지 엉겁결에 곰처럼 한 팔로는 나무를 안고 다른 한 팔로는 곰의 발을 잡고 말았습니다.

일이 이렇게 되자 곰도 깜짝놀라서 더이상 움직이지 못하고 서로 그런 상태로 한동안 버티게 되었습니다.그러나 노인은 곰의 다리를 한없이 붙잡고 있자니 그럴 힘이 없고 그렇다고 놓아 버리자니 곰에게 잡혀 먹힐 터이므로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그야말로 진퇴양난에 빠진 것입니다.

이때 마침 어느 한 젊은이가 그 곳을 지나갔습니다.노인은 반가워서 젊은이에게 말했습니다.
"여보시오 젊은이 내가 지금 곰을 잡으려고 곰의 발을 붙잡고 있는데 혼자서는 힘이 드는구려.나하고 함께 이 곰을 죽여서 우리 서로 나누어 가집시다.여기와서 곰발을 좀 붙드시오"

이 말을 들은 젊은이는 노인의 말만 믿고는 얼른 곰의 발을 노인대신에 붙들었습니다.그러자 곰의 다리에서 헤어난 노인은 휴우-한숨을 쉬고는 곰 발을 대신 잡고 있는 젊은 사람에게,
"나는 이만 가보겠소.그대도 어떤 사람이 오고든 그 곰 발을 물려주고 그 자리에서 피하시오"하고는 황급히 달아나 버리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불자여러분.여러분도 부모로부터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없는 곰발과 같은 가정을 물려받아서 결국은 그 골칫거리를 자식에게 물려주고 떠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가장 소중한 보물.보배일까요?
우리불자들은 불보(佛寶).법보(法寶).승보(僧寶)라고하여,부처님과 법과 승가를 가장 소중한 보배로 칩니다.그러므로 우리의 신앙대상인 이 삼보의 뜻을 정확히 알지 못하고서는 참다운 신앙을 할 수 없습니다.

먼저 불보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불보란 부처님을 말합니다.부처님이 세상에서 가장 귀하고 소중한 보배라는 것입니다.왜냐?부처님은 스스로 진리를 깨달으셨고 또 다른 사람들을 깨닫게 하여 자각.각타의 행이 원만하여 세상의 그 무엇보다는 귀중하기 때문입니다.

부처님이 깨달을신 진리는 세월따라서 변하는 것이 아니고,사람따라 다른 것도 아닌 누구에게나 공통되는 행복의 길,참된 삶의 길입니다.
부처님께서 최초로 이 길을 발견하신 것입니다.

부처님이 깨달음을 얻기 전에는 인간은 어떤 신의 창조로 이루어졌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습니다.그러나 신이 인간과 천지만물을 만들었다고하면 인간이란 결국 신의 도구에 불과하다는 이야기입니다.공장에서 기계를 만든다거나 완구를 만드는 것은 인간의 필요 즉 쓰임새를 따라 만드는 것입니다.이와 마찬가지로 신이 인간을 만들었다면 신의 쓰임새,신의 용도에 따라서 만들었을 것 아닙니까?

그것이 사실이라면 인간은 자기의지보다는 오직 신의 심리,신의 눈치만 보고 살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이 얼마나 불합리한 생활입니까?자기의 노력과 그 댓가로 행복을 얻는 것이 아니라 오직 조물주인 신의 뜻에 의해서만 행과 불행이 결정된다면 인간의 자발적인 노력은 사실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옹기장수가 옹기를 만들때 귀히 쓸 물건은 좀 더 정성을 들여서 만들고,허드레로 쓸 물건은 힘든 공력을 드리지 않고 대강대강 형태만 갖추어 만들 것입니다.

이처럼 허드레로 만들어진 옹기그릇이 귀하게 쓰이지 않는다고 옹기를 만든 사람에게 불평할 수 없듯이 우리 인간도 설사 불행하게 되더라도 신에게 불평할 수는 없고,오직 신의 은총만을 바라고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부처님은 이런 사고를 완강히 부정하셨습니다.왜냐하면 부처님이 깨달으신 인생의 참모습은 어떤 신의 창작품이 아니라 각자가<하늘 위,하늘 아래,이 세상에서 가장 존귀한 존재들>이었기 때문입니다.부처님이 발견하신 진리는 모든 생명체는 각자가 독립적이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서로 의지하는 상의상자(相依相資)의 관계,달리 말하면 연기의 법칙에 위해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징그럽다고하는 지렁이도 밟히면 살려고 꿈틀거리고,하루살이도 그 짧은 일생을 단 한순간도 쉬지 않고 움직이는 것은 모든 생명체는 스스로 자기생명을 무엇보다도 소중하게 여기기 때문이 아닙니까?

부처님은 최초로 인간을 신의 종속에서 해방시키신 분입니다.위대한 인권선언이요,인류의 대평등선언입니다.서양사람들이 인권을 주장할때면 으례히 신 앞에서는 모든 사람이 평등하다는 말을 합니다.그러나 진리앞에서는 신과 인간,삼라만상과 준동함령이 모두 평등한 것입니다.

부처님은 이런 진리를 최초로 깨달으셨을 뿐만 아니라 우리 중생들을 괴로움에서 건져내어 해탈을 얻게하시는 사생의 자부요,인천의 대도사이십니다.그러므로 세상에서 가장 귀중한 존재는 바로 부처님입니다.그러므로 부처님을 보배라고 하는 것이요,불보라고 하는 것입니다.

다음은 법보인데,법이라는 것은 누가 만든 것이 아니라 본래부터 있는 만고불벼느이 진리를 말합니다.이 법이 존재하므로 삼라만상이 조금도 흐트러짐 없이 서로서로 의지하여 존재하는 것입니다.이를 최초로 발견하신 분이 바로 부처님입니다.

이 법을 구체적으로 말씀을 통하여 설명하신 것이 부처님께서 45년간 중생들을 위해 설하신 팔만사천법문입니다.그러므로 법인 진리자체만이 아니라 부처님의 말씀을 법보라고 하는 것입니다.
진리만이 아니라 부처님의 말씀을 왜 법보라고 하느냐?왜냐하면 부처님께서 비록 온갖 이치를 깨달으셨다고 할지라도 그 분 혼자서만 즐기고 마셨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부처님도 설하신 법도 존재하지 않을 것입니다.그러나 다행히 부처님은 깨달으신 내용을 중생들을 위하여 45년간이나 설하셨습니다.

부처님과 더불어 부처님이 말씀하신 깨달음의 내용이며,진리의 참모습인 부처님의 교설이 또한 가장 고귀한 보배가 되는 것입니다.이것을 구체적으로 기록한 것이 불경입니다.팔만대장경은 부처님이 깨달으신 법의 내용을 기록한 성전입니다.

다음으로는 승보인데,승보는 승이 보배라는 것입니다.그러면 승이란 무엇이냐?이에 대해서는 여러가지의 해석이 있습니다.

승이란 범어로는 상카인데 음역해서 승가라고도 하고 간략하게 승이라고 하는 것입니다.듯은 화할 화(和).무리 중(衆)이라고 합니다.화는 화합이라는 뜻,중은 무리.여럿이라는 뜻입니다.화합중.화합승이라고도 하고 여러 불자들이 화합하는 것은 마치 여러 강물이 모여서 바다를 이루지만 바닷물의 맛은 한가지인 것에 비유해서 바다해자 해중(海衆)이라고도 합니다.

다시말하면 승이란 화기애애하게 모여사는 부처님의 제자들을 말합니다.부처님제자란 단순히 스님들만이 아니고 사부대중을,남여 스님네와 남녀신도를 말합니다.이처럼 승가는 출가승려만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출가2부중으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이 승가 곧 스님네들과 신도들이 왜 가장 소중한 보배가 되는가 하면 승가가 있음으로서 부처님의 교설을 홍보하고 후세에까지 불법을 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만일 승가가 없었다면 우리는 지금 어떻게 부처님을 알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들을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부처님의 제자들을 승보라고 하여 부처님과 똑같이 존경할뿐 아니라 신앙의 대상으로 삼는 것입니다.재가 신도라도 부처님의 정법을 바르게 깨닫고 이를 널리 전하는데 노력하는 사람은 삼보의 하나인 승보가 되는 것입니다.그러므로 여러분은 스님들을 존경하는 것은 물론이지만 신도님 가운데도 남의 모범이 되는 불자는 다같이 존경하고 받들어야 할 것입니다.

<유마경>은 유마힐이라는 거사의 보살행을 기록한 경전이고 <승만경>은 승만부인이라는 한 우바니가 설한 경전입니다.불교인은 너나없이 대승불교를 주창하고 있는 만큼 스님들만이 아니라 여러재가 불자님들도 스스로 삼보의 하나인 승보라는 점을 깊이 인식하고 승보로서 부족함이 없도록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지금까지의 설명으로서 여러분은 부처님과 부처님의 가르침과 부처님의 제자 이 셋을 불보.법보.승보라고 하는 이유를 아시겠지요?그런데 우리는 이 세가지 보배를 따로따로 생각할 것이 아니라 하나로 알아야 합니다.어느 하나를 따로 떼어 생각할 것이 아니라 부처님과 부처님의 법과 부처님의 제자를 한덩어리로 똑같이 공경하는 마음을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이 셋이 서로 다른 측면을 가졌다고해서 이를 별상삼보(別三寶)라고 구별하기도하고 이름은 비록 다르지만 그 내용은 하나라는 의미로 일체삼보(一體三寶)라는 말이 있는데,부처님의 형상 즉 불상과 경전 스님들을 삼보라고하는 경우입니다.불상은 비록 사람들이 만든 형상이지만 바로 부처님과 꼭같이 공경해야 하고,부처님의 경전도 바로 부처님의 말씀으로 알고 소중히 해야하며 스님들도 아직 수행이 미진한 점이 많지만 승보로 받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끝으로 한가지 더 여러분에게 강조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이 세가지 보물은 밖에서만 찾을 것이 아니라 바로 자기자신 가운데서 찾아내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청정한 근본자성은 바로 불보입니다.왜냐하면 이 불성은 부처와 중생이 차별이 없기 때문입니다.그래서 육조대사는 깨달으면 부처요,미하면 중생이라 하셨습니다.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자성 가운데의 불보를 공경하는 마음을 갖고 이 소중한 보배를 찾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또 우리의 성품이 법보입니다.왜냐하면 이 성품이 온갖것을 일으키기 때문입니다.역시 육조스님은 이에 대하여 말씀하시기를
"선지식아,일체 수다라와 모든 문자로된 십이부경전이 모두 사람으로 말미암아 있는 것이며,지혜의 성품으로 말미암아 세워진 것이니 만일 세상 사람이 없다면 일체 만법이 본래 제 스스로 있을 수 없는것이니라"하셨습니다.

또한 우리의 이3대육신 가운데서 승보를 찾을수 있습니다.우리는 더러는 육신을 천시하지만 이 육신을 떠나서는 부처도 법도 간직할 곳이 없습니다.부처님의 법을 전하기 위해서도 이 육신이 있어야 하므로 승보요,갖가지 인연이 모여서 마음의 명령에 따라서 잘 움직이는 이 육신이야말로 참으로 화합이 잘 이루어진 승보인 것입니다.


신라시대의 부설거사의 시에,
"처자권속삼여죽(妻子卷屬森如竹)이요
금은옥백적사구(金銀玉白的似丘)라도
임종독존고혼서(臨終獨尊孤魂逝)하니
사량야시허부부(思量也是虛浮浮)니라"
하셨습니다.

"처자권속이 대숲과 같고 금은보화가 산더미를 이룰지라도 죽어서는 혼자 외롭게 홀로 가니 이 일을 생각하면 참으로 허망하고 허망하구나 하는 내용입니다.
백년 안쪽인데 그것도 잠자는 시간을 빼고나면 오십년이고 그중에서 즐거운 날만 찾는다면 과연 몇년이나 될까요?

헛된 것에 정신을 빼앗기고 사노라면 이 짧은 인생마저 헛되게 사는 것입니다.그러므로 우리 불자들은 이 세상에서 가장 값진 보배는 불.법.승 삼보라는 것을 철석같이 믿고 이것만이 영원한 행복을 약속한다는 사실을 우이 다같이 명심합시다.

이 세가지 보물을 우리는 우리 자신들이 모두 다 간직하고 있다는 사실도 명심하여 일시적인 무지개와 겉은 것들에 정신을 빼앗기고 그것을 구하느라 한평생을 허송세월하고 임종시에 슬피우는 일이 없도록 합시다.

불법승 삼보에 지심으로 귀의하여 스스로 삼보의 반열에 들어가서 모든 사람들의 귀의처가 다 함께 성불하는 날까지 힘써 정진합시다.

나무석가모니불

나무석가모니불

나무시아본사 석가모니불

<불교설법연구원 편>


< 법 천 스님 옮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