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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1-08-20 21:30
[종교단신] 해인총림 해인사 방장 원각스님 신축년 하안거 해제법어
 글쓴이 : 전수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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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인총림 해인사방장 원각스님

<상당(上堂)하시어 주장자(拄杖子)를 세 번 치시고>

찰해무애(刹海無涯)해도 분리당처(不離當處)이며,
진겁전사(塵劫前事)해도 진재이금(塵在而今)이니라.
시교이적면상정(試敎伊覿面相錠)하니,
변불해당풍염출(便不解當風拈出)이구나.
차도, 과재십마처(且道, 過在什麽處)인가?

삼천대천세계가 다함이 없다 해도 이 자리를 여의지 않으며,
다함없는 옛일이라 해도 모두 지금에 있다.
그대에게 이 앞에서 보여 보라 하니,
어떠한 것도 드러내지 못하는구나.
자, 일러 보라, 그 허물은 어디에 있는가?

염관제안(鹽官齊安)선사가 하루는 시자를 불러 말했습니다.

“여아과서우선자래(與我過犀牛扇子來) 가서 나에게 무소뿔로 된 부채를 가져오거라.”

시자가 답하길, “선자파야(扇子破也) 부채가 부서졌습니다.”

염관이 다시 말하길, “선자기파(扇子旣破)이면 환아서우아래(還我犀牛兒來)하라. 부채가 이미 부서졌다면 무소를 가져오거라.”

그러자 시자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이에 자복여보(資福如寶)선사는 일원상을 그려 그 안에 ‘소우(牛)’ 한 글자를 써넣었습니다.

염관은 해문군(海門郡) 출신으로, 어릴 적부터 수승한 선기를 보여 집 앞을 지나가던 스님으로부터 “더할 수 없이 뛰어난 법의 깃발(無勝幢)를 세우고, 부처의 태양빛을 돌이켜 비추게 할 자가 어찌 그대가 아니겠는가.”라는 수기를 받았습니다. 이후 운종(雲琮)선사에게 출가하여 구족계를 받은 뒤, 마조도일선사가 남강(南康)의 공공산(龔公山)에서 수좌들을 제접한다는 말을 듣고 곧바로 길을 떠났습니다. 염관의 뛰어난 선기를 단 번에 알아본 마조는 바로 입실(入室)을 명하고 정법을 전해주었습니다.

하루는 법공(法空)이라는 선사가 찾아와 경전의 가르침을 물으니, 염관은 하나하나 문답을 하고 나서, “스님이 온 뒤로부터 저는 전혀 주인 노릇을 못했습니다.”라고 말하니, 법공이 “화상께서 다시 주인이 되십시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염관이 “오늘은 그만 자리에 돌아가서 머무르시다가 내일 다시 오십시오.”라고 하니 법공이 물러갔습니다.

다음 날 염관이 사미에게 법공선사를 모시고 오라하여, 사미가 법공을 염관 앞에 모시고 오니 사미를 돌아보며 “이 사미가 일을 요달하지 못했구나. 법공선사를 모셔오라 했건만, 이 당堂을 지키는 집안사람만을 데리고 왔구나.”하니, 법공이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찰해무애와 진겁전사는 모두 방편일 뿐입니다. 다함없는 곳이라 하여도 단 한 순간도 이 자리를 떠나있지 않으며, 셀 수 없는 시간이라 하여도 지금 이 순간으로부터 있는 것입니다. 다가가려 하면 한 발자국도 내딛을 수 없고, 머무르려 하면 단 한 순간조차 기다리지 않습니다. 염관이 드러내보라 한 것은 바로 지금 우리가 작용하는 진여의 당처인 ‘본래자리’인 것입니다.

염관이 시자에게 무소뿔로 된 부채를 가져오라 하니, 시자는 부채가 부서졌다고 하였습니다. 시자가 자신의 의중을 꿰뚫어 보지 못하자 염관은 다시금 시자의 근기에 맞춰 부채가 이미 부서졌다면 무소를 가져오라 하였습니다. 예로부터 이 가르침을 일컫어 ‘전신입초양자지연(全身入草養子之緣) 온 몸을 풀 속에 내던져 자식을 기르는 연’이라 하였습니다. ‘풀 속’은 번뇌망상의 사견을 가리키는 데, 염관이 시자를 일깨워주기 위해 망설임없이 두 차례나 언어의 풀 속으로 들어간 것이, 마치 부모가 자식을 위해서라면 어떠한 것도 두려워하지 않는 것과 같은 모습인 것입니다.

그리고 본칙에 대해 위앙종의 자복여보선사는 시작도 끝도 없는 일원상 한 가운데 소 한 마리를 넣어 자신의 견처를 여실히 드려내 보였습니다. 이후로도 투자(投子), 석상(石霜), 보복(保福) 등의 선사들이 자신의 견처로 ‘본래자리’를 선명하게 보였습니다.

오늘은 하안거 해제일입니다.

여름 한철 대중스님들께서 여법하게 정진하시고 이제 산문을 나가 각자의 수행 처로 옮겨갈 겁니다. 그러나 다시금 코로나가 극성을 부리며 조용한 가야산 산중에까지 염려를 끼치고 있습니다. 어디를 가서 누구를 만나든 더욱 조심하고 자신을 잘 챙겨야 할 때입니다. 하지만 지금의 역경계도 이제 한 걸음 남았습니다. 이러한 시기에 오히려 화두를 챙기고 정진에 더욱 박차를 가해야 합니다. 산문을 나가 어디를 가든 그 자리가 수행 처이고, 안거를 보내고 산철을 지내도 언제나 삼매로 여여(如如)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 자신들부터 지금의 상황을 여실히 바라보고 변화할 때, 바로 그 순간 우리 주변의 모든 것도 함께 이 시기를 극복하는 힘을 갖게 됩니다. 모든 괴로움을 없애는 무상의 법은 시비 장단에서 벗어난 본래의 마음 바탕에서 지혜스럽게 작용할 때 모든 것이 활발하고 분명해 집니다.

선자파색서우(扇子破索犀牛)이니,
권련중자유래유(棬攣中字有來由)이라.
수지계곡천년백(誰知桂轂千年魄)이,
묘작통명일점추(妙作通明一點秋)이리요.

부채가 부서져 무소를 찾으니,
일원상의 한 글자는 그 유래가 있도다.
누가 알았으랴? 달빛없이 어두운 기나긴 밤이,
가을의 보름달이 되어 환히 밝아올 줄을.

<주장자(拄杖子)를 한 번 치시고 하좌(下座)하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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