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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5-05-11 20:09
[전문불교코너] 운문사승가대학장 원해당 흥륜스님 입적
 글쓴이 : 곽선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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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도 운문사 승가대 학장 원해당(圓海堂) 흥륜(興輪)스님이 입적했다.

흥륜스님은 5월 8일(음력 3월20일) 오전 11시35분 운문사 삼장원에서 세수 74세, 법납 53세로 원적에 들었다. 1964년 성라암에서 법성스님을 은사로 득도한 흥륜스님은 1965년 경산스님을 계사로 사미니계를, 1969년 해인사에서 자운스님을 계사로 비구니계를 수지했다.


1985년 운문사에서 명성스님으로부터 전강하고, 2002년 운문사 제14대 주지를 지냈다. 2006년 이후 조계종 수계산림 교수사를 4회 역임하고 2009년 이후 조계종 수계산림 니존증아사리를 7회 지냈다.

흥륜스님 영결식은 오는 10일 오전 10시 운문사 만세루에서 엄수된다. 


다음은 운문사가 밝힌 흥륜스님 수행연보와 행장이다.


수행연보

1943년 : 11월 8일 인천광역시 강화군 하점면 삼거리에서 엄부 고정희 자모 윤금년님의 3남 2녀중 차녀로 출생
1960년 : 강화여자고등학교 졸업
1964년 : 서울 성라암에서 법성스님을 은사로 득도
1965년 : 경산스님을 계사로 사미니계 수지
1967년 : 약수암에서 하안거 및 동안거
1969년 : 해인사에서 慈雲和尙을 계사로 비구니계 수지

1974년 : 운문승가대학 대교과 졸업
1977년 : 운문승가대학 중강 및 재무로 취임
1978년 : 동국대학교 승가학과 졸업

1984년 : 서울 성라암 주지로 취임
1985년 : 민족문화추진회 유교학과 졸업, 동국대학교 불교대학원 졸업
1985년 : 운문사 眀星講伯으로부터 전강, 성라암 통학강원 개원
1987년 : 운문사 강사로 재임

1994년 : 대한불교조계종 제11대 중앙종회의원 역임
2002년 : 대한불교조계종 제13대 중앙종회의원 역임
2002~2006년 : 운문사 제14대 주지 역임
2006년~2009년 : 대한불교 조계종 수계산림 교수사 총 4회 역임
2009년 : 대한불교 조계종 수계산림 니존증아사리

2011년~2015년 : 대한불교 조계종 수계산림 니존증아사리 총6회 역임
2006년~2012년 : 운문사 강주 역임
2012 ~현재 : 운문사 학장
2015년 5월 8일(음력 3월20일) 세수 74세 법랍 53년, 호거산 운문사에서 원적


명덕(明德) 원해당(圓海堂) 흥륜(興輪) 행장(行狀)

圓海堂 興輪스님은 1943년 인천 강화군 하정면 삼거리에서 엄부 고정희님과 자모 윤금년님 사이 3남 2녀중 차녀로 태어나셨습니다. 스님은 스물두 살 되는 해, 1964년 세속의 무상함을 느끼시고 서울 성북동 성라암에서 법성스님을 은사로 得度 출가 수행자의 행해를 익히게 되었습니다.

1965년 경산스님을 계사로 사미니계를 수지하시고, 1969년 범어사에서 자운스님을 계사로 비구니계를 수지하였습니다. 1974년 운문승가대학 대교과 재학 중에 치문을 가르치는 중강을 시작하였고 졸업 이후에 더욱 교학연찬에 힘을 기울여 1978년 동국대학교 승가학과를 졸업하였습니다. 스님의 공부에 대한 열의는 내전에만 머무르지 않았고 동양철학과 역사 사상에 대한 폭 넓은 이해 및 불전한문을 보는 힘을 기르기 위하여 민족문화추진회 유교학과에 진학하여 공부하시면서 동국대학교 불교대학원을 함께 졸업하시는 螢雪之功을 이루셨습니다.


학업을 마치고 다시 운문사에 돌아와 1985년 운문사 眀星 講伯으로부터 전강을 받으시고, 학인들의 기강을 여법하게 잡아가며 한평생 내전을 가르치시며 수많은 제자들을 배출하셨습니다. 이러한 과정 중 잠시 성라암에서 통학강원을 개원하시어 전통강원에 진학하기 어려운 서울권 스님들에게 삼장을 배울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주셨고 운문사로 거처를 옮기실 때 학인들도 함께 따라와 운문사 학인으로 편입하였습니다.


다년간 교해에 노닐면서 특별히 동학사 호경 노스님과 직지사 관응 노스님에게 유식을, 종진 스님에게 치문을 사사하였습니다. 都序와 起信論에 남다른 조예를 가지시고, 특별히 좋아하는 과목이라며 자신의 전공을 삼으셨습니다. 또한 능엄경 계환해에 대한 이해가 깊어 십여 년을 한결 같이 한 글자도 빼지 않고 학인들과 함께 열정적으로 강독하시고, 뿐만 아니라 종경록 대지도론, 법원주림에 이르기까지 스스로 손에서 책을 놓지 않는 手不釋卷의 일관된 자세는 후학의 방일을 경책하는 강백의 소리 없는 경책이셨습니다.


2006년에서 2009년에 해당하는 4년 간 대한불교 조계종 수계산림 교수사를 역임하셨고 2009년,2011년에서 2015년에 이르는 6년간은 수계산림의 니존증아사리로서 지계청정과 매사에 여법한 수행자의 모범을 보여주셨습니다. 1994년에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1대 중앙종회의원을 지내셨고 2002년 대한불교조계종 제13대 중앙종회의원을 역임하셨습니다. 사찰 행정에도 역량을 나타내어 2002에서 2006년에 걸쳐 운문사 제14대 주지 소임을 사셨습니다.


내전강의로 점철된 스님의 강설은 머무르지 않으셨고 만년에는 화엄경 현담 공부에 전력하여 불가의 근본종지를 밝히기 위하여 문자반야와 관조반야를 쉬지 아니 하였습니다. 스님의 嚴正한 삶의 궤적에 힘이 되어 주시며 한평생 함께 하셨던 세분의 도반은, 위로는 비로전 청정법신비로자나부처님과 또 한 분은 한결같이 바라보며 공경을 기울였던 회주 명성스님에 대한 향심이었습니다.


세 번째는 학인에 대한 오롯한 사랑이었으니, 이들에 대한 깊은 마음 씀은, 하늘이 아시고 땅이 아시고 부처님이 아시니, 스스로 속임이 없으셨습니다. 제자들에게는 설 자리 앉을 자리, 나서고 나서지 않을 자리를 엄격하게 가리도록, 대중 속에서 바르게 처신하고 인욕하는 수행 家風을 가르치셨습니다. 더불어 원만한 인품과 지혜를 닦으며 지계제일과 보현행원을 실천하실 것을 늘 당부하시며, 때때로 후학들의 방일을 경책하기 위하여 ‘도량청정무하예 삼보천룡강차지’를 역설하시며 구석진 풀밭과 후원 쓰레기통을 살피는 것이 스님의 일상이었습니다.


운문사 2000여 졸업생들은 스님의 학덕과 감화력으로 인하여 수행의 길 어느 곳에 처하여도 최선을 다하는 한 사람의 수행자로 거듭났습니다. 스님은 자신보다 항시 대중이 우선이셨고 公心으로 상하를 공평하게 보살피시며, 늘 어른 밑에 처하시며 철저한 向心으로, 칠십 평생 한 번도 자신의 생신을 챙기지 못하도록 하셨으니 참 아름다운 귀감이었습니다.


2012년에 운문사 학장의 중임을 맡으시어 소임에 만전을 기하시던 중, 2015년 5월 8일(음력 3월20일) 오전 11시 35분 74세 법랍 53년, 호거산 운문사에서 세연을 다하시니 이목소 맑은 물이 흙으로 돌아가고, 푸른 소나무 끝에 놀던 바람이 허공으로 돌아가듯, 이 곳 운문사 수월 대도량에 고요히 스님의 자취를 묻으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