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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5-06-30 00:00
[사찰갤러리] 괘불[卦佛]
 글쓴이 : 전수진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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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남양주 봉선사 괘불(경기 남양주시 진접읍 부평리. 경기유형문화재 제165호.) ②화엄사 영산회괘불탱(전남 구례군 마산면 황전리. 국보 제301호. 영산회상도이다.) ○법당 밖에서 큰 법회나 의식을 거행할 때 걸어 놓는 탱화. 영산회상도·지장회상도·명부시왕도·관음보살도·용왕대신도·산왕대신도 등이 있다. 괘불은 자수를 놓은 것도 있지만 대개는 천에 불상을 그리고 이것을 베에 배접한다. 다른 불화와 달리 크기가 매우 큰데, 큰 것은 높이 15m, 너비 10m에 이른다. 아래에는 원형 축을 달고, 위에는 삼각형이나 반원형 축을 달아 두루마리로 감을 때 부피를 줄이고 사용하기 편하게 한다. 괘불을 내걸기 위해 법당 앞에 세운 돌기둥을 괘불석주라 하고, 괘불을 높이 걸 수 있도록 나무로 만든 대를 괘불대라 한다. 보관할 때는 괘불함에 넣어 법당 안에 두고, 내다 걸 때는 법당 옆의 괘불문을 통해 나가는데, 이때 괘불이운(掛佛移運)이라는 의식을 치른다. 한국에서 괘불이 언제부터 제작되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다만 《삼국유사》〈기이(紀異)〉의 문무왕 법민조에 명랑(明郞) 법사가 채백(彩帛)으로 절을 짓고 문두루(文豆婁)의 비법을 사용하여 당나라 군대를 물리쳤다는 기록이 있는데, 이 채백이 괘불을 의미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그 후 17∼18세기에 들어서 괘불의 제작이 활발해진 것으로 보인다. 괘불은 밝고 화사한 홍색과 녹색을 기본 바탕으로 사용하나 호화스런 느낌을 주지는 않는다. 무늬는 보상당초문을 비롯하여 연화문·국화문·모란문·봉황문·귀갑문 등 대형 화면에 걸맞게 장중한 무늬를 주로 쓴다. 한국의 괘불 중 현재 남아 있는 것은 대부분 17세기 이후의 것으로, 가장 오래된 나주의 죽림사세존괘불탱(竹林寺世尊掛佛幀:보물 1297)은 1623년에 제작된 것이다. 그밖에 구례의 화엄사영산회괘불탱(華嚴寺靈山會掛佛幀:국보 301), 안성의 칠장사오불회괘불탱(七長寺五佛會掛佛幀:국보 296), 무주의 안국사영산회괘불탱(安國寺靈山會掛佛幀:보물 1267) 등이 유명하다. 한국 외에 괘불을 사용하는 나라로는 티벳과 몽고가 있다. 이들 지역에서는 수를 놓은 괘불을 사용한다. 티벳에서는 괘불을 탕카(Thangkas)라고 부르는데, 주존은 석가모니이지만 때로는 성인이나 각 종파의 교주 등을 그리기도 한다. 괘불대를 사용하지 않고 담이나 벽, 비탈진 언덕에 걸쳐 놓는다. 몽고에서는 괘불대를 사용하여 높이 걸고, 승려들이 가면을 쓰고 그 아래에서 춤을 춘다. 괘불을 내걸고 치르는 의식을 괘불재라고 하며, 가뭄 때 하는 기우재, 죽은 이의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영산재, 죽은 뒤에 치를 불사를 생전에 미리 하는 예수재(豫修齋), 물속과 땅위에 있는 영혼을 달래고 천도하는 수륙재(水陸齋) 등이 있다. 그밖에 나라에 천재지변이 생겼을 때도 치른다. 영산재에는 영축산에서 설법하는 석가모니불을 그린 영산회상도를 모시며, 예수재나 수륙재에는 지장회상도나 명부시왕도, 관음재에는 관음보살도, 용왕재에는 용왕대신도, 산신재에는 산왕대신도를 괘불로 모시는 것이 원칙이나 실제로는 사찰마다 모든 종류의 괘불을 갖추고 있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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