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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4-08-07 19:00
[사찰탐방] 그절에 가고싶다 - 등명낙가사
 글쓴이 : 최고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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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수보살이 점지한 복지, 등명낙가사

○ 사찰명 : 등명낙가사
○ 종 파 : 대한불교조계종
○ 창건시기 : 신 라
○ 창건자 : 자 장
○ 전화번호 : 033-644-5337
○ 소재지 : 강원도 강릉시 강동면 정동진리
○ 성보문화재 : 8 개
 
   
 
대한불교조계종 제4교구 본사인 월정사의 말사이다. 신라 선덕여왕(재위: 632∼647) 자장(慈藏)이 창건하였다. 당시 강릉 지역은 북쪽의 고구려와 동쪽의 왜구가 자주 침범하던 곳이었다. 자장은 부처의 힘으로 이를 막기 위하여 부처의 사리를 석탑 3기에 모시고 이 절을 세웠다고 한다. 창건 당시에는 수다사(水多寺)라 하였다. 석탑 3기 중 1기는 현존하는 오층석탑이고 1기는 1950년 6·25전쟁 때 없어졌으며 나머지 1기는 절 앞바다 속에 수중탑(水中塔)으로 세워졌다고 한다.

신라 말 전쟁으로 불에 탄 것을 고려 초에 중창하고 절 이름을 등명사(燈明寺)로 고쳤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따르면, 강릉부 동쪽 30리에 있었고 절의 위치가 어두운 방 가운데 있는 등불과 같은 곳이라 하여 이름을 바꿨다고 한다. 또 이곳에서 공부하는 사람이 삼경(三更)에 등산하여 불을 밝히고 기도하면 빨리 급제한다고 해서 붙였다고도 한다. 고려 때에는 매우 큰 사찰이었을 것으로 추측되나 조선 중기에 폐사되었다.

폐사된 이유로는 3가지 설이 전한다. 첫째는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 왜군이 불을 질렀다는 설이며, 둘째와 셋째는 왕실에서 폐사시켰다는 설이다. 왕실에서 폐사시킨 이유 중 하나는 안질에 고생하던 어느 왕이 한 점술가의 말을 믿고 폐사시켰다고 한다. 그 점술가는 왕의 병이 정동쪽에 있는 큰 절에서 쌀 씻은 물이 동해로 흘러들어가 용왕이 노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하였다. 왕의 특사가 함경남도 원산(元山)을 거쳐 배편으로 이곳에 와 보니 점술가의 말과 같았으므로 폐사시켰다는 것이다. 또 하나의 이유는 이 절이 서울의 정동쪽에 있어 궁중에서 받아야 할 일출을 늘 먼저 받으므로, 정동쪽 등불을 끄면 조선에서 불교가 자연스럽게 사라진다는 주장에 따라 폐사시켰다고 한다.

오랫동안 폐사로 남아 있다가 1956년 경덕(景德)이 중창한 뒤 관세음보살이 늘 머무는 곳이라 해서 절 이름을 낙가사로 바꾸고, 옛 이름 등명을 앞에 붙여 등명낙가사라고도 부르기 시작하였다. 1977년에는 주법당인 영산전을 세웠고, 1982년부터 청우(淸宇)가 범종각과 삼성각·극락전·약사전·요사채 등을 세워 오늘에 이른다. 현존하는 건물로는 영산전과 극락전·약사전·범종각 등이 있다. 이 중 영산전은 오백나한을 모시고 있어 오백나한전이라고도 불린다. 정면 5칸, 측면 4칸의 팔작지붕 건물로, 여기에 모셔진 오백나한은 인간문화재 유근형(柳根灐)이 5년에 걸쳐 옥으로 만든 것이다.

● 관람 포인트 ●
   
1. 등명낙가사에서는 매년 음력 10월 15일부터 백일축수도량을 개설하고 있다.
2. 등명낙가사 오백나한전 밑에는 등명약수(燈明藥水)가 있어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다.

 
3. 등명낙가사의 주변 명소로 동해의 일출과 월출(月出), 경치가 좋은 해안선, 철길 따라 전개 되는 소나무 숲길, 등명 해수욕장 등도 놓치기 아까운 볼거리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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