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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4-12-26 21:29
[출판/공연] 박은식이애국심으로 저술한 구한말역사서<한국통사>출간
 글쓴이 : 양경연기자
 

박은식이 애국심으로 저술한 구한말의 역사서 ≪한국통사≫

대원군의 섭정부터 여러 열강들의 탄압과 점령 과정, 주권을 상실하기까지 한국의 슬픈 역사가 민족주의자의 손으로 쓰였다. 한일 관계를 중심으로 우리나라의 근대사가 종합되고 서술되어 있어 당시의 시대 상황, 사학사적 의의를 생각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현재 우리나라의 사회·역사 문제에 대해서도 성찰해 볼 수 있다.이 책은 우리나라 지리와 역사의 대강을 담은 제1편을 생략하고, 제2편과 제3편을 중심으로 원전의 약 10%를 뽑아 옮긴 것이다.

   

박은식이 1911년 중국으로 망명한 뒤 집필하기 시작해 1915년 상해(上海)의 대동편역국(大同編譯局)에서 순한문으로 간행된 ≪한국통사≫는 범례·목차·서[갱생(更生)]·서언·삽화, 본문, 결론·후서·발[한진(韓震)]로 구성되었다. 본문은 총 3편으로 나뉜다. 제1편은 우리나라 지리와 역사의 대강을 2장으로 나누었다. 제2편은 총 51장으로 대원군의 섭정에서부터 러·일 전쟁과 열강의 이권 쟁탈까지의 내용을 서술했다. 제3편은 총 61장으로 1897년 대한제국의 성립에서부터 1911년 105인 사건에 이르기까지 일제의 한반도 강점 과정이 상세하게 서술되었다.

     

한국 근대사의 고전인 ≪한국통사≫는 한국 근대사를 일제의 침략 과정을 폭로하는 데 초점을 맞추어 기술하면서, 일제의 침략에 저항한 의병의 항일 투쟁과 애국 계몽 단체의 교육 구국 운동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주요 사건에 저자의 의견[按]을 붙여 논평했다. 그리고 사건의 원인과 결과를 밝히는 데 근대적 역사학의 방법을 도입해 역사를 비판하고 분석했다. 그럼으로써 대외적으로는 일제의 잔학상을 폭로하고, 대내적으로는 국민들에게 독립운동의 정신적 원동력을 공급하는 한편 일제에게 침략당한 아픈 역사적 교훈을 통해 반성을 촉구하려 했다.

이 책은 일제강점기에 불온서적으로 낙인찍혀 국내 반입이 금지되었지만, 중국과 러시아 등지에 있는 한국인 동포뿐만 아니라 국내에도 비밀리에 대량 보급되었다. 국민들에게 민족적 자부심과 독립 투쟁 정신을 크게 고취함으로써 일본을 크게 당황시켰다.

≪한국독립운동지혈사(韓國獨立運動之血史)≫와 함께 일본의 침략상을 생생하게 전해 주는 자료로서, 민족운동가가 복원한 민족주의 사학의 지표가 될 만한 저술로 높게 평가받고 있다.

  

지은이  박은식(朴殷植, 1859∼1925)

황해도 황주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밀양, 호는 겸곡(謙谷)·백암(白巖)이며, 필명으로 무치생(無恥生)·태백광노·창해노방실(滄海老紡室)·백치(白痴)를 사용했다. 한국 근대사상 격동기에 활동한 유학자, 근대 학교 운동의 선구자, 교육 사상가, 언론인, 역사가로서 애국계몽운동과 독립운동에 커다란 업적을 남겼다. 1911년 중국으로 망명한 후 그곳에서 활발하게 활동했다.

박은식은 어려서부터 주자학을 배우며 성장한 주자학자였다. 그러나 신(新)문화와 다양한 사상을 접하면서 주자학 사상의 한계를 인식하고, 지행합일(知行合一)의 양명학(陽明學)으로 학문적 전환을 결단했다. 1909년에는 <유교구신론(儒敎求新論)>을 발표해 유교 개혁을 주장했고, 1910년에는 양명학 보급을 위해 ≪왕양명실기(王陽明實記)≫를 간행했다.

언론인으로서도 활발하게 활동했다. 1898년 ≪황성신문≫의 주필이 되었으며 1905년 정간과 복간을 거쳐 1910년 폐간될 때까지 일제의 침략을 고발하는 항일 언론 활동을 펼쳤다. 또한 1905년 일제가 한국을 강제로 보호국으로 만들자 ≪대한매일신보≫의 주필로서 이를 비판했다. 1906년 교육 계몽 단체인 서우·서북학회의 기관지인 ≪서우≫·≪서북학회월보≫의 주필로 논설을 써서 계몽 활동에 진력하고, 서우사범학교·오성학교·서북협성학교 교장으로서 교육에 힘썼다.

경술국치 뒤에는 독립운동과 국혼이 담긴 역사서를 쓰기 위해 1911년 중국으로 망명했다. 만주에 있는 윤세복(尹世復)의 집에 1년간 머물면서 저술에 집중했고, 대종교(大倧敎) 신도인 그의 영향으로 대종교에 입교했다. 망명 이후 동포들의 교육을 위해 박달학원(博達學院)을 설립하고 한국인촌의 여러 학교를 순회하면서 한국 역사를 강연해 독립사상을 고취했다. ≪동명성왕실기(東明聖王實記)≫, ≪발해태조건국지(渤海太祖建國誌)≫, ≪몽배금태조(夢拜金太祖)≫, ≪명림답부전(明臨答夫傳)≫, ≪천개소문전(泉蓋蘇文傳)≫, ≪대동고대사론(大東古代史論)≫, ≪안중근전(安重根傳)≫, ≪이준전(李儁傳)≫ 등을 집필하고 ≪발해사(渤海史)≫와 ≪금사(金史)≫를 한글로 번역했다.

박은식은 1919년 3·1운동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맞았다. 1919년 8월 상해로 가서 임시정부, 블라디보스토크의 대한국민의회 정부, 서울 한성정부의 통합에 의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수립을 지원했다. 임시정부의 기관지인 ≪독립신문≫의 사장이 되었으며, 대한교육회 회장으로 선출되었다. 동시에 ≪한국독립운동지혈사≫의 집필을 시작해 1920년 12월에 간행했다. 이후 ‘건국사’를 쓰고야 말겠다는 각오는 뜻을 이루지 못했다. 1924년 대한민국임시정부 제2대 대통령에 추대되었으나 이듬해 11월 1일 서거했다.

 

옮긴이  최혜주(崔惠珠)

숙명여자대학교 사학과와 대학원을 졸업하고, 일본 도쿄대학 대학원 인문과학연구과에서 한일 관계사를 전공해 석·박사학위를 받았다. 도쿄대학 문학부 외국인연구원, 숙명여자대학교와 한양대학교의 학술연구교수를 지냈다. 지금은 한양대학교 동아시아문화연구소 연구교수로 강의와 연구 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저서로는 ≪창강(滄江) 김택영(金澤榮)의 한국사론≫(1996), ≪한국 근대사와 고구려·발해인식≫(2005, 공저), ≪근현대 한일 관계와 국제사회≫(2007, 공저), ≪최남선 다시 읽기≫(2009, 공저), ≪한국 근현대사를 읽는다≫(2010, 공저), ≪근대 재조선 일본인의 한국사왜곡과 식민통치론≫(2010),

지은이 박은식|옮긴이 최혜주 |값12,000원 |지식을만드는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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