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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4-12-26 00:05
[출판/공연] 송정화 시집<거미의 우물>출간
 글쓴이 : 양경연기자
 

 


실존의 아픔을 ‘거미’가 ‘제 몸 속’에 파는 ‘우물’로 비유할 만큼,

현실의 어려움을 혹독하게 겪어내어 시로 승화시킨 시인!

‘나무’와 ‘꽃’, ‘거미’와 ‘우물’, ‘허공’과 ‘늪’ 등의 모티프들을 경유하여 도달한

‘말의 환’과 ‘시간의 알’을 더욱 구체적으로 형상화하면서

시적 진경眞境을 이루고 있는 시인!

 

『거미의 우물』은 등단 10년을 견뎌 펴내는 송정화의 첫 시집이다. 무명을 살기로 작정해버린 듯, 시인은 오랜 동안 문단의 “없는 이름”이었다. 그렇다고 아예 시를 놓아버린 것은 아니어서, 남모르게 갈무리해온 시편들이 낭중지추(囊中之錐)로 솟아, 눈부신 매혹으로 독자와 마주한다. 이 시집의 지향은 ‘세상 지도’에 “너무 많거나 없”는 ‘안나푸르나’로 가는 마음의 행보다. 삶이란 “섬뜩한 그리움을 매달고 무겁게 흔들리는” 환(幻)과 같아서, 생사(生死)가 꿈결로 얼룩지지만, 어쩌랴, 흔들리며 흘러가는 게 일생인 것을! 실존의 아픔을 ‘거미’가 ‘제 몸 속’에 파는 ‘우물’로 비유할 만큼, 시인은 그동안 현실의 어려움을 혹독하게 겪어냈다. 그러나 “슬픔도 쟁이다 보면 내성이 생기고/ 병도 데리고 살다 보면 친구처럼 될 수 있으리라”는 깨달음을 상기한다면, 앞으로 시인이 보여줄 시세계는 이전보다 더욱 깊어진 서정일 것이다.

  거미의 우물

 

기이한 문장이 부려 놓은 허공

나 잠시 수액의 몸을 빌려 아찔한 거미줄을 타고 있네.

 

몸속에 우물을 담고 산다는 거미의 이야기를 들어본 적 있니? 우물은 밤을 닮았다고 하지. 창가에 서서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무엇을 노려보고 있는 건지 알 수 없는 캄캄한 눈의 속살을 세상에서 가장 깊은 우물이라고도 하고, 끈끈한 눈물주머니 같은 것이라고도 한다는데, 바닥에 쭈그리고 앉아 희끄무레 불빛 틀어놓고, 문득 지구의 반대편으로 날아가 버린 스무 살 영혼 같은 건 생각하지 않기로 하네. 그 영혼 너무 오래 낯선 거리를 서성이다 돌아올 지도마저 잃어 버렸다 해도 우물 속에선 이제 아무런 의미가 없다네. 수첩 속 범람하는 로키산맥의 만년설과 그 아래 펼쳐진 루이스, 푸른 영혼의 호수 따윈 어쩌면 거미줄에 걸린 모시나비 날개 같은 것인지도 몰라. 억만 년을 흘러온 구름 같기도, 어제 생겨난 바람의 갈기인 듯도, 달팽이의 눈물 같기도 한 끈적끈적한 영혼의 메아리들이 웅웅거리는 바닥.

 

거미의 몸속에 우물이 산다는 이야기는 어쩌면 허구.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잊지 않기 위해

힘겹게 들었다 놓았다 하는 암병동의 들숨, 날숨 같은.


저자소개 | 송정화 시인

경남 합천 출생,2002년 경인일보신춘문예로 등단,영남대학교 국문학과졸업,고려대학교 대학원 문학예술학과에서 석사학위 받음,현재 통영여자고등학교 국어교사

지은이 송정화 |값8,000원 |한국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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