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lkyonews_header.jpg

 
작성일 : 14-12-10 20:01
[출판/공연] 가례차록 읽기<주자가례에서 통치이념을 배우다>출간
 글쓴이 : 양경연기자
 

삼봉 정도전이 구상한 예치국가

그는 예치 실현을 위해 생활개혁을 발판으로 국가 개조작업을 시도하였다.

그 모범답안이『 주자가례』에 있었다.

『주자가례』는 건국 당시의 비윤리적이고 반유교적인 사회관습과 정서를 타파 하고 혁신하는데 필요한 이론과 방법을 제시한 통치이념 실천서였다.

삼봉 정도전이 기획한 생활개혁이란 무엇이었을까? 바로 관혼상제의 실시였으니, 그가 추진한 생활개혁은 가례 실천운동이었다.

공자는 ‘위에서 백성을 다스리는 방법은 예보다 좋은 것이 없다’고 하였다.

관혼상제는 일생의례이기는 하나, 사람들의 유대와 소통이 가장 원활한 장이다.

이 의례를 일상에서 생활화하도록 유도하는 것은 백성을 다스리는 방법이었다. 관혼상제를 수단으로 사회의 기층인 가족구성원을 결속 통합시켜 국가와 사회의 권력체계를 국왕과 종자를 정점으로 재편하고 국가와 사회의 안정된 질서를 도모하겠다는 것이다. 이 관혼상제의 모든 것을 담은 책이 『주자가례』이다. 삼 봉 정도전의 개혁사상의 핵심에는 『주자가례』가 있었다.

   

원저자 이신의(李愼儀, 1551~1627)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전의全義, 자는 경칙景則, 호는 석탄石灘, 시호는 문정文貞이다. 16세에 행촌杏村 민순閔純의 문하에 취학, 20여 년간 성리학에 전념하였다. 스승의 권유로 관직에 나갔으나 벼슬에 뜻이 없어 이내 사직하고 학문에만 심취하였다. 임진왜란 당시 의병 300여 명을 모아 의병장으로 창의사倡義使 김천일金千鎰과 함께 한강, 행주산성 주변 등지에서 왜적과 싸워 공을 세우니, 조정에서 직산현감에 제수하였다. 이후 괴산, 임천군수, 홍주, 해주, 광주목사 등 16여 년을 목민관으로 지냈다. 광해군의 난정에 정사헌의丁巳獻議 항론을 올려 함경도 회령에 유배되고 6년여의 위리안치 고초를 겪었다. 1623년 인조반정 이후 형조참의로 조정에 복귀 경연특진관, 형조참판으로 승차하였으나 1627년 정묘호란 때 인조대왕의 호종길에 나섰다가 수원에서 별세하였다. 숙종 때 이조판서에 추증하고 문정文貞의 시호를 내렸으며 고양 문봉서원, 괴산 화암서원, 광주 유애서원에 배향되었다. 문집으로 「석탄집石灘集」이 있고, 「대학차록大學箚錄」, 「가례차록家禮箚錄」과 대표적 작품으로 「사우가四友歌」와 「단가육장短歌六章」등이 있다.


번역·해설 임민혁(任敏赫)

 문학박사. 한국학중앙연구원 전임연구원.

저서로는 「朝鮮時代 蔭官 硏究」(한성대출판부, 2002), 「왕의 이름, 묘호」(문학동네, 2010), 「영조어제 해제 2」(한국학중앙연구원, 2011), 「조선의 禮治와 왕권」(민속원, 2012), 「英祖의 정치 와 禮」(민속원, 2012), 「영조어제 해제 10」(공저, 한국학중앙연구원, 2014), 「조선의 왕, 왕비, 세자로 살아가기」(공저, 돌베개, 2011, 2012, 2013), 「조선 왕실의 가례 1, 2」(공저, 한국학중앙연구 원, 2008, 2010), 「대한제국」(공저, 국립고궁박물관, 2010), 「정부 혁신과제 발굴을 위한 옛제도 연구」(공저, 한국학술정보, 2007) 등이 있으며, 역주서로는 「주자가례」(예문서원, 1999), 「추봉책봉의궤」(서울역사박물관, 2007) 등이 있고, 그 외 많은 논문이 있다.


원저자 석탄 이신의 |번역.해설 임민혁 |값21,000원 |민속원

 

 


 
   
 



불교일보 동영상 전문채널
서울 불교방송
가장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