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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4-12-07 22:36
[출판/공연] 애플북스에서 펴낸 한국문학을 권하다 <춘원 이광수 작가 >시리즈
 글쓴이 : 곽선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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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정 >
한국 근현대문학사에서 중요한 위치에 있는 작가들의 작품을 만나보는 「한국문학을 권하다」 제20권 『운현궁의 봄』. 문학으로서의 읽는 즐거움을 살린 쉬운 해설과 편집, 단행본으로 출간된 적 없는 작품들도 수록한 총서 가운데 한 권이다. 《운현궁의 봄》에는 청소년들 사이에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구병모 작가가 김동인의 작품에 대해 쉽고 재미있게 소개하는 해설글을 담아 한국문학 읽기의 즐거움에 동참하기를 권하고 있다. 흥선대원군에 얽힌 이야기를 다룬 장편소설 《운현궁의 봄》은 실제 역사와 영웅신화적 내러티브를 결합함으로써 소설적 재미를 극대화한 김동인의 대표적인 역사소설이다. 상갓집 개라는 비아냥거림에도 파락호 행세를 멈추지 않고 기회를 엿보던 흥선대원군이 하룻밤 사이에 섭정의 자리에 등극해 구악을 일소하고 개혁을 단행한다는 설정은 우리에게 익숙한 영웅신화적 요소들이다.
지은이 이광수 /값14,000원 /애플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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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종애사 >
《단종애사》는 1928년 11월부터 1929년 12월까지 [동아일보]에 연재한 춘원 이광수의 역사소설로, 일제 식민지 치하의 암울함을 떨쳐내고자 자의식을 가지고 집필한 소설이다. 춘원은 가련한 단종을 조선에, 단종의 왕위를 강탈한 세조를 일제에 빗대었다. 독자들로부터 수천 통의 편지를 받을 정도로 연재 당시에 큰 인기를 얻었던 이 작품은 춘원 스스로 가장 애착을 갖는 작품 가운데 하나라고 밝힌 바 있다. 작가는 어린 임금 단종의 애통한 현실과 조선의 충신과 열사들의 목숨을 바친 의리를 보여줌으로써 식민지 치하에 있는 민족정신을 일깨우고자 하였다.
지은이 이광수 /값14,800원 /애플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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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효대사 >
1940년대는 일제가 태평양전쟁을 일으키고 우리 민족의 적극적 협조를 끌어내려고 문인을 동원해 작품을 쓰도록 했던 시기이다. [동아일보], [조선일보]가 강제로 폐간되고 우리말 신문으로는 유일하게 총독부 기관지가 된 [매일신보]만이 남아 있었다. 당시 허울 좋은 내선일체, 황국신민화운동에 날뛰던 일제는 우리 겨레가 적극적으로 협조하게 하려고 이광수에게 소설을 쓰게 했다. 이광수는 일제의 이 의도를 거꾸로 이용, 역사적 인물 원효를 통해 그의 초기 작품의 주제인 민족주의 사상을 담아 오히려 민족의 지도자상과 나아갈 길을 우회적으로 제시하는 작품을 썼다. 작품 앞에 [내가 왜 이 작품을 썼나]라는 글을 덧붙였는데 이를 보면 이광수와 원효, 조선 민족을 동일선상에 놓고 자신의 현재 심경을 드러내는 동시에 한민족의 정기를 불러일으키려 했음을 알 수 있다
지은이 이광수 /값14,500원 /애플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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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생 >
《재생》은 이광수가 1924년 11월 9일부터 1925년 9월 28일까지 [동아일보]에 연재했던 장편소설이다. 연재 당시 춘원은 건강상의 이유로 4개월을 중단했지만, 결국 천신만고 끝에 완성시켰다. 사랑과 민족의 갈등, 젊음의 혼돈, 세상의 무성한 소문 등을 경험한 이광수의 내면이 잘 반영된 작품으로 평가받는 이 소설은 삼일운동 실패 후 무력감에 빠져 민족적 이상을 상실하고 타락한 생활을 하고 있던 조선의 젊은이들을 질타하고 그들의 재생을 촉구하였다.
지은이 이광수 /값14,800원 /애플북스





저자 이광수 (1892~1950)는 호는 춘원春園. 평북 정주에서 출생했다. 소작농 가정에서 태어나 1902년 부모를 잃고 고아가 된 후 동학東學에 들어가 서기가 되었으나 관헌의 탄압이 갈수록 심해지자 1904년에 상경했다. 다음 해에 친일단체인 일진회의 추천으로 일본으로 건너가 메이지 학원에 편입하여 공부하면서 소년회를 조직하고 회람지 〈소년〉을 발행하는 한편, 시와 평론 등을 발표하기 시작했다. 1910년에 일시 귀국하여 오산학교에서 교편을 잡기도 했으나 다시 도일하여 와세다 대학 철학과에 입학하였다.
1917년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 장편소설인 《무정》을 〈매일신보〉에 연재하여 우리나라 소설문학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1919년에는 2·8 독립선언서를 기초하기도 하였다. 그 후 상하이로 망명하여 임시정부에서 활동하다가 1923년 동아일보에 입사하여 편집국장을 지내고 1933년에는 조선일보 부사장도 역임하는 등 언론계에서 활약하기도 했다.
1937년에 수양동우회 사건으로 투옥되었다가 병보석으로 석방되었는데 이때부터 급격하게 친일행위로 기울어졌다. 1939년에는 친일어용단체인 조선문인협회 회장이 되었고 가야마 미쓰로라는 일본명으로 창씨개명하였다. 광복 후 반민법으로 다시 투옥되었다가 석방된 후 작품 활동을 계속하다가 6·25 전쟁 때 납북되어 자강도 만포시에서 병사하였다.
그는 한국 근대문학사의 선구적인 작가로서 계몽주의·민족주의·인도주의 작가로 평가되며, 이외에도 《마의태자》《단종애사》《흙》《원효대사》《유정》《사랑》 등의 장편소설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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