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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4-11-27 20:51
[출판/공연] 임진왜란에 관한 유성룡의 반성의 기록<징비록>출간
 글쓴이 : 양경연기자
 


《징비록》은 서책으로는 드물게 국보 제132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우리 역사에 드물게 보존되어 온 기록문학이다. 그 내용은 임진왜란 이전의 국내외적 정세로부터 임진왜란의 실상, 그리고 전쟁 이후의 상황에 이르기까지를 체계적이며 종합적으로 구성하고 있다.


유성룡은 임진왜란 발발 당시 포화의 한가운데서 전쟁의 참화를 실제로 겪은 고위 관리였으며, 특히 전쟁 수행 책임자 가운데 최고위직에 있던 인물이다. 따라서 그의 증언은 임진왜란의 실상을 이해하는 데 가장 효과적이라 할 수 있다.

한편 유성룡이 서문에서 밝히고 있듯 ‘징비懲毖’란 《시경》 ‘소비小毖’ 편에 나오는 문장, ‘予其懲而毖後患(내가 징계해서 후환을 경계한다)’로부터 유래한다. 즉 자신이 겪은 환란을 교훈으로 삼아 후일 닥쳐올지도 모를 우환을 경계토록 하기 위해 쓴 글이다. 이러한 집필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유성룡은 자신의 잘못부터 조정 내의 분란, 나아가 임금에 대한 백성들의 원망 등 임진왜란을 둘러싸고 발생한 모든 일을 있는 그대로 기록했다. 그러기에 《징비록》이라는 책을 통해 수백 년 후 우리에게 임진왜란의 참상을 생생하게 전해 줄 수 있었다.

 

‘2014 개정증보판’ 《징비록》은 기존 《징비록》(2003년 출간)의 내용상 오류를 바로잡고 편집을 새롭게 했을 뿐 아니라, 유성룡이 《징비록》을 쓰는 데 밑바탕이 된 글을 모아 ‘유성룡 종군의 기록’이란 이름으로 뒤에 덧붙였다. 그 글은 유성룡의 저작집인 《서애집》에 흩어져 있는 기록들을 옮긴이가 직접 가려 뽑고 요약, 정리한 결과물이다. ‘때에 맞춰 해야 할 일을 분야별로 아뢰는 글’, ‘평양을 수복한 뒤 세자에게 아뢰는 글’, ‘굶주리는 백성의 구원을 진정하는 글’, ‘훈련도감을 설치한 기록’, ‘이순신을 애도하는 시’ 등의 기록을 통해 독자들은 《징비록》과 임진왜란을 보다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지은이 유성룡柳成龍(1542~1607)

중종 37년에 경상도 의성 지방에서 황해도 관찰사 유중영의 아들로 태어났다. 16세 때 향시에 급제한 그는 21세 되던 해 퇴계 이황의 문하로 들어가 학문을 닦았다. 25세 되던 1566년에는 문과에 급제해 승문원 권지부정자로 관직에 발을 들여놓았다.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 좌의정으로 병조판서를 겸하고 있다가 도체찰사에 임명되어 군무를 총괄했다. 선조가 난을 피해 길을 떠나자 호종했으며, 개성에 이르러 영의정에 임명되었다. 그러나 평양에 도착해서는 나라를 그르쳤다는 반대파의 탄핵을 받아 파직당했다. 서울 수복 뒤, 영의정에 복직되었다. 선조가 서울로 돌아오자 훈련도감의 제조를 맡아, 군비를 강화하고 인재를 배양했다. 그러나 정유재란 이듬해 북인들의 탄핵으로 관직을 빼앗겼고, 그 뒤 고향으로 돌아가 조용히 저술에 몰두했다. 나중에 조정의 부름을 여러 번 받았으나 일절 응하지 않았다. 주요 저서로 《서애집》, 《영모록》, 《징비록》 등이 있다.

 

옮긴이 김흥식

지금은 산업 도시로 바뀌어 버린 군산에서 태어나 경기고, 서강대를 졸업하고 한국외국어대학교 대학원을 중퇴했다. 어려서부터 한문이 주는 즐거움에 빠져 온갖 고전을 즐겨 읽었다. 그 결과 우리 고전에 생명력을 불어넣은 것으로 평가받은 ‘오래된책방’ 시리즈를 비롯해 ‘서해클래식’ 등을 기획했고, 《징비록》을 번역했다. 이 외에 관여해 출간한 책으로 《세상의 모든 지식》 《한국의 모든 지식》(지음) 《1면으로 보는 한국 근현대사 1, 2, 3》(기획) 《조선동물기》(엮음) 등이 있다.


유성룡 지음, 김흥식 옮김│320쪽|값 8,700원|서해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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