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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4-11-19 17:43
[출판/공연] 우리 한시 100수에 담긴 서정의 세계<새벽 한시>출간
 글쓴이 : 양경연기자
 

 

 

 

지은이 안대희 엮고 쓰다|면수 236쪽|정가 12,000원|펴낸곳 태학사

 

 “현대적 번역으로 다시 태어난 한시와

한국의 산수를 절제된 색감으로 표현한 흑백사진의 만남!”

 

≪새벽 한시≫는 우리 한시漢詩를 엄선하여 번역한 안대회 교수의 글과 이종만 작가의 흑백사진의 만남으로 기획되었다. 통일신라부터 조선 시대 문인들의 한시 100수를 소개한 한문학자 안대회 교수의 번역문은 또 다른 현대시를 읽는 듯한 느낌을 준다. 여기에 한국의 산과 바다, 들판과 숲, 바위와 나무 등을 절제된 색감과 독특한 시선으로 프레임에 담아낸 이종만 작가의 사진은 독자에게 한시의 현대성에 눈뜨게 하고 무뎌진 감성에서 깨어나게 한다.


한시를 어느 때에 읽으면 가장 좋을까? 편안하고 여유로운 시간에 읽거나 바쁘게 이동하는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틈틈이 읽어도 좋다. 새벽 한 시一時, 혼자 깨어 있어 고요한 시간, 낮의 시간을 지나치는 동안 경쟁 사회 속에서 소진된 자신의 모습을 가만히 들여다본다. 여기에 삶의 울분과 허무, 고독, 분노, 서러움, 초연함과 호연지기를 담아낸 한시를 통해 현재 세계와 과거 세계 사이에 하나의 다리가 놓이고, 나의 본연과 세계를 응시하게 되는 경험을 한다.


“칡덩굴을 당겨 잡고 운봉사에 올라가 저 아래를 바라보니 세계는 비어 있네. (…) 저 노을은 틀림없이 나를 보고 비웃겠지. 발길을 되돌려서 새장 속에 들어간다고”라고 읊은 최치원의 문장은 새장 같은 세상을 떠나고 싶어 하면서도 돌아가야 하는 현대인의 삶과 맞닿아 있다. 오히려 그의 문장을 읽으며 세상의 한가운데에서 견딜 수 있는 힘이 생긴다. 그 힘은 바로 천 년 전 누군가의 기쁨과 슬픔이 나의 기쁨과 슬픔이 되어 만나는 데서 비롯되는 힘은 아닐까.

      

“오늘 저녁 이 좁다란 방의 흰 바람벽에 어쩐지 쓸쓸한 것만이 오고 간다”로 시작하는 백석의 시 <흰 바람벽이 있어>를 좋아한다면 그로부터 140여 년 전에 쓰인 다음의 한시는 어떠한가. “노정을 헤아려보니 지금쯤이면 벌써 집에 도착하여 일마다 똑같이 벌어지는 걸 눈으로 직접 볼 수 있다. 어린 아들은 문을 뛰쳐나와 좋아라고 웃고 노친께선 문을 열고 절반은 기쁜 내색, 절반은 걱정일세 (…) 산수가 가로막혀 길이 멀어 넋은 잘도 다녀오는데 눈발이 날리는 밤하늘 아래 나는 홀로 시를 읊는다.” 19세기 초 당쟁에 휘말려 유배된 심노숭은 눈발이 날리는 밤에 가족들을 떠올린다. 마치 눈앞에 펼쳐지듯 밤하늘에 선연히 떠오르는 가족의 얼굴…. 진한 쓸쓸함과 그리움을 표출하는 대신 밤하늘에 날리는 눈송이로 표현한 심노숭의 담담한 시선은 놀라울 만큼 현대적이다.


한편 저자는 살아 있는 시성詩性에 일찍이 눈뜬 젊은 시인의 감각에 주목하기도 한다. “큰 눈이 온 마을 뒤덮어 큰 집이 북풍에 떨고 있네 (…) 홀로 있는 밤이라 잠들지 못하고 옷을 껴입은 채 문 열고 내다보니 푸른 산은 벌써 깨진 기왓장 걷어내고 어느새 백옥으로 지붕을 얹었네.” (‘눈과 달(雪月) 중에서) 이 한시는 조선 시대의 천재 시인 김숭겸이 열세 살에 지었다. 큰 눈이 내려 천지를 뒤덮은 깊은 겨울밤, 모든 것이 움츠러들고 정지한 듯이 보여도 소년의 눈은 ‘깨진 기왓장을 걷어내고 백옥으로 지붕을 얹은’ 조용하고 부산스러운 산의 모습을 포착한다. 소년은 왜 잠들지 못하고 깨어 있었을까? 어린 시인의 예민한 시선을 따라 세상을 보면 문득 닫혔던 눈과 귀가 열리고 모든 감각이 생생히 깨어남을 느낀다.


저자는 희망과 절망에 대해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는다. 다만 한시를 넌지시 건네받고 위로와 공감, 세상을 살아낼 만한 하나의 단초를 독자 스스로 얻기를 기대한다. “비록 문 앞에서 구불구불 울타리로 굽히고 있어도 솟구쳐서 하늘로 오르려는 희망을 잊은 적 없네.” 소나무의 본질을 꿰뚫는 이 시는 조선 후기 정치인 채제공이 열여덟 살에 지었다. 소나무는 억눌리고 굽혀져도 결코 하늘로 솟구쳐 뻗어 오르려는 본성을 잊지 않는다. 이 청년의 패기는 훗날 정조의 스승이자, 국왕의 개혁정책을 보필하는 큰 정치가로 실현되었다.


≪새벽 한시≫에서 현시대를 살아가는 젊은이들이 공감할 만한 한시를 다수 발견할 수 있는 것도 한시가 고루한 문학이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한시는 과거의 향수나 자극하는 낡고 무감각한 문학은 아니다. 오히려 20세기 이후의 문학이 놓치고 있거나 무관심하게 대하는 문제를 독특한 감각과 언어로 다루고 있다. 현대인에게 친근한 시각이나 문법과는 많이 다르다. 지난 시대의 인생과 역사가 고요히 가라앉아 있는 작품을 까불어 읽는다면 얼마든지 새롭고 자극적인 독서와 감상의 세계가 펼쳐질 수 있다.” (‘머리말’ 중에서)

때로는 쓸쓸한 마음을, 때로는 따뜻한 온기를, 차오르는 기쁨과 슬픔을, 억울함과 두려움을, 허전함과 억울함을, 희망과 절망을 그 굴곡진 우리 삶의 결들을 ≪새벽 한시≫를 읽으며 함께 어루만지는 시간이 될 것이다.

 

    

 

- 저자 소개-

 

안대회


충남 청양에서 태어나 연세대 국문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학교 대학원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영남대와 명지대 교수를 역임했으며, 현재 성균관대 한문학과 교수로 있다. 한문학에 대한 깊이 있는 연구를 바탕으로 종횡하는 고전 읽기와 탁월한 분석을 통해 풀어내는 그의 글 솜씨는 정평이 나 있다. 특히 조선후기 한문학이 온축해온 감성과 사유의 세계를 대중적인 필치로 풀어냄으로써 역사 속 우리 선조들의 삶과 지향을 현시대의 보편적 언어로 바꿔 생생하게 보여준다.

저서로는 ≪궁극의 시학≫, ≪천년 벗과의 대화≫, ≪벽광나치오≫, ≪정조의 비밀편지≫, ≪조선을 사로잡은 꾼들≫, ≪고전 산문 산책≫, ≪선비답게 산다는 것≫, ≪18세기 한국 한시사 연구≫ 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 ≪북학의≫, ≪북상기≫, ≪한서열전≫, ≪산수간에 집을 짓고≫, ≪나를 돌려다오≫, ≪궁핍한 날의 벗≫, ≪소화시평≫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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