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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1-11-21 00:00
[불교소식] 프랑스 작가, 르 클레지오 방한소감 시(詩) 보내와
 글쓴이 : 이주승
 
대산문화재단은 20일, 지난달 14-22일 방한했던 프랑스 작가 르 클레지오(61)가 방한중 한국을 체험한 감흥을 적은 시(詩) 한 편을 보내왔다고 밝혔다.

 그는 방한중 비오는 날 전남 화순 운주사(雲住寺) 천불천탑을 돌아본뒤 느낀 감흥을 시로써 세상에 내놓았다.

 귀국 다음날인 10월 22일 프랑스어로 쓴「운주사, 가을비」가 제목인 이 시는 르 클레지오로서는 20년만에 쓴 시이기도 하다.

  르 클레지오는 서울에서 나흘, 광주 지역에서 사흘을 보내며 한국의 음식과 문화, 자연을 체험했다.

  해마다 노벨문학상 후보로 오를 만큼 국제적 비중을 지닌 르 클레지오는 원래 시인으로 문학생활을 시작했으며 19세기 프랑스 상징주의 시인 로트레아몽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조서』『사막』『황금물고기』 등 30여편의 작품을 발표해 현대 프랑스 문단의 살아있는 신화로 통하는 그의 책은 국내에서도 10여권이 번역됐다.

아래는 <운주사, 가을비>
전문(번역 최미경 한국외대 통.번역대학원 교수)

    흩날리는 부드러운 가을비 속에
    꿈꾸는 눈 하늘을 관조하는
    와불
    구전에 따르면, 애초에 세 분이었으나 한 분 시위불이
    홀연 절벽 쪽으로 일어나 가셨다
    아직도 등을 땅에 대고 누운 두 분 부처는
    일어날 날을 기다리신다
    그날 새로운 세상이 도래할 거란다.

    서울 거리에
    젊은이들, 아가씨들
    시간을 다투고 초를 다툰다.
    무언가를 사고, 팔고
    만들고, 창조하고, 찾는다.

    운주사의
    가을 단풍 속에
    구름 도량을 바치고 계시는
    두 분 부처님을
    아뜩 잊은 채
    찾고 달리고
    붙잡고 쓸어간다

    로아*의 형상을 한 돌부처님
    당신(堂神)을 닮은 부처님
    뜬 눈으로 새는 밤
    동대문의 네온 불이
    숲의 잔가지들만큼이나
    휘황한 상점의 꿈을 꾸실까?

    세상 끝의
    바다 끝의
    분단국
    겁에 질려
    분별을 잃은 듯한 나라
    무엇인가를 사고 팔고
    점을 치고
    밤거리를 쏘다닌다
    서울이 불밝힌 편주(片舟)처럼 떠다닐 때
    고요하고 정겨운
    인사동의 아침
    광주 예술인의 거리
    청소부들은 거리의 널린 판지들을 거두고
    아직도 문이 열린 카페에는 두 연인이 손을 놓지 못한다.
    살며, 행동하며
    맛보고 방관하고 오감을 빠져들게 한다
    번데기 익는 냄새
    김치
    우동 미역국
    고사리 나물
    얼얼한 해파리냉채
    심연에서 솟아난 이 땅엔
    에테르 맛이 난다.
    바라고 꿈을 꾸고 살며
    글을 쓴다
    세상의 한끝에서
    사막의 한끝에서
    조명탄이 작열하며 갓 시작한 밤을 사른다.
    갈망하고 표류하고
    앞지른다
    간판에 불이 들어온다
    숲의 부러진 나무가지들처럼
    나는 여기서 휘도는 바람에 대해 생각한다
    죽음 속으로 회색의 아이들을 눕히는 바람에 대해
    매운 사막의 관 위로
    기다리고 웃고 희망을 가지고
    사랑하고 사랑하다
    서울의 고궁에
    신들처럼 포동포동한
    아이들의 눈매는 붓끝으로 찍은 듯하다
    기다리고 나이를 먹고 비가 온다

    운주사에 내리는 가랑비는
    가을의 단풍잎으로 구르고
    길게 바다로 흘러
    시원의 원천으로 돌아간다.
    두 와불의 얼굴은 이 비로 씻겨
    눈은 하늘을 응시한다
    한 세기가 지나는 것은 구름 하나가 지나는 것
    부처님들은 또 다른 시간과 공간을 꿈꾼다
    눈을 뜨고 잠을 청한다
    세상이 벌써 전율한다.
 

    (*로아의 신 : 곧은 콧대, 반원형 눈썹을 한 긴 얼굴의 이 아프리카 신은 아이티를 거쳐서 한국 불교의 평심 속에서도 발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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