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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4-12-21 00:00
[불자소식] <을유년 띠풀이> 새벽과 서조(瑞兆)의 메신저 닭
 글쓴이 : 편집국
 
"닭이 홰를 치면서 맵짠 울음을 뽑아 밤을 쫓고 어둠을 짓내몰아 동켠으로 훠언히 새벽이란 새로운 손님을 불러온다."
윤동주는 `별똥떨어진데'라고 제(題)한 시에서 이렇게 닭을 노래했다.

전통시대 사람들은 하루 일과를 닭 울음과 함께 했고, 또 닭이  홰로  올라가는 시간으로 하루를 마감했다. 이는 날(日)과 관련되지만, 한 해(歲) 시작  또한  닭이 갖는 중요성은 다른 동물에 비해 더했다.

주역(周易)이라는 경(經)을 신비적ㆍ예언적으로 해석한 후한(後漢)시대 참위서(讖緯書) 일종인 주역위통괘험(周易緯通卦驗)에는 "닭은  양조(陽鳥)이다.  그러므로 사람들을 위해 사시(四時)를 알리고 사람들이 단정히 의대(衣帶)를 갖춰 입고 원단(元旦=1월1일)을 학수고대하게 한다"고 했다.

하루 시작을 알리기 때문에 음양으로는 대표적인 양(陽)의 동물, 다시 말해 양조(陽鳥)로 간주되었을 것이다.

삼국사기(三國史記) 신라본기 탈해니사금(脫解尼師今) 재위 9년(서기 65)조에는 이 해 봄 3월에 왕성(王城)인 금성(金城) 서쪽 시림(始林)이라는 숲에서 닭 우는 소리를 들려 그곳을 살피니 금빛 궤짝이 나뭇가지에 걸려 있고, 흰 닭이 그  아래서 울고 있어, 궤짝을 열어 사내아기를 얻으니 그가 바로 김씨시조  알지(閼智)였으며, 이를 기념해 그 숲은 계림(鷄林)이라 바꾼 것은 물론 아예 그것을 국호(國號)로  삼았다고 하고 있다.

닭은 천명(天命) 혹은 천복(天福)을 전하는 메신저였던 것이다.

한 무제(漢武帝)를 시봉(侍奉)한 익살꾼 동방삭(東方朔) 찬으로 간주되는 지괴(志怪), 즉, 괴이한 일을 기록한 신이경(神異經)이란 문헌 중 동황경(東荒經)이란 곳에는 "동쪽 바다 가운데 해를 실어 올리는 부상산(扶桑山)이 있고, 여기에는  옥계(玉鷄)가 살고 있으니, 이 닭이 울면 곧 금계(金鷄)가 울고, 금계가 울면 곧 석계(石鷄)가 울고, 석계가 울면 곧 천하의 모든 닭이 울고 바닷물도 여기에 답한다"고  했다.

엇비슷한 내용이 육조(六朝)시대 지괴인 현중기(玄中記)에 보인다. 즉, 이에 의하면 봉래(蓬萊) 동쪽에 해가 떠오르는 대여산(垈輿山)이 있고 그곳에 거대한  나무 한 그루가 있으니, 여기에는 언제나 천계(天鷄)가 둥지를 틀고 있다. 매일  자시(子時)가 되어 이 천계가 울면 태양 속에 있는 양오(陽烏=까마귀)가 이에 응답하고, 양오가 울면 천하 모든 닭이 운다는 것이다.

닭은 이처럼 영물(靈物)이기에 영원히 늙지도 죽지도 않는다는 신선(神僊) 중에는 닭 치는 일을 본업으로 삼는 사람도 꽤 있었다. 동진(東晋)시대 저명한 도사  갈홍(葛弘)의 열선전(列仙傳)에 수록된 축계옹(祝繫翁)이란 도사는 100년  동안  닭을 길렀으니, 1천여 마리나 되는 닭에 모두 이름을 지어주었다고 할 정도이다.

닭이 갖는 이런 영적(靈的)인 특성은 그 피를 이용하면 전염병과 같은 재앙을 가져오는 역신(疫神)을 물리치는 기능도 있는 것으로 간주되게 했다.

그래서 새해 첫날이면 닭을 찢어 얻은 피를 문짝에 바르는 의식이 있었다. 마치 동짓날 팥죽을 쑤어 바르듯이 말이다. 그러면 사악한 귀신이 해코지를 하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이런 주술적 기능은 말할 것도 없이 닭이 양기(陽氣)를 갖춘 동물로 인식된 데서 비롯됐다.

한반도 문화권에서도 닭은 우리 선조들의 삶과 같이 한 흔적을 곳곳에 보이고 있는데, 경주 천마총에서는 많은 달걀이 출토됐다. 아마도 사자(死者)를 위한  음식이었으리라. 하지만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저승에서도 영원한 삶의 누림을 보장하는 선식(仙食)이었을 것이다.

고구려 고분벽화에도 닭을 형상화한 모습이 더러 보이거니와, 백제  유적에서는 비록 중국 수입품이긴 하나, 닭을 형상화한 각종 도자기가 빈번한 출토를 보인다.

닭은 또 우리 문화에서 입신출세와 부귀공명, 자손번창을 상징하기도 했다.

조선시대에 학문과 벼슬에 뜻을 둔 사람은 서재에 닭 그림을 걸어두곤 했다. 그렇게 하면 입신출세를 하고 부귀공명을 얻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닭볏은 관(冠)을 쓴 모습이라는 점에 착안해 흔히 벼슬길을 보장한다고 인식되곤 했는데 마침 벼슬과 볏은 당시에는 같은 발음이었다.

조선시대 그림에서 닭은 맨드라미, 모란을 함께 등장하는 경우가 많다. 닭볏과 맨드라미 모습이 엇비슷한 데서 착안한 것이니 관 위에 관을 더한 형국이니  출세도 이만한 출세가 없다.

아울러 모란 또한 그 화려한 모양이 풍기듯 부귀를 상징하니(여성의 음경을 빗댄 경우도 많다) 닭과의 커플링이 결코 우연의 소산은 아니었던 것이다.

2005년 을유년(乙酉年), 닭의 해는 부디 닭이 몰아온다는 서조(瑞兆)만이  가득한 한 해였으면 하고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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