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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4-11-29 00:00
[불자소식] 고승들의 1주기에 다시 새겨보는 열반송
 글쓴이 : 편집국
 
늦가을 바람이 소슬하다. 나뭇가지에서  파르르 떨던 단풍잎들이 문득 내린 비를 맞고 우수수 떨어진다. 그리고  첫눈도  흩날렸다. 꽃잎 화사했던 봄이 어제런가 싶은데 때는 바야흐로 연말의 초겨울로 치닫는다.

지난해 이맘때는 유독 고승들이 많이 입적했다. 11월 12일 조계종 원로의원  청화 스님을 시작으로 전 조계종 총무원장 정대 스님(18일), 태고종 종정 덕암 스님(23일), 조계종 원로의원 덕명 스님(12월 2일), 전 조계종 종정 월하 스님(4일)과  서옹 스님(13일)이 차례로 열반적정에 들었다.

삶의 마지막 비밀은 죽음이다. 파란 많은 살을 마감하는 길목에서 수많은 과거 행적이 주마등처럼 스쳐갈 것이다. 이 엄숙한 순간을 어찌 한 마디 말로 표현할 수 있겠는가. 그래서 사람들은 삶을 축약한 고별사로 유언을 남기곤 한다.

멋진 유언을 이를 때 고승들의 그것을 빼놓을 수 없다. 이들 스님은 삶과  우주를 꿰뚫는 쾌도난마의 열반송으로 세속의 중생들에게 커다란 가르침을 던졌다. 때로는 사방천지를 쩡쩡 울리는 사자후로, 때로는 그마저 하잘것없는 집착이라는 천  근 만 근의 `가벼움'으로 가슴을 때렸다.

어린 아이와 같은 동심을 늘 지녀 `천진불'로 일컬어졌던 서옹 스님. 정안(正眼)으로 조사가풍을 진작시키고 수행전통을 사회화하기 위해 온 몸을 던졌던 스님은  "운문에 해는 긴데 이르는 사람없고(雲門日永無人至)/아직 남은 봄에 꽃은 반쯤 떨어졌네(猶有殘春半落花)"라며 92세를 일기로 좌탈입망(坐脫立亡)했다. 스님은 이 열반송에서 "한번 백학이 나니 천년 동안 고요하고(一飛白鶴千年寂)/솔솔  부는  솔바람 붉은 노을을 보내네(細細松風送紫霞)"라고 설파했다.

월하 스님은 일체보살의 본각진성(本覺眞性)을 깨닫고 대자유인이 되고자 했다. 종단의 큰어른으로 특유의 친화력을 보여주기도 한 스님은 "한 물건이 이 육신을 벗어나니(一物脫根塵)/두두물물이 법신을 나투네(頭頭顯法身)/가고 머뭄을 논하지  말라(莫論去與住)/곳곳이 나의 집이니라(處處盡吾家)"라는 열반송을  남겼다.  속세의 티끌같은 육신을 내던지고 열반에 들어도 세상만물이 나와 하나이고 곳곳이 내 집이기에 가고 머뭄에 집착하지 않는다는 뜻일 것이다.

이런 생사초탈의 법음은 다른 스님에게서도 거의 공통적으로 들을 수 있다.  평생 1일1식과 장좌불와로 수행자들의 귀감이 됐던 청화 스님은 "이 세상 저  세상(此世他世間)/오고감을 상관치 않으나(去來不相關)/입은 은혜 대천계만큼  큰데(蒙恩大千界)/은혜 갚는 것은 작은 시내 같음을 한스러워할 뿐이네(報恩恨細澗)"라고  읊었다. 과연 `세상 인연 다 했으니 이젠 가련다'라며 툭툭 털고 일어섰던 스님다운  열반송이다.

덕암 스님은 "나고 죽는 것을 열반이라 하나 또한 상이  없다(生死涅槃亦無相)/만약 사람이 나한테 가고 오는 곳을 묻는다면(若人問我去來處)/붉은 해가  극각세계를 비추며 구름이 무여 흩어지는 거와 같다(雲散紅日照西天)"라고 했고, 정대  스님도 임종게에서 "올 때도 죽음의 관문에 들어오지 않았고(來不入死關)/갈 때도  죽음의 관문을 벗어나지 않았도다(去不出死關)"라고 했다.

이에 비하면 지난해 봄에 입적한 서암 스님(전 조계종 종정)의 열반송은 허망할 정도로 파격적이다. 스님이 입적하기 전에 제자들이 열반송을 간청하자 "나는  그런 거 없어"라고 잘라 말했다. 제자들이 "그래도 누가 물으면  뭐라고  답할까요?"라고 재차 간청하니 스님은 "달리 할 말이 없다. 정 누가 물으면 그 노장 그렇게  살다가 그렇게 갔다고 해라.그게 내 열반송이다"고 대답했다. 그마저 수행승이 가장 꺼리는 집착덩어리 아니겠느냐는 뜻이다.

해마다 봄과 가을에 세속에 나와 법향을 듬뿍 안겨주고 있는 법정 스님의  생사관도 새겨볼 만하다. 스님은 "죽음을 어둡고 기분 나쁘게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죽음도 삶의 한 모습, 삶의 한 과정이다. 죽음이 받쳐주고 있기에 삶이 빛날 수 있다"고 설파한다. 그러면서 돌을 안고 대동강 물에 들어가 입적한 화엄 법사의 예를  든 뒤 "나는 죽을 때 아무도 없는 데 가서 (조용히) 마칠까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고승들이 입적할 때마다 세간에서 관심을 모으는 사리에 대해 스님은  못마땅한 기색이 역력하다. 유골을 채로 걸러 마치 사금 줍듯이 사리니 냉면이니 가려내는데, 이게 얼마나 불경스런 일이냐는 꾸짖음이다. 불자들이 화장을 하는 것은 아무  것도 남기지 않는 본래무일물(本來無一物)을 그대로 드러내 보이는 것이라며 `진짜  사리는 그 분의 가르침'이라고 법정 스님은 강조한다.

낙엽이 지고 나목이 거리 곳곳에 우두커니 서는 계절이 되면 무명중생들도 삶의 한 자락을 살짝 들춰보며 제법 숙연한 표정과 마음가짐으로 근원을 캐보려 한다. 이럴 때 삶과 죽음이 궁극적으로 하나라는 선사들의 생사일여(生死一如) 법문에  귀를 기울이는 것도 조락의 계절을 의미있게 보내는 한 방법일 것 같다. 가득 채우기  위해서는 먼저 텅 비워야 하듯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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