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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2-01-22 00:00
[교양/문화] 디자이너 코코 샤넬의 삶
 글쓴이 : 이성경기자
 
향수의 대명사 '샤넬 N°5'.마릴린 먼로가 생전의 인터뷰에서 '샤넬 N°5'와 함께 잔다고 말함으로서 샤넬의 명성은 이미 타의추종을 불허한다. 준깡마른 몸매,짧게 자른 숱진 검은 머리,거의 이어진 듯한 일자 눈썹으로 20세기초 파리의 사교계를 뒤흔들었던 프랑스의 패션 디자이너 가브리엘 샤넬(1883∼1971)의 일생을 그린 '코코사넬(앙리 지델, 작가정신)'이 출간됐다.
 
불우했던 어린 시절을 극복하고 모자 디자이너로 출발한 샤넬은 제1차 세계 대전으로 인한 사회 변화를 반영하여 일하는 여성을 위한 옷이라는 일관된 패션 철학을 가지고 여성의 실루엣과 편안함을 고려한 자유롭고 간편한 복장을 창출함으로써 당시에 여성의 몸을 가두고 혹사하던 복식으로부터 여성을 해방시켰다. 타고난 장사꾼의 수완과 뛰어난 재능, 독특한 심미안을 갖추었던 샤넬은 짧은 머리, 뒤꿈치가 드러나는 구두, 언제 어디서나 입을 수 있는 바지, 샤넬 라인 스커트, 향수 샤넬 N°5, 인조 보석으로 만든 장신구 등 현대를 상징하는 패션을 주도하였을 뿐 아니라 디아길레프, 니진스키, 스트라빈스키, 피카소, 달리, 콕토, 라디게, 리파르, 르베르디 등 당대 최고의 예술인들과 교유하고, 그들을 후원하였다. 그러나 샤넬은 눈부신 성공 외에는 운명으로부터 모든 것을 거부당했다. 사랑하는 사람은 사고로 죽고 결혼을 원하는 남자에게는 아이를 낳아줄 수 없었으며 지독한 외로움에 결혼을 결심했을 때는 연인이 죽었다. 러시아의 드미트리 대공, 영국의 웨스트민스터 공작, 초현실주의 시인 르베르디, 광고 디자이너 폴 이리브와 사랑을 나누었지만 그들 중 누구도 그녀를 지켜주지 못했다. 제2차 세계 대전 때는 평화 협상을 위해 처칠을 설득하는 일을 맡아 역사를 바꿀 뻔하기도 했던 샤넬은 15년을 쉬었다가 일흔한 살의 나이에 패션계에 성공적으로 복귀해서 자신의 건재를 과시했다. 아버지에게 버림받고 마스코트 가수로 인생을 시작했으나 명실상부한 부와 명성을 쟁취한 그녀의 불굴의 의지는 성공과 실패, 실연과 고독에도 불구하고 오늘날의 샤넬 브랜드를 있게 한 신화적 원동력이다. 샤넬은 1971년 1월 11일 그녀가 그토록 싫어하던 일요일에 리츠 호텔방에서 혼자 외롭게 숨을 거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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