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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1-12-31 00:00
[교양/문화] 박노자 교수 저서통해 호국불교 비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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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들의 대한민국>, 박노자 지음, 한겨레신문사 펴냄, 8500원.

그는 블라디미르 티호노프라는 이름을 버렸다. 한국과 인연을 맺은 지 13년. 대학, 종교, 군대, 인종주의… 대한민국 사회의 치부를 거침없이 일갈하면서 그가 선택한 이름은 박노자다.

역주를 단 책을 제외하고는 그의 첫 글모음인 <당신들의 대한민국>에서 박씨는 이 사회에서 금기되거나 기피되었던 이야기를 막힘없이 쏟아놓는다. 중세적 도제관계를 방불케 하는 대학사회의 교수-학생 관계에서부터, 러시아에서 명예학위를 따려고 접근하는 한국인들의 비굴한 모습까지 책이 고발하는 것은 우리 사회의 `부끄러운 초상'이다. 그러나 그것은 외국인의 눈으로 보는 `외부고발'이 아니라 진정 한국을 사랑한 귀화인의 `내부고발'이어서 더욱 아프다.

박씨는 현재 노르웨이 오슬로 국립대학의 한국학 교수로 재직중이다. 잠시 한국에 나온 그를 25일 만났다. 그는 “한국사회에 대해 하고 싶은 말이 너무나 많다”고 말했다. 그의 말을 들어보자.

박씨의 고향은 이제는 레닌그라드로 불리는 러시아의 상트 페테르부르그다. 박씨가 책의 머리에서 조금 밝혔듯이 그의 머리에 `코레야'라는 나라가 각인된 것은 고등학교때 소련 텔레비전에서 방영한 북한 영화 <춘향전>을 보면서부터다. “사춘기였기 때문일까, 조선의 나지막한 산들, 춘향의 사랑스런 모습 등 모든 게 너무나 인상 깊었다.” 조선의 고전소설을 닥치는 대로 읽던 그는 운명에 이끌리듯 레닌그라드대 조선역사학과에 진학한다.

당시 소련은 체제의 막바지에 이르고 있었다. 또 아프가니스탄 침공에 따라 젊은이들 사이에 군대와 국가 이데올로기에 대한 반감이 극에 달한 때이기도 했다. “군인으로 아프간에 다녀온 선배들의 변하는 모습을 내 눈으로 봤다. 마약을 하면서도 그들은 자신이 행한 살상을 내면적으로 합리화시키기 위해 국가를 절대화하고 국가에 맹종했다. 베트남전 참전군인들도 마찬가지 아닌가.” 한국의 군대문제에 대한 비판의식도 이런 그의 경험에서 싹튼 것일 게다.

91년 고려대에 3개월간 머물렀다. 한국에 들어올 때는 소련인이었지만 돌아갈 땐 러시아인이었다. “처음엔 옐친 정부에 대해 기대도 있었다. 자본주의화가 되면 나처럼 공부하는 사람들의 대우도 좀 나아지지 않을까. 하지만 그 기대는 곧 무너졌다. 예전에는 이발소에 가더라도 사람들이 농담하고 동지적 분위기랄까 그런 게 있었는데 불과 석달 만에 사람들이 바뀌어 있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신한국 2000>을 번역하기도 하고, 지난밤 돈으로 산 러시아 아가씨들과의 일을 떠벌이는 `귀하신' 사장님들을 안내하고, 명예학위를 구입하는 한국의 대학총장들과 원로교수들의 심부름꾼 노릇도 하고… 박씨는 공부를 끝내기 위해 닥치는 대로 일을 했다.

95년 한국여성인 지금의 아내와 결혼하고, 96년 경희대 러시아어과 전임강사로 발령받으며 박씨는 한국사회 깊숙이 들어왔다. “`우리'라는 말이 가장 낯설었다.” 한국사회에서 가장 진보적이라는 학생운동권조차 `우리' 문화에선 한 발자국도 앞서나가지 못했다. “자본주의와 세계적 종속을 거부하고자 했던 그들이 `식구들'의 `일심단결'을 우선시하는 가족주의적 종속의 미시담론을 절대화하고 있었던 셈”이다. “그들이 개인의 자유와 인권을 더 중시했다면 그들의 반란이 훨씬 더 철저하고 강한 해방의 효과를 가져오지 않았을까.”

그가 말하는 개인주의는 서구근대의 산물인 개인주의에 국한되지 않는다. “옛 선비들은 권문세가의 힘을 빌려 사는 걸 가장 부끄러워했다. 이런 개인적 자존감을 말하는 거다.”

그는 귀화과정에서도 인종차별을 뼈저리게 느꼈다고 했다. 어느정도 경제력이 있고 학력이 있는 이들도 통과하기 어려운 관문들이었다. 하지만 “한국학을 하는 사람으로서 한국인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과 함께 한국인에게 질문을 던지고 싶었다. 과연 한국이라는 것이 `핏줄'로만 결정되는 것인가라는 질문 말이다.”

교수에서 불법노동자로 전락한 몽골인 바트자갈의 이야기를 통해 박씨는 한국인들의 서열의식에서 발동한 인종주의를 날카롭게 지적한다. 폭력을 가장 거부하는 불교의 승려들이 왜 군입대를 거부 안 하는지, 왜 말도 안 되는 `호국불교'의 이미지를 떠안고 지내는지, 종교에 대해서도 의문을 던진다. 상아탑의 추한 모습과 민족주의의 담론이 옥죄는 한국사회까지 그의 비판은 많은 사람들로부터 “속이 시원하다”는 말을 들어왔다. 이런 그의 글이 단순히 감정적 비난으로 읽히지 않는 건, 러시아의 추한 역사에 대한 반성과 한국에 관한 해박한 지식 및 성찰이 들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최근 그는 모스크바대학에서 교재로 쓰게 될 <한국사개설>을 거의 탈고했다. 또 지금의 인종차별적 의식구조를 가져온 근대초기 사회진화론의 조선 유입과정과 근대시기 불교의 움직임을 연구과제로 꼽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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