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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4-03-16 16:19
[출판/공연] 웹툰 원작 ‘독립운동의 횃불 봉선사와 태허 스님’ 발간
 글쓴이 : 전수진기자
 

사진은=신간여행 제공 

운암김성숙선생기념사업회(회장 민성진)는 봉선사 정기를 받아 독립운동을 했던 불교 유일의 대한민국임시정부 국무위원 운암 김성숙 선생(태허 스님)의 일대기를 다뤘던 웹툰이 책으로 발간되었다.

‘독립운동의 횃불 봉선사와 태허스님’은 운암 선생의 불교입문과 불교행적을 정리한 책으로, 운암 김성숙선생이 풍곡 신원 선사를 은사로 모시고 출가한 뒤 독립운동에 투신하는 과정까지의 여정을 그리고 있다.

이 책은 운암 선생이 봉선사에서 홍월초 스님으로부터 가르침을 받으며 만해 한용운 스님, 의암 손병희와 교류한 이야기, 3·1운동 당시 남양주 광천시장에서 시위를 주도하다가 투옥된 이야기, 중국으로 떠나기 전 운허 스님과의 법연을 쌓은 이야기 등이 흥미진진하게 전개된다. 

웹툰 제작은 불교소설가 유응오 작가가 시나리오를 썼다. 불교만화 전문작가 정수일 작가가 작화를 했다.

 

[책소개]

수행하듯 살다 가신 님, 매화꽃이 만발하였다.

수행에는 간절함 말고는 

별다른 요령이 없구나

 운암 김성숙의 삶을 “물 위에게 그림자 진 구름같이 젖지 않는 구름, 아무리 물결이 뒤집혀도 젖을 수 없는 구름”이요, “거리 복판에, 정치의 복판에, 사상의 복판에 서 있는 바위, 아무리 뒤흔들어도 움직일 수 없는 바위”라고 노산(鷺山) 이은상(李殷相) 시인은 칭송했다. 한평생 지조와 절개를 지키며 살았던 운암 김성숙 선생이기에 에게 받을 수 있는 찬사일 것이다. 

 운암 김성숙 선생은 1898년 3월 10일 평안북도 철산군(鐵山郡) 서림면(西林面) 강암동(江岩洞)의 한 농가에서 부친 김문환(金文煥)과 모친 임천(林川) 조씨(趙氏) 사이에서 3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이후 선생은 할아버지에게서 한문을 익혔다. 

 삼촌으로부터 독립군의 소식을 전해 들으면서 성숙은 구국의 의지를 불태웠다. 결국, 독립운동에 투신하기로 하고 18세가 되자 신흥군관학교에 입학하고자 집을 나섰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뜻하지 않은 사건으로 만주 봉천으로 가서 독립운동가가 되려는 꿈은, 마침 땅을 판 돈을 훔쳐 품 안에 넣고 집을 떠나 함경도 원산까지 갔으나, 그곳에서 어떤 힘센 어른에게 붙잡혀 목적지를 추궁받은 끝에 길이 막히고 말았다.

 그는 주인에게 돈을 달래서 품 안에 간직하고 서강사라는 절을 찾았다. 절에서 하룻밤을 묵으면서 도망갈 기회를 엿보다가 새벽에 절을 나서는데, 마침 산등성이에서 경기도 양평 용문사 풍곡 신원 스님을 만났다.

 우리 민족의

 독립도 다르지 않으리

 그 길로 김성숙은 스님을 따라 양평 용문사로 가서 승려가 되었다. 독립군이 되겠다고 집을 나섰다가 스님이 된 것이다. 그 후, 봉선사에서 월초스님으로부터 가르침을 받으며 만해 한용운 스님과 의암 손병희 선생과 교류한 이야기가 당시 시대 흐름에 분노하게 한다. 출옥하고 난 후, 봉선사 큰스님의 권유에 따라 운허 스님과 법연을 쌓는다. 

 일제의 감시를 피해 봉선사에 머물던 선생은 김봉환, 김규하, 김정완, 윤종묵, 차응준 등 승려 5명과 함께 금강산 유점사를 거쳐 압록강을 건너서 중국 북경으로 건너가서 독립운동에 투신한다. 

 1923년 북경의 민국 대학에 입학한 선생은 정치학과 경제학을 전공하면서 선진강국들의 정치정책과 경제정책을 공부하였다. 만국 대학 재학 당시 선생은 고려유학생회를 조직해 회장으로 활동하는가 하면, 창일당(創一黨)을 조직해 《혁명》이라는 기관지를 발간했다. 

 이후 선생은 일본제국의 수뇌부를 암살하는 독립운동단체인 조선의열단에 가입하여 활동하다 의열단 선전부장에 선출된 선생은 《혁명동맹》의 주필을 맡아 활약했다. 그리고 유학한국혁명청년회(留學韓國革命靑年會)를 조직하고 기관지 《혁명행동(革命行動)》을 발간하였다. 8월 선생은 중국공산당의 광주봉기(廣州起義)에 참여하였다. 같은 해 대한독립당촉성회(大韓獨立黨促成會) 광동지구 분회를 조직하는 데 참여하였다. 이후 선생은 재중국조선 청년동맹을 직접 조직하고 항일운동에 앞장섰다.

 반제동맹(反帝同盟)에 가입한 뒤 기관지 《봉화(烽火)》와 잡지 《반일민중(反日民衆)》의 편집위원으로 활동하는가 하면, 중국군 19로군(十九路軍)에 종군하기도 하였다. 선생은 중국 각지의 독립운동가들을 모아 조선민족해방동맹을 조직한 뒤 선전부장에 취임하였다. 이듬해에는 조선민족전선연맹(朝鮮民族戰線聯盟)을 결성하고 선전부장에 취임했다.

 해방 이후 선생의 생활이 어떠했는지 1955년 2월 23일 자 일기는 능히 짐작할 수 있게 한다.

“오늘 200원을 꾸어 쌀을 사 왔다…… 내가 독립운동을 하고 정치를 한다고 돌아다니면서도 가족을 굶기며 살고 있구나.”

 3·15 부정선거에 따른 4·19 혁명으로 이승만 정권은 붕괴하였으나 장면 정부에서도 선생은 통일 사회당을 창당해 야당 정치인으로 활동하였다. 5.16 군사 정변 이후 군정에 의해 공포된 특별 소급법 ‘특수죄처벌에 관한 특별법’이 제정되었다. 당시 선생은 대한민국임시정부 동지인 장건상과 함께 체포돼 10개월간 옥고를 치러야 했다. 군사혁명재판소의 집행유예 판결로 석방되었다. 

 통일사회당 창당에 발기인으로 참여하였고, 대표위원으로 추대되었다. 이후 통일 사회당은 신한당에 흡수되었다. 선생은 신한당 발기인으로 참여하였고, 정무위원회 위원에 선출되었다. 신한당과 민중당의 통합으로 신민당이 창당되자 선생은 신민당에 입당하였으며 운영위원으로 선출되었다. 이듬해에는 신민당 지도위원으로 선출되었다. 

 

 추위가 한 번 뼈에 사무치지 않으면

 어찌 코를 찌르는 매화 향기를 얻을 수 있으리오

 선생은 71세의 일기로 1969년 4월 12일 별세하였다. 선생의 장례는 대한민국 정부의 발표에 따라서 사회장으로 봉행 되었다. 조계사에서 봉행 된 영결식에는 국회부의장, 신민당 총재, 총무처 장관 등이 참석해 조의를 표했다. 

선생은 경기도 파주 조리면 장탄리에 묻혔다. 승려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선생의 장례가 화장이 아니라 매장으로 봉행 된 것은 선견지명이 있었던 도반 운허 스님의 주장에 따른 것이다.

선생이 별세한 뒤 1년 뒤, 선생의 묘비를 세웠다. 묘비명도 노산 이은상 시인이 지었다. 

운암 김성숙 선생은 비바람이 앞을 가리는 여정 속에서도 부정과 불의에 굽히지 않고 지조(志操)와 절개(節槪)의 삶을 살다 가셨다. 선생께서는 “추위가 한 번 뼈에 사무치지 않으면(不是一番寒徹骨) 어찌 코를 찌르는 매화 향기를 얻을 수 있으리오(爭得梅花撲鼻香)”라는 가르침을 몸소 보이셨으니, 비록 선생은 가고 없으나, 애오라지 조국의 앞날만을 생각한 선생의 민족 얼은 후대에 세세생생 계승되리라.

[저자소개]

저자 : 유응오

원작 : 유응오

1972년 충남 부여 출생.

2001년 〈불교신문〉, 2007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단편소설 당선돼 등단.

불교계 언론사 편집장, 《불교와 문학》 주간, 현대불교문인협회 사무총장 역임.

소설집 《검은 입 흰 귀》, 장편소설 《하루코의 봄》, 《염주(念珠)》, 영화평론 《영화, 불교와 만나다》 등을 출간했다.

글/그림; 정수일

전남 청산도 출생하여 한국방송통신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했다.

만화계 입문 약 15년 간 만화 수업. 도서출판 반야샘의 석왕사보에 처녀작 『십대제자』를연재하며 활동을 시작했다.

부천시민신문 만평작가, 국립한국방송통신대학교신문 만평작가, 인터넷신문 한국투데이 만평작가로 활동하며, 인천예총미추홀문화회관 캐리커처 강사, 충남도립대학교 평생교육원 캐리커처 강사 활동했다.

작품으로 〈정본파브르곤충기(전10권 삽화)〈만해 한용운〉〈만화로 보는 용성대선사〉〈캐리커처 제대로 그리기〉〈알아두면 쓸데있는 사물의 인문학〉〈천기누설(웹툰)〉〈독립운동의 횃불 봉선사와 태허스님〉웹툰을 발행했으며 석왕사보에 〈숯타니밝다〉를 연재하고 있다.

컬러; 정태영

출판사소개

시간여행 출판사는

호기심을 자극하고 상상력과 행동을 확장시키는

문학과 자기계발·청소년 도서. 사람을 위하는 생각을

바탕으로 한 교육·종교·과학 도서를 발간합니다.

2014년 7월 1일 화남출판사를 인수하여

문학 분야 130종, 인문(교육) 분야 35여 종, 종교 분야 14종,

청소년 분야 5종, 과학기술 분야 4종, 자기계발·실용 분야 30종,

총 220여 종의 도서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출판 사업의 역량은 자본과 테크닉이 아니라,

꾸준히 목표를 지향하는 항심성과

사람 중심 철학에서 나온다고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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