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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3-09-23 20:02
[출판/공연] <엄마상회>출간
 글쓴이 : 전영숙기자
 

다양한 엄마가 구비되어 있는 『엄마상회』, 엄마에게 미안한 사람들이 읽는 소설
이 소설은 세상의 다양한 엄마들을 만나게 해준다. 수많은 리얼리티로 우리에게 다가오는 얽히고설킨 생생한 엄마의 서사를 기억하게 만든다. ‘엄마’라는 단어가 떠올리는 사랑, 기쁨, 분노, 슬픔, 아픔, 그리움 같은 감정의 동심원이 회오리를 그리면서 책을 읽는 동안 시종일관 엄마의 얼굴이 떠나지 않는다.

「엄마가 간다」는 마치 종교처럼 존재하는 아들을 위해 살아가는 엄마의 모습을 입체적으로 다루고 있다. 양자로 떠난 아들을 위해 악착같이 돈을 모으며 살아온 엄마. 몇십 년이 지나 아들을 떠나보낸 개나리 피는 계절에 엄마는 종교 같은 존재인 아들에게 그동안 못다 한 헌금을 하기 위해 찾아간다. 하지만 양자 간 아들이 수십 년 동안 곡마단과 밤무대를 전전하고 불 쇼를 하며 홀로 살아온 사실에 충격을 받아 차도를 건너다 사고로 목숨을 잃고 만다. 아들 때문에 아프고 돈 때문에 아픈 엄마의 모습이 너무 절절하다.

「막내엄마」는 뒤늦게 정착한 가정에 뿌리를 내리려고 기적처럼 찾아온 태아까지 희생하는 엄마를 그린다. 남편과 아이들을 사랑으로 품으려는 엄마의 모습이 너무나 완벽해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오해와 의심을 받고 결국 빌미가 되어 가정을 떠난다. 뒤늦게 엄마의 빈자리를 깨달은 남편과 삼 남매가 엄마를 찾아 나서고, 차마 가족과 멀리 떨어지지 못하고 그들 곁에서 우렁각시처럼 존재하며 인고의 삶을 살아내는 엄마 이야기이다.

「빨간 뾰족구두」는 절름발이로 살아온 자신에게 유일하게 자유를 경험하게 해주고 생명을 구해준 남자를 위해 손만 대도 상처를 입어 변색한다는 참꽃으로 술을 담그는 엄마를 바라보는 아들의 시점이 소설을 이끈다. 손수 담근 진달래술을 팔아 돈이 생기면 자주 집을 비우는 엄마를 보며 들었던 버림받았다는 생각이 성인이 되어 콤플렉스로 작용하는 아들의 분리불안 심리 묘사가 돋보인다. 화자의 그런 심리는 작은 키의 엄마와 15센티미터 킬힐을 신는 자신의 애인을 동일시하고 발을 주무르는 상징성으로 나타난다. 평생 사랑하던 유부남 남자가 죽었다는 가족의 거짓말에 자신의 삶을 마감한 엄마, 그 묘를 이장하는 아들의 이야기는 감성의 늪이 깊다.

「너머엄마」는 노근리 학살 사건 무대를 배경으로 씨받이 생모 너머엄마와 가슴으로 낳아 기른 석녀 엄마, 두 엄마의 기구한 인생 여정을 먹먹하게 들려준다. 야트막한 언덕 너머 외딴집에 혼자 살면서 까만 옷을 고집하며 빛을 차단한 채 어둠에 갇혀 사는 너머엄마, 호적에도 오르지 못하고 세상에 사진 한 장도 남기지 않은 너머엄마, 그 형상이 들려주는 심도 짙은 이야기는 새삼 연기(緣起)의 이치를 깨닫게 한다.

「두셋다람」은 팔십을 넘긴 엄마, 그 엄마를 감당하는 딸의 표정과 일상이 손에 잡힐 듯이 섬세하게 직조되어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바로 노래 교실에 나가고 한국무용과 댄스스포츠를 배우면서 남편에게 벗어나고 자식들로부터 놓여 난 엄마. 그 엄마가 어느새 텔레비전만 안고 산다. 딸은 그런 엄마를 노치원에 보내고 여행도 같이하지만 늙은 엄마 입에서 나오는 ‘두셋다람’이라는 말의 뜻을 알지 못한다. 엄마에게 물어보지만 부끄러운 표정만 지을 뿐 도통 알려주지 않는다. 딸은 우연히 ‘42개의 사랑해’ 노래를 듣다가 그 말이 ‘사랑해’라는 의미를 알게 된다. 새삼 딸과 엄마의 거리를 생각하게 만든다.

「멍」은 많은 면에서 대조되는 두 여자의 갈등과 화해의 여정을 다룬다. 늙은 남자에게 속았다는 것을 알지만 아이 때문에 홀아비에게 묶인 어린 여성, 열열한 구애를 받고 혼인해 행복하지만 아이를 가질 수 없는 여성, 그 둘은 나이 차이가 얼마 나지 않는 고부이다. 표면적으로는 시어머니가 며느리에게 고통을 가하는 관계로 보이지만 두 여성은 실상 모두 상처받은 존재이다. 두 여성은 할퀴고 혐오하면서 결국은 이해하고 포용하게 된다. 시어머니와 며느리, 고부로 살아가는 이 땅 엄마들의 서사이다.

「린스가 무섭다」
 나이 어리고 잘생긴 남편을 만나 103세 시어머니를 포함한 식구들의 무게를 짊어지고 살아가는 부박한 엄마 이야기이다. 암에 걸려 항암 투쟁을 하면서도 시댁을 건사해야 하는 삶에 길들여진 엄마는, 그 비슷한 세대의 많은 며느리처럼 그렇게 사는 것이 당연한 줄 안다. 나 하나의 희생으로 모두가 편하면 된다고 생각했고, 그렇게 자신의 존재를 확인했다. 무엇이든 살리는 손, 거두는 손, 희생하는 손이 잘못인가? 그렇게 산 게 잘못인가? 생각하며 여자는 소변은 당신 방의 요강에서 보지만 대변은 꼭 거실 화장실에서 보는 시어머니를 겨냥해 화장실 바닥에 린스를 뿌린다. 매끄러운 머릿결을 만드는 린스를 밟으면 미끄러져 욕조 어디든 부딪힐 것이란 계산에서였다. 하지만 그 린스에 미끄러져 정신을 잃고 쓰러진 것은 본인이다. 이 엄마가 그려낸 현실은 무척이나 냉정하다.
「백단심 지다」는 방탕한 남편을 자식처럼 보듬고, 자손들 가려운 곳 긁어주는 좋은 아내, 좋은 엄마, 좋은 할머니로 살면서 존재감이라고는 없던 여인이 남편이 죽자 단연 그 존재를 드러낸다. 꼭꼭 누르던 이성의 힘을 비집고 나온 그 존재감은 거침없는 욕설로 나타난다. 시집온 이래 행여 남의 손 탈까 싶어 남편은 새색시 머무는 집에 생울타리를 만든다. 무궁화로 울을 두른 집에서 평생을 산 여자에게 넓건 좁건 늙었건 젊었건 세상살이는 간단하지 않았다. 평생 입 다문 채 다친 마음을 뱉지 않던 여인은 남편의 사십구재를 맞아 원 없이 울부짖는다. 손녀는 그런 할머니에게 백단심이라는 이름을 주며 통곡한다.

「귀먹은 항아리」는 그르릉거리는 가래소리를 내는 할머니가 주인공 정님의 삶에 끼친 영향을 바탕으로, 할머니의 작은 아들로 상징되는 전쟁과 분단과 이산의 아픔을 평생 가슴에 삭여온 심연 깊은 모정의 서사이다. 평생 당신 위주 삶의 태도로 일관한 할머니가 손녀인 정님에게 남긴 유산은 고작 항아리 세 개뿐일 만큼 냉랭하기만 하다. 하지만 주위에 폐를 끼치지 않으려고 병을 숨긴 채 끝내 자살하듯 숨을 거둔 할머니, 그 할머니에게 수의를 입히는 정님의 모습은 여성들이 평생 떠안아야 하는 ‘어머니, 할머니’들의 씻기지 않은 한의 기록이다.

「중국할머니」는 할아버지의 작은댁으로 살아온 중국할머니와 정실부인인 친할머니의 인생과 긴장 관계를 그리고 있다. 중국할머니는 상해임시정부 요원이었던 할아버지를 사랑하고 존경해 정성껏 모시면서 함께 지난한 길을 걸어왔다. 친할머니와 중국할머니는 곱게 정성을 들인 보쌈김치라는 보자기를 만들고 풀면서 시앗질이라는 사사로운 질투와 시샘을 보쌈김치로 승화시킨다. 화자인 나는 그런 모습을 보며 결혼을 하고 아들을 낳고 길러 며느리를 보고 손주를 얻는다. 남편 앞에서 언제나 당당한 나는 할아버지 앞에서 숙명처럼 수긍했던 중국할머니를 떠올린다. 중국할머니의 인생을 화자 인생으로 치환하는 손맛이 각별하고 맛난 소설이다.

『엄마상회』에서 이처럼 핍진하게 그려내는 엄마의 형상들은 평생 이런저런 회한과 기억에서 쉽게 놓여나지 못한다. 아프고 억울하고 외롭고 두렵고 울고 웃는 모습을 소설은 구체성을 동원하여 충실하게 다루면서, 이 세상 엄마들이 감당해야 할 일들을 그만큼의 무게로 서술한다. 그것은 이 세상에서 엄마의 생은 기록되어야 하고 알려져야 하고 애도 되어야 하고 기억되어야 하는 숭고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소설 『엄마상회』는 무엇보다도 값지게 읽힌다.
저자 : 김진초
1955년 경기도 양주시 송추 출생
1997년 「한국소설」신인상에 단편 「아스팔트 신기루」 당선으로 소설 등단
1999년 단편소설 「귀먹은 항아리」로 한국소설문학상 우수작 선정
2001년 첫 번째 소설집 「프로스트의 목걸이」 출간
2003년 제7회 서울이야기 공모에서 수필 「박석고개」로 대상 수상
2004년 두 번째 소설집 「노천국 씨가 순환선을 타는 까닭」 출간
2005년 첫 번째 장편소설 「시선」 출간
2006년 장편소설 「시선」으로 제17회 인천문학상 수상
2007년 세 번째 소설집 「옆방이 조용하다」 출간
2009년 두 번째 장편소설 「교외선」 출간
2015년 다섯 번째 소설집 「김치 읽는 시간」 출간
2016년 소설집 「김치 읽는 시간」으로 제6회 한국소설작가상 수상
2016년 세 번째 장편소설 「여자여름」출간
2016년 장편소설 「여자여름」으로 한국문협작가상 수상
2020년 여섯 번째 소설집 「사람의 지도」 출간
2022년 제40회 인천광역시 문화상(문학 부문) 수상
소설집 「엄마상회」 (2023, 도화) 「사람의 지도」 (2020, 미소) 「김치 읽는 시간」 (2015, 도화) 「당신의 무늬」 (2013, 아라) 「옆방이 조용하다」 (2007, 개미) 「노천국 씨가 순환선을 타는 까닭」(2004, 한국소설가협회) 「프로스트의 목걸이」 (2001, 개미) 장소설 「여자여름」 (2016, 미소) 「교외선」 (2009, 개미) 「시선」 (2005, 다인아트)
엄마상회|저자 김진초|도서출판도화|값1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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