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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3-02-14 19:41
[출판/공연] <선시로 보는 무문관>출간
 글쓴이 : 전영숙기자
 

초보 등산인이 읽어야 할
선 수행의 길잡이, 선 수행의 필독서
선(禪)으로 들어가는 지름길은 공안의 탐구[참구]다. 공안이란 선 수행자들 사이에서 오가는 일종의 암호 같은 말인데 이 공안의 암호를 해독하기 위해서는 그 해독법을 익혀야 한다. 그 공안 해독방법을 간결하게 서술해 놓은 책이 바로 『무문관(無門關)』이다. 그래서 『무문관』은 “선 수행의 길잡이”로서 선 수행자들 사이에서 “필독서”의 하나로 읽혀 오고 있다.

『무문관』은 『벽암록』과 『종용록』 뒤에 나온 책이지만 이 『무문관』을 공부하지 않고는 『벽암록』과 『종용록』 공부가 쉽지 않을 것이다. 물론 선 수행은 이론이 아니라 몸소 실천[實參實究]하는 것이다. 실천을 전제로 해서만이 이론은 그 존재 이유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사전 예비지식도 없이 무작정 산을 올라갈 수는 없다. 낯선 산을 오르기 위해서는 그 산에 대한 사전 정보가 있어야 한다. 선 수행의 사전 정보는 『무문관』을 통해서 얻을 수 있다. 그리고 이제부터는 본격적으로 전문 등산인이 되기 위해서 공안 탐구의 백미 격인 『벽암록』과 『종용록』을 읽어야 한다. 여기에 『임제록』까지 곁들인다면 더할 나위가 없다. 이렇게 이론과 실천을 겸비하게 되면 이제는 두려울 게 없다.
남은 문제는 꾸준히 곧은 마음으로 가는 것[精進]이다. 저 개울이 끊임없이 흐르듯 그렇게 가는 것이다. 너무 서두르지도 말고 느리지도 않게 자신의 정도[根機]에 맞게 가는 것이다.
수행과정에서 의문 나는 점이 있거나 막히게 되면 바로 이 책, 『선시로 보는 무문관』을 보기 바란다. 또한 책 출시와 함께 석지현 스님의 『무문관』 강의를 3월 14일부터 줌(zoom)과 종로 르미에르빌딩 A동 1102호에서 강의를 진행하니 이번을 기회로 “선 수행”이라는 커다란 산을 오르기 바란다.

◎ 무문관 성립의 전후 배경

『무문관』은 1228년 남송 소정개원(紹定改元) 7월 10일에 완성됐으며 1229년 1월 5일 이종(理宗) 황제 탄신일에 출간됐다. 1245년 맹공(孟珙)의 발문을 붙여 재간(再刊)됐으며, 그다음 해에 안만(安晩)의 발문을 덧붙여 삼간(三刊) 되었다.
『무문관』이 출간되었을 때 『벽암록』 판본은 대혜종고(大慧宗杲, 1089~1163)에 의해서 소각되고 더 이상 유통되지 않았다. 『무문관』 출간은 『벽암록』이 나온 지 101년 후요, 『종용록』이 나온 지 4년 후인데, 『벽암록』 복간은 『무문관』 출간으로부터 70년 후이다. 지금 우리가 볼 수 있는 『벽암록』은 이때 복간된 장본(張本)이다. 그래서 『무문관』은 그 당시(남송 말기) 선승들이나 사대부들 사이에서 상당한 관심을 끌었던 것 같다.
묵조선의 거장 천동정각(天童正覺, 1091∼1157)과 간화선의 제창자인 대혜종고(大慧宗杲)가 활약하던 시기도 바로 이 무렵이었다. 그리고 곧 이어서 만송행수(萬松行秀, 1166∼1246)가 출현하여 『종용록』을 완성했다.

그 당시 사상계에서도 적지 않은 지각 변동이 있었는데, 신유학의 양대학파인 이학(理學)을 완성한 주자(朱子, 1130∼1200)와 심학(心學)을 세운 육상산(陸象山, 1139∼1193)의 생존기도 바로 이때였다. 주자와 육상산은 그들의 사상체계를 수립하는 과정에서 선불교(禪佛敎)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다. 그러면서 동시에 그들은 선불교의 현실도피적인 면과 비실용적인 면을 날카롭게 비판했다. 이런 와중에서 무문은 작가종사로서 활동하며 수행자들을 지도했다.
일본학자 가토 토츠도[加藤咄堂]는 “『무문관』에서 무문의 문장이 건조하고 긴장감이 감도는 것은 바로 이 두 사람의 선(불교) 비판을 의식하고 있었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정치 상황은 극도의 혼란기였다. 남송(南宋)이 망하고 원대(元代)가 되자 선은 뒤로 밀려나고 원나라의 적극적인 후원 아래 티베트 불교가 득세하기 시작했다. 이런 와중에서 『무문관』은 그 판본마저 유실되어 버리고 말았다. 그러나 무문의 제자인 일본 승려 심지각심(心地覺心)에 의해서 『무문관』은 일본으로 전해진 후 오산판(五山版, 1405)을 시작으로 일본에서 널리 유통되었다. 『무문관』이 일본에서 이렇게 유통된 데에는 다음의 두 가지 요인이 작용했다.
첫째, 일본의 입송구법승(入宋求法僧)들에 의해서 중국 선종의 모든 종파와 선 문화가 일본으로 유입, 오산문학(五山文學, 禪文學)이 탄생하면서 『무문관』에 대한 관심도 자연히 높아지기 시작했다.
둘째, 남송 말기의 정치적 혼란 속에서 상당수의 중국 선승들이 일본으로 건너가서 선종을 부흥시켰는데, 이 흐름에 편승하여 『무문관』에 대한 탐구도 자연히 상승기류를 타기 시작했다. 일본의 선종 24파를 세운 선승 24명 가운데 10명은 입송 구법을 했던 일본 선승들이며, 나머지 14명은 남송에서 일본으로 건너간 중국 선승들이었다.
반면, 우리나라에서는 『무문관』이 별로 유통되지 않았다. 근래에 와서 일본에서 유학하고 돌아온 출가와 재가 선수행자들에 의해서 몇 개의 『무문관』이 번역 출간되었다.

◎ 무문관의 사상 배경

무문은 조주(趙州), 운문(雲門), 오조법연(五祖法演), 대혜종고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았다. 조주의 무(無)자 공안 참구로 깨달음을 체험한 그는 무자 공안을 선종의 제1관문(간화선의 핵심 공안)으로 채택했으며 『무문관』이라는 명칭도 이 무자 공안에서 유래됐다. 그래서 『무문관』 48칙 가운데 무자 공안을 제외한 나머지 47칙을 이 무자 공안의 각기 다른 전개 과정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무문관』에 제일 많이 나오는 공안은 조주의 공안 7칙(제1칙, 제7칙, 제11칙, 제14칙, 제19칙, 제31칙, 제37칙)이다. 그다음으로는 운문의 공안 5칙(제15칙, 제16칙, 제21칙, 제39칙, 제48칙)이요, 세 번째로는 오조법연의 공안 4칙(제35칙, 제36칙, 제38칙, 제45칙)인데, 제38칙 우과창령(牛過窓櫺)은 오조록(五祖錄)에도 없는 공안이다. 아마 오조법연에서 4대 월림사관을 거쳐 무문으로 이어지는 법계(法系)에서 실내비사(室內祕事)로 구전(口傳)되어 전해진 이 공안이 무문에 의해서 문자로 기록된 것 같다(平田高士의 견해). 이것은 무문이 오조법연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다는 증거라고 할 수 있다.

『무문관』에서 강조하고 있는 무문의 선은 무엇인가? 전광석화와도 같은 직관지(直觀知)로 식정(識精)을 타파하는 것이다. 즉 당대(唐代)의 마조(馬祖), 백장(百丈), 남전(南泉), 조주(趙州)에게 근거를 두고 오조법연과 대혜종고의 간화선(무자 공안 참구) 전통을 그대로 계승하면서 무문은 『무문관』을 집필하고 있다. 말하자면 오조법연에 의해서 주목받기 시작하고 대혜종고에 와서 간화선의 기본 공안으로 채택된 무자 공안이 『무문관』에 와서는 간화선의 핵심 공안(『무문관』 제1칙)으로 정착된 셈이다.

◎ 무문관, 벽암록, 종용록의 차이점
무문관』에는 『벽암록』이나 『종용록』에는 전혀 언급되지 않은 공안이 다수 수록되어 있는데, 예를 들면 앞서 이미 언급한 제35칙 천녀이혼(倩女離魂), 제38칙 우과창령(牛過窓櫺), 제20칙 대력양인(大力量人), 제8칙 해중조거(奚仲造車), 제4칙 호자무수(胡子無鬚) 등이 그것이다. 이 공안들은 무문과 동시대거나 무문보다 약간 앞선 시대 선승들의 공안인데 바로 이 점이 『벽암록』, 『종용록』과 다른 점이다.

그러면 『벽암록』, 『종용록』, 『무문관』 이 셋의 차이는 무엇인가?
첫째, 문장의 측면에서 본다면 『벽암록』의 문장은 날카롭고 이지적이며 『종용록』의 문장은 부드럽고 섬세하다. 반면 『무문관』의 문장은 단도직입적이며 간결하다.
둘째, 체제의 측면에서 본다면 『벽암록』은 고칙 공안(古則公案), 설두 송고(雪竇頌古), 원오극근의 수시(垂示), 착어(著語), 평창(評唱)으로 되어 있다. 『종용록』은 고칙 공안, 천동 송고, 만송행수의 시중(示衆), 착어, 평창으로 되어 있다. 『무문관』은 고칙공안, 무문 자신의 평(評,拈)과 송고로 되어 있다.
셋째, 공안 선별 방식의 측면에서 본다면 『벽암록』은 제1칙 달마의 공안으로부터 시작, 조사선(祖師禪)을 강조하고 있다. 『종용록』은 제1칙 세존(世尊)의 공안으로부터 시작, 불조정전(佛祖正傳)의 정통선을 강조하고 있다. 반면 『무문관』은 조주의 무자 공안으로부터 시작, 일정
한 순서 없이 그냥 무작위로 공안을 뽑았는데 간화선(看話禪)을 강조하고 있다.

『무문관』에는 『벽암록』과 동일한 공안이 다음의 4개밖에 없다. 제3칙 구지수지(俱胝竪指), 제14칙 남전참묘(南泉斬猫), 제15칙 동산삼돈(洞山三頓), 제32칙 외도문불(外道問佛). 그리고 무자 공안을 타파하고 난 다음에나 뚫을 수 있는 다음의 공안 다섯 개가 『무문관』에 고스란히 실려 있다. 제19칙 평상시도(平常是道), 제27칙 불시심불(不是心佛), 제30칙 즉심즉불(卽心卽佛), 제33칙비심비불(非心非佛), 제34칙 지불시도(智不是道)가 그것인데, 이로 미뤄본다면 『벽암록』과 『종용록』을 거쳐 『무문관』에 와서는 공안에 대한 탐구(참구)가 보다 섬세해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공안에 대하여

공안(公案)이라는 말은 원래 공부(公府), 즉 관공서의 결재가 난 공문서[案牘]를 일컫는다. 그런데 이 공안이라는 말이 선에서는 수행의 깊고 옅음을 측정하는 계기판이라는 뜻으로 사용됐다. 즉 불조(佛祖)의 언행이나 문답은 관공서의 결재가 난 공문서처럼 절대적인 권위가 있으므로 이를 ‘공안(公案)’이라 부르게 된 것이다. 이 공안이라는 말을 처음으로 선의 용어로 사용한 사람은 당대(唐代)의 선승 황벽(黃檗)이다.
공안은 당대에 발전하고 송대에 와서 크게 흥성했는데 송대에 들어와서는 이 공안에 접근하는 다섯 가지 방법이 제시되었다.

①대어(代語): 묻는 자가 대답하는 자 대신 대답하는 것
②별어(別語): 상대의 대답이 신통치 않을 경우, 물었던 자가 대신 대답하는 것
③송고(頌古): 고칙 공안의 경지를 송(頌)으로 읊는 것
④염고(拈古): 고칙 공안에 대한 산문적인 해설
⑤평창(評唱): 고칙 공안에 대한 평론과 제창(提唱, 배경 설명이나 보충 설명)
번역: 석지현
우리나라에 ‘선시’라는 장르를 처음으로 알렸으며 특유의 감각적 시선으로 작품을 자신만의 색채로 새롭게 읽어냈다.
1969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부문 당선. 1973년 동국대학교 불교학과 졸업하였다. 이후 인도, 네팔, 티베트, 미국, 이스라엘 등지를 수년간 방랑했다. 편ㆍ저ㆍ역서로는 《선시禪詩》, 《바가바드 기따》, 《우파니샤드》, 《반야심경》, 《숫타니파타》, 《법구경》, 《불교를 찾아서》, 《선으로 가는 길》, 《벽암록》(전5권), 《왕초보 불교 박사 되다》, 《제일로 아파하는 마음에-관음경 강의》, 《행복한 마음 휴식》, 《종용록》(전5권), 《선시 감상사전》(전2권), 《임제록》, 《선시 삼백수》, 《가슴을 적시는 부처님 말씀 300가지》 등 다수가 있다
선시로 보는 무문관|번역 석지현|민족사|값2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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