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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2-03-30 20:01
[불자소식] 대한불교조계종, 15대 종정 중봉 성파 대종사 추대
 글쓴이 : 전수진기자
 

<상>조계종은 3월 30일 서울 조계사에서 제15대 종정예하 중봉성파 대종사 추대법회를 봉행했다. 

<중> 조계종 15대 종정예하 중봉 성파 대종사가 총무원장 원행스님으로 부터 법의 상징인 법장을          받고 높이 들어 보이는 모습
<하>추대법회에는 문재인 대통령 내외 등 정관계 인사들이 대거 참석했다. 
      사진은 참석대중이 삼귀의를 하고 있는 모습


대한불교조계종은 3월30일 서울 조계사 대웅전 앞마당에서 제15대 종정 성파대종사 추대법회를 봉행했다.

추대법회에는 조계종 총무원장 원행스님,원로의장 세민스님을 비롯한 원로, 교구본사 주지,중앙종회의원, 중앙종무기관 스님,한국불교종단연합회 소속 종단 대표, 문재인 대통령을 비롯한 정관계 인사, 이웃종교대표, 스리프리야 란가나탄 주한 인도대사 등 각국 대사,주윤식 중앙신도회장을 비롯한 신도대표 등 사부대중 3000여명이 동참했다.

이날 원로의장 세민 대종사와 총무원장 원행스님은 종정 예하의 추대를 축하하며 추대법회를 종단과 한국불교 도약을 위한 계기로 삼자고 강조했다. 원로회의 의장 세민 대종사는 “이 자리는 종단의 법통을 계승하고 최고의 권위와 존엄을 갖춘 새 종정예하를 모시는 자리”라며 “성파 종정시대를 맞아 종단은 새로운 변화와 개혁으로 또 한 번의 중흥을 이룩해야 할 것이며 종정예하의 덕화로 불일을 더욱 밝아지고 곳곳에서 도업이 넘칠 것”이라고 밝혔다. 

총무원장 원행스님도 “늘 올바른 규율로 지계는 청정해야 하고 화합을 통해 널리 세상을 이롭게 하라는 종정 예하의 교시는 모든 중생의 지안을 밝히는 지남”이라며 “종정 예하의 정진력과 지혜의 덕화를 호지해 무량한 등불로 세상을 비출 수 있도록 다함께 정진하자. 새로운 출발의 자리가 불교의 중흥과 국민들의 행복, 나라의 평화가 실현되는 디딤돌이 되기를 성심으로 바란다”고 말했다.

이어 원로회의 부의장 학산 대원 대종사가 불자(拂子)를, 총무원장 원행스님은 법장(法杖)을 각각 종정예하에게 봉정하며 예경을 표했다.

추대 법회에 참석한 문재인 대통령은 “통도사에서 종정 예하를 여러 번 뵌 적이 있다. 그 때마다 큰 가르침을 받았고 정신을 각성시키는 맑고 향기로운 기억으로 간직하고 있다”며 “종정 예하께서는 일과 수행, 삶과 예술, 자연과 문화가 결코 둘이 아니라는 선농일치를 실천하셨다. 종정 예하와 조계종이 품어온 정신과 예술의 향기가 세상에 널리 퍼져나가길 바란다”고 밝혔다.

------다음은 중봉 성파 종정 예하 현장법어------------------

세계의 평화와 나라의 융성과 만민의 함락을 간절히 간절히 기원합니다. 오늘 일기도 고르지 않는데, 문재인 대통령님 내외분과 각계각층의 어르신들이 이렇게 많이 참석하여 주셔서 대단히 감사하고 깊은 경의를 표합니다.

오늘 종도 여러분들께서는 동중에 공부하는 분들이 정중의 공부를 망각한다거나, 정중의 공부하는 것들이 동중에 공부하는 것을 도외시하는 것을 삼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판과 사판이 따로 없고 동중에서 공부하는 것과 정중에서 공부하는 것이 따로 없어야 한다는 것이거든요. 우리 대한불교는 호국불교라고 했습니다. 과연 이 시대에 호국을 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 한번 생각해봐야 할 것입니다.

외형적으로는 그렇다손 치더라도 내형적으로는 우리 불교는 옛날부터 토목과 건축과 조각과 미술과 모든 생활문화에 이르기까지 우리 민족문화에 중추적인 역할을 해왔다 볼 수 있습니다. 비근한 예로 남녀평등문제만 하더라도 1700년 전 만 해도 여왕이 세 번이나 정식 국가를 갖추었습니다. 서구에서 여왕이 언제 났습니까? 우리는 천년이나 앞섰습니다. 우리는 출판, 문화, 인쇄 분야에도 우리가 세계에서 으뜸이고, 한지 종이만 하더라도 전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종이가, 가장 많이 남아있는 것이 우리의 한지입니다. 일일이 다 말하지 않더라도 여러분들께서는 저보다도 더 잘 아시고 계실 거라 믿습니다.

알고 계시겠지만, 우리 역사는 덮어놓고 외래의 것에 눈을 돌리고, 외래의 것만 선호하고, 새로운 건 얼마든지 받아들이는 건 좋지만, 우리의 뿌리 깊은 역사와 문화를 바탕으로 잘 이어 나가고 잘 지켜나가고 미래지향적으로 발전 해야 된다, 그것을 여러분들이 잘 알고 있을 겁니다. 우리 불자 여러분들은 그런 면에서 민족 문화의 책임을 지고, 민족 문화 창달에 노력해야 국태민안을 가져올 수 있는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산에서 염불하고, 목탁 치는 걸 다 하겠지만, 이 국가에 기여도가 있어야 합니다. 아무리 앉아있어도, 가지 않으려 해도 가는 것이 인생의 길입니다. 인생의 길을 가지 않는 사람이 누가 있습니까. 그런 중에 우리는 우리 민족 문화에 대한 것을 우리 불교계에서 많이 해왔고 앞으로도 많이 노력해서 전 세계 사람들에게 우리의 문화를 많이 알리고 우수성을 드날려야 된다. 또 많은 사람들이 본받게 해야한다. 그런 것을 오늘 좀 말하고 싶습니다.

특별한 법문은 많이 준비를 했는데 양산 통도사에서 여기까지 오는 동안에 싹 다 잊어버렸어요. (대중 박수)

그래서 우리가 일상적으로 할 수 있는 말로써 법어를 대하고자 합니다. 계절의 봄은 분명히 왔지요? 꽃이 피었지요? 우리 인간들의 마음은 그렇게 냉각한지. 왜 그리 안 풀리는지. 왜 꽃을 못 피우는지. 우리 불자 여러분들은 이 사회의 이 세계의 얼어붙은 마음들을 따스한 화합하는 기분으로 굴려서 인간에게 얼굴에 웃음꽃이 피울 수 있도록 그렇게 사회에 기여하는 것이 우리 불자의 임무와 책임입니다. 그런 것을 여러분들은 명심하기 바랍니다. (대중 박수)

그리고 가지 않을래야 가지 않을 수가 없는 길이 인생길 인데, 우리가 나이가 칠십이나 팔십이나 되면 인생길을 많이 걸어왔다. 경험도 많다 아는 것도 많다. 이렇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싹 다 잊어버리고, 그야말로 시작하는 마음으로 초심으로 돌아가서 인생의 길을 새로 출발하는 기점을 삼았으면, 오늘 15대 조계종 종정 짐에게 축하하러 온 여러분들에게 축하보다도 부탁하는 말씀이고, 또 그것이 효과가 있다면, 여러분들에게 선물을 드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초발심으로 돌아가자, 이때까지 있던 것들을 싹 지워버리고 새로 전부 출발하면 전부 우리 마음과 우리 가정과 우리 사회와 우리 국가가 새로운 출발을 할 수 있지 않겠나? 생각을 합니다. (대중 박수)

“초발심시 변정각이로다 나무아미타불”


-----  중봉 성파 종정 예하 행장-------------

중봉 성파 대종사께서는 1960년 10월 15일 통도사 노천 월하 화상을 은사로 사미계를 받으셨고, 그로부터 10년 뒤인 1970년 4월 7일 월하스님으로부터 구족계를 수지 하셨습니다. 1971년 1월 15일 통도사 승가대학을 졸업하시면서 당시 통도사 강주이신 운조 홍법스님으로부터 ‘한영-운허-홍법’으로 이어지는 강맥을 전수하셨으며, 이후 통도사 강주를 역임하셨습니다.

또한 1998년 봉암사 태고선원 수선안거 이래 상원사 청량선원을 거쳐 2000년 4월에 통도사 서운암에 무위선원을 열고 총 27안거를 성만하셨을 뿐만 아니라, 2002년 2월에는 당시 영축총림 방장이신 노천당 월하 대종사로부터 ‘환성문하 13세손으로서 크게 법을 펴라’는 말씀과 더불어 ‘인인각지자등화(人人各持自燈火) 기대일월심전로(豈待日月尋前路)’의 전법게 및 ‘중봉(中峰)’이라는 법호를 함께 받으셨습니다.

1920년 6월 천보 구하 대종사께서 쓰신 <환성종계책(喚惺宗契冊)>에 의하면, 환성 지안스님의 11세조가 태고 보우스님이고 환성 지안스님의 문하에서 응암, 용파 두 스님이 나오셨으며, 조선 후기 통도사의 주요 문파를 이루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후 양 문중을 합쳐 환성종계(喚惺宗契)라 하였고 책의 말미에 구하스님이 환성 지안스님의 11세손임을 밝히고 있음을 볼 때, 구하스님의 상좌인 월하스님이 12세손, 월하스님의 상좌로서 전법 받으신 중봉 성파 대종사께서 환성문하 13세손이 되심을 알 수 있습니다.

스님께서는 교육 및 문화활동에도 꾸준히 힘을 기울여 오셨는데, 1980년 2월 당시 어려운 환경에 처해있던 학교법인 원효학원 해동 중고등학교의 이사장을 역임하셨으며, 이어 1988년 5월 원효학원이 범어사와 분립되자 학교법인 영축학원을 설립하시고 38년간 종립학교 발전에 크게 이바지하셨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성파 시조문학상 및 전국 시조백일장을 제정하여 한국 시조문학 발전에 큰 역할을 하셨으며, 사단법인 영축전통문화연구원 및 한국전통문화연구원을 설립하여 통도사 및 한국문화발전에도 크게 기여하셨습니다.

또한 스님께서는 1980년 대한불교조계종 사회부장, 교무부장, 규정부장으로서 종단발전에 힘을 기울이셨고, 1981년 3월에는 통도사 제20대 주지로서 취임하시면서 교구본사 및 지역불교 발전에도 진력하셨습니다. 그리고 통도사 주지에서 물러나신 후에는 모든 소임을 내려놓으시고 통도사 서운암 감원으로 주석하시며 선(禪) 수행에 온전히 매진하셨습니다.

2000년 4월 서운암에 무위선원을 개원하신 이후에는 선농일치(禪農一致)의 정신을 선양하시며 사라져 가던 통도사 차밭을 재건하시고 황무지에 야생초 및 감나무밭을 일구기도 하셨습니다. 그리고 사찰이 지닌 고유한 문화와 예술을 발굴하고 이를 선의 정신과 접목한 선예일치(禪藝一致)를 추구하시면서 다양한 활동을 겸전(兼全)해 오셨는데, 1991년부터 2012년 4월까지 21년에 걸쳐 도자기를 구워 제작한 16만 도자대장경을 조성하고 장경각을 건립하여 모셨으며, 천연염색 및 새로운 옻칠기법을 개발하여 사찰단청과 건축, 도자기 및 그림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영역에 적용시키기도 하셨습니다. 최근에도 사찰로부터 유래한 한국 전통회화인 민화에 옻칠기법을 접목하는 등 다양한 예술영역을 개척해 나가고 계시는 동시에 불화, 경전 등 사찰불사의 바탕이 되는 우리 한지(韓紙) 개발에도 힘을 기울이고 계십니다.

2013년 4월 대한불교조계종 원로의원이 되신 스님께서는 2014년 1월 조계종 최고 품계인 대종사 법계를 품수하셨으며, 2018년 3월 산중총회를 통해 영축총림 제4대 방장에 만장일치로 추대되신 이래 한국 선불교의 종장이시자 불교문화 세계화의 선두로서 자리매김하셨으며, 2021년 12월 종정추대위원회를 통해 대한불교조계종 제15대 종정에 만장일치로 추대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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