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계종 원로의장 세민스님은 추도사에서 “대종사는 우리 선문을 지켜온 기둥이었으며 육조의 현지와 임제의 현의를 드날리고 우리 선문의 기보와 당간지주를 높이 세운 눈 밝은 선지식이었다”며 “해인사 선원을 비롯해 봉암사 등 제방의 선원에서 본래면목을 참구해 영축의 종지를 밝히고 백척간두에서 진일보 하는 정진으로 불조의 의단을 타파하고 갈고닦은 지혜로 불조대기를 터득한 백납의 운수였다”고 강조했다.
이어 “스님의 수행행지는 청빈하셨다. 일의일발은 한평생 살림살이였고 버리지도 구하지도 않는 것이 스님의 가풍이었다”며 “이제 스님의 걸림 없는 모습과 직절의 기봉과 날카로운 선지를 볼 수 없게 됐다. 누구에게 격외의 진수를 묻고 배워야 합니까”라고 애도했다.
전국수좌회 공동대표 일오 스님은 “선사께서는 불법의 근본종지가 중도임을 거양하시고 중도를 체득하는 실천이 바로 선(禪)임을 사자후하셨다”며 “오매불망 불교중흥과 선풍진작을 염원하기고 간화선 중흥을 위해 종단 차원의 숙제선센터를 건립해 인재 양성을 발원하고 선원수좌회 차원에서 봉암사 세계명상마을 건립을 적극 성원했다”고 업적을 기렸다.
스님은 “이제 사바의 언덕에서 스님의 따뜻한 미소 다시 볼수없고 스님의 정연한 법설 거듭 들을 수 없게 됐으니 저희 사부대중은 어디에서 가르침을 구해야 할지 혼망하다”며 “고우 대선사의 영전에 조주선차 한잔 올려 전국선원수좌들의 애도의 마음 담았다”고 헌다했다.
오전11시50분. 영결식이 끝나고 은암당 고우대종사의 법구는 봉암사 연화대로 옮겨졌다. 사부대중의 ‘나무아미타불’ 합송이 울려 퍼지는 가운데 거화 의식이 치러졌다. 평생을 간화선 중흥에 매진한 대종사의 뜨거운 원력을 닮은 붉은 불길 속에 타올랐다.
한편 은암당 고우 대종사 초재는 9월4일 오전10시 봉암사에서, 2재는 9월11일 금봉암에서, 3재는 9월18일 충주 석종사에서, 4재는 9월25일 공주 학림사에서, 5재는 10월2일 봉화 축서사에서, 6재는 10월9일 고양 흥국사에서, 49재는 10월16일 봉암사에서 봉행된다.
고우 대종사의 초재는 9월 4일 봉암사에서 거행된다. 2재는 9월 11일 봉화 금봉암에서, 3재는 9월 18일 충주 석종사에서, 4재는 9월 25일 공주 학림사에서, 5재는 10월 2일 봉화 축서사에서, 6재는 10월 9일 고양 흥국사에서, 마지막 49재는 문경 봉암사에서 봉행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