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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06-08 22:18
[종단소식] 조계종 진제 종정예하 불기 2564년 경자년 결제 법어 발표
 글쓴이 : 곽선영기자
 

조계종 진제 종정예하가 불기 2564년 경자년 하안거 결제를 맞아 법어를 내렸다.


진제 종정예하가 6월 6월  불기 2564년 경자년(更子年) 하안거 결제를 맞아 "중생과 모든 부처님이 서로 침범하지 아니하며, 산은 스스로 높고 물은 스스로 깊음이로다. 만 가지 천 가지로 다름이 모두 이 진리를 밝힘이니 자고새 우는 곳에 온갖 꽃이 새롭도다."라고 설했다.

 

이어서 "대중(大衆)들이 이렇게 모여서 삼하구순(三夏九旬)동안 산문(山門)을 폐쇄하고 모든 반연(攀緣)을 끊고 불철주야(不撤晝夜) 정진(精進)에만 몰두하는 것은 끝없는 생사윤회의 고통에서 영원히 벗어나기 위함이다."라고 설했다.

  

또한 "만약, 보고 듣는 것에 마음을 빼앗겨 털끝만큼이라도 다른 생각이 있거나, 게으른 마음이 있으면 화두는 벌써 십만 팔 천리 밖으로 달아나 버리고 과거의 습기(習氣)로 인한 다른 생각이 마음 가운데 자리 잡고서 주인노릇을 하고 있음이라."라고 전했다.

 

이어서 "이 공부는 요행(僥倖)으로 우연히 의심이 돈발(頓發)하고 일념(一念)이 지속되는 것이 아니고, 시간이 지나간다고 저절로 신심과 발심이 생겨나는 것도 아니다. 확철대오(廓撤大悟)에 대한 간절함이 사무쳐서 마치 시퍼런 칼날 위를 걷는 것 같이 온 정신을 모아 집중하지 않는다면 절대 성취하기 어려운 것이다."라고 당부했다.

 



다음은 조계종 진제 종정예하가 발표한 하안거 결제 법어이다.

    




庚子年 夏安居 宗正猊下 結制法語

 

상당(上堂)하시어 주장자(拄杖子)를 들어 대중에게 보이시고,

 

 

衆生諸佛不相侵(중생제불불상침)

山自高兮水自深(산자고혜수자심)

萬別千差明此事(만별천차명차사)

鷓鴣啼處百花新(자고제처백화신)

 

중생과 모든 부처님이 서로 침범하지 아니하며

산은 스스로 높고 물은 스스로 깊음이로다.

만 가지 천 가지로 다름이 모두 이 진리를 밝힘이니

자고새 우는 곳에 온갖 꽃이 새롭도다.

 

 

중생과 모든 부처님이 서로 침범하지 아니한다는 것은 각각 자기의 위치에서 진리의 낙을 누린다는 말이다.

어째서 그러하냐?

산은 스스로 높음이요,

물은 스스로 깊음이로다.

 

 

금일(今日)은 경자년(更子年) 하안거(夏安居) 결제일(結制日)이라.

 

대중(大衆)들이 이렇게 모여서 삼하구순(三夏九旬)동안 산문(山門)을 폐쇄하고 모든 반연(攀緣)을 끊고 불철주야(不撤晝夜) 정진(精進)에만 몰두하는 것은 끝없는 생사윤회의 고통에서 영원히 벗어나기 위함이다.

 

중생에게는 숙세(宿世)의 업식(業識)이 태산처럼 가로막고 있고, 번뇌가 파도처럼 쉼 없이 밀려옴이라. 마치 흐르는 물을 거슬러 올라가는 배와 같아서 노를 부지런히 저으면 앞으로 나아가는 듯 하다가, 멈추면 뒤로 밀려가는 것과 같다. 간단(間斷)없는 정진만이 진취(進就)가 있고 궁극에는 진리의 문에 들어서게 됨이라.

 

수십 년 결제안거를 빠지지 않고 하였음에도 득력(得力)을 하지 못하는 이유가 어디에 있는가? 그것은 반연(攀緣)과 습기(習氣)를 놀아나서 온갖 분별(分別)과 망상(妄想)과 혼침(昏沈)에 시간을 다 빼앗겨서 화두일념(話頭一念)이 지속되지 않았기 때문이라.

 

만약, 보고 듣는 것에 마음을 빼앗겨 털끝만큼이라도 다른 생각이 있거나, 게으른 마음이 있으면 화두는 벌써 십만 팔 천리 밖으로 달아나 버리고 과거의 습기(習氣)로 인한 다른 생각이 마음 가운데 자리 잡고서 주인노릇을 하고 있음이라.

 

이 공부는 요행(僥倖)으로 우연히 의심이 돈발(頓發)하고 일념(一念)이 지속되는 것이 아니고, 시간이 지나간다고 저절로 신심과 발심이 생겨나는 것도 아니다. 확철대오(廓撤大悟)에 대한 간절함이 사무쳐서 마치 시퍼런 칼날 위를 걷는 것 같이 온 정신을 모아 집중하지 않는다면 절대 성취하기 어려운 것이다.

 

 

화두(話頭)가 있는 이는 각자의 화두를 챙기되,

 

화두가 없는 이는 부모에게 나기 전에 어떤 것이 참나인가?” 하고 이 화두를 가나 오나, 앉으나 서나, 밥을 먹으나 산책을 하나 일체처(一切處) 일체시(一切時)에 화두를 챙기고 의심하기를 하루에도 천번 만번 하여 시냇물이 흐르듯이 끊어짐이 없도록 애를 쓰고 애를 써야 할 것이라.

 

이 부처님의 진리는 스님네만의 전유물이 아니고, 누구든지 눈 밝은 선지식(善知識)을 만나서 바른 지도를 받아 착실히 수행해 갈 것 같으면, 금생(今生) 한 생에 이 일을 다 마쳐 한가한 무사장부(無事丈夫)가 될 수 있다.

 

이 최상승법(最上乘法)에서는 승속(僧俗)이 따로 없다. 마음이 열려야 되는 것이지 형상(形相)을 논하는 법이 아니다.

 

어느 누구라도 대신심(大信心)과 대용맹심(大勇猛心)을 내어 명안종사(明眼宗師)의 지도에 따라 빈틈없이 정진하여 나간다면, 참구(參究)하는 일을 다 마치고 진리의 위대한 스승이 되어서 천상천하(天上天下)에 홀로 걸음하게 될 것이다.

 

중국의 당나라 시대에 방거사라는 훌륭한 거사(居士)가 있었다.

 

() 거사는 부처님 선법(禪法)이 유래한 후로, 마을 거사로서는 가장 으뜸가는 안목(眼目)을 갖춘 분이다. 그간에 무수한 거사(居士)와 보살(菩薩)들이 이 최상승 선법을 닦아서 깨달음을 얻었지만, 방 거사의 안목을 능가할 만한 기틀을 갖춘 사람은 없다.

 

방 거사 당시는 마조(馬祖)석두(石頭) 선사 두 분이 쌍벽을 이루어 당나라 천지에 선법(禪法)을 크게 선양(宣揚)하시던 때였다.

 

그래서 당시에 신심 있고 용맹 있는 스님네들과 마을 신도들은 모두 두 분 도인을 친견하여 법문을 듣고 지도를 받았다.

 

하루는 방 거사가 큰 신심과 용기를 내어 석두 선사를 친견하러 가서

() 삼배(三拜)를 올리고 여쭙기를,

"만 가지 진리로 더불어 벗을 삼지 아니하는 자, 이 어떤 분입니까?"

하고 아주 고준(高峻)한 일문(一問)을 던졌다.

 

그러자 석두 선사께서는 묻는 말이 떨어지자마자 방 거사의 입을 틀어막았다. 여기에서 홀연, 방거사의 마음광명이 열렸다.

 

"스님, 참으로 감사합니다."

 

거사는 석두 선사께 큰 절을 올려 하직인사를 하고는, 그 걸음으로 수백 리 길을 걸어서 마조 선사를 친견하러 갔다.

 

마조 선사 처소에 이르러 예() 삼배(三拜)를 올리고 종전과 같이 여쭈었다.

 

"만 가지 진리로 더불어 벗을 삼지 아니하는 자, 이 어떤 분입니까?"

 

"그대가 서강수(西江水) 물을 다 마시고 오면 그대를 향해 일러 주리라."

 

마조 선사의 고준한 이 한 마디에 방 거사의 마음광명이 여지없이 활짝 열렸다. 제불제조(諸佛諸祖)와 동일한 안목(眼目)이 열렸다는 말이다. 그리하여 여기에서 마조 선사의 제자가 되었던 것이다.

 

그런 후로, 집에 돌아와서 대대로 물려받은 가보(家寶)와 재산을 전부 마을 사람들에게 흔연히 보시(布施)하였다. 가족은 부인과 딸이 하나 있었는데, 개울가에 오두막집을 한 칸 지어놓고, 산죽(山竹)을 베어다가 쌀을 이는 조리를 만들어 팔아서 생활 하면서 참선수행(參禪修行)에 몰두하였다. 마침내 온 가족이 진리의 눈을 떴다.

 

 

하루는 방 거사가, 딸의 진리의 기틀을 시험해 보기 위해서 한 마디를 던졌다.

"일백 가지 풀끝이 다 밝고 밝은 부처님 진리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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