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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8-03-15 18:12
[교양/문화] 국립경주박물관 ‘왼손에 칼을 든 녹유신장상’ 전시
 글쓴이 : 박성희기자
 

국립경주박물관은 ‘왼손에 칼을 든 녹유신장상’을 전시한다.


국립경주박물관(관장 유병하)과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소장 이종훈)는 공동으로 ‘사천왕사(四天王寺) 녹유신장상(綠釉神將像)’ 3가지 유형을 8월 5일까지 경주박물관 신라미술관 1층에 진열한다.


올해는 경주 사천왕사지 발굴이 시작된 지 100년이 되는 해로써, 이번 전시는 100년 동안 각각 다른 기관에 떨어져 보관되던 7점의 파편을 복원해 최초로 공개하는 자리이다.


사천왕사는 679년에 문무왕(재위 661~681년)이 경주 낭산 신유림(狼山 神遊林)에 건립한 호국사찰이다.  낭산 신유림은 신라를 공격하는 당(唐)나라의 해군을 막기 위해 승려 명랑(明朗)이 밀교 의식을 설행한 곳으로 사천왕사는 신라의 중요 사찰이었다.

사찰은 고려 초까지 번성했지만 고려 말부터 쇠락해 조선 시대에 폐사됐다. 사천왕사에 대한 근대적인 재인식은 1915년 아유카이 후사노신(鮎貝房之進)이 서탑지에서 녹유신장벽전의 깨어진 조각 일부를 수습하면서 시작했다.


경주 사천왕사 녹유신장상은 1915년 최초 발견 당시, 세 종류의 벽전은 무엇인지 파악하기 힘들 정도로 부서져 깨어진 조각(파편)만이 옛 경주 사천왕사 자리에 묻혀 있었다. 큰 눈과 콧수염, 날개가 달린 투구와 화려한 갑옷, 신발 또는 맨발로 칼 혹은 화살을 든 무장 3명이 험악한 표정의 생령(生靈)을 깔고 앉아 보는 이를 주시한다. 앞을 지나가면 각기 달라져 보이는 장수의 표정에서 이들이 범상치 않은 존재임을 직감할 수 있다.


조선총독부는 1918년에 사천왕사 발굴을 개시했고 1922년부터 ‘고적발굴조사사업’의 하나로 본격적인 발굴을 진행했다. 이는 조선총독부의 필요에 따라 이루어진 발굴로 사찰과 녹유신장상에 대한 정보를 축적하는 수준에 머물렀다. 광복 이후, 발굴 자료와 연구 결과를 토대로 벽전 파편을 조립한 결과, 최소 두 종류의 신장(왼손에 칼을 든 신장과 활과 화살을 든 신장)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 뒤,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가 2006년부터 2012년까지 체계적이고 정밀한 발굴을 거쳐, 200여 점의 파편을 3차원 입체(3D) 스캔하고 이를 참고로 세 종류의 신장을 복원했다. 또한, 이들이 사천왕사지 동·서 목탑 기단 벽면을 장식했음도 밝혀냈다.


사천왕사 녹유신장벽전은 세 종류가 한 묶음으로 탑 한 면에 두 묶음씩 동·서 목탑 기단에 16개의 묶음으로 배치됐으며 벽전의 총 수는 48점인 것도 알게 됐다. 발굴 성과 중 하나로 일제강점기에 수습돼 국립경주박물관이 보관하던 ‘왼손에 칼을 든 녹유신장상’의 하단부와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가 서탑지 북편에서 발굴 수습한 상단부 6점이 같은 상이었음을 확인했다.


2017년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에서 7점의 파편을 조립하고 빠진 부분은 같은 유형의 ‘왼손에 칼을 든 녹유신장상’ 파편을 참고해 이 벽전을 복원했다.


관람객을 대상으로 한 전시 설명회는 매주 수요일 오후 2시부터 2시 30분까지 신라미술관 1층 불교미술 제1실에서 진행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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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손에 칼을 든 신장상(국립경주박물관 소장, 일제강점기 수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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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손에 칼을 든 신장 하단, 2006년 발굴,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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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른손에 칼을 든 신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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