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lkyonews_header.jpg

 
작성일 : 15-02-11 19:26
[교양/문화] 심연옥교수팀,단절된 금사 복원 재현 성공
 글쓴이 : 곽선영기자
 

심연옥 교수팀, 4년만에 복원·재현까지 성공 


 금사(金絲)는 글자 그대로는 금실이다. 하지만 금으로 만든 실이라고 해서 녹인 금을 엿가락처럼 뽑아냈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 이렇게 만든 금실은 뚝뚝 끊어져서 옷감을 짜는 재료가 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옛날 사람들은 금사를 어떻게 만들었을까? 그리고 설혹 금사를 만들었다고 이를 어떻게 짜서 옷감을 만들었을까?  

지금은 전통이 완전히 단절돼 버려 그 실체가 오리무중인 이런 궁금증 해결에 국립문화재연구소와 한국전통문화대학교 전통섬유복원연구소가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그리하여 4년여가 흐른 11일 마침내 그 비밀의 상당 부분이 풀렸다


이번 연구책임자인 복식사 전공 심연옥(55) 교수는 이날 부여에 소재하는 이 대학에서 언론을 상대로 금사 제작 기술과 그 직조 기술을 복원한 사실을 발표하면서 자못 의미심장한 말을 했다.  

"제 선생님이 고 민길자 선생님이십니다. 선생님을 모시고 제가 30년 동안이나 금사의 비밀을 풀고자 했지만 소원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그러다가 제가 이 대학교에 (교수로) 정착하고 훌륭한 학생들의 도움을 받아 마침내 그 비밀을 풀었습니다. 3대 만에 소원을 풀었습니다."

그만큼 복식사에서 금사를 쓴 직물은 고려시대 이래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넘쳐나는데 그 제작 기술은 베일을 벗어나지 못했다.  

이에 국립문화재연구소는 이 문제를 해명하기로 하고, '문화유산융복합연구(R&D)'에 이를 포함해 연구기관으로 전통섬유복원연구소를 지정한 프로젝트를 발주했다. 이 사업은 4년(2011~2014)이 걸렸다.  

심 교수는 "우리의 연구가 완성 단계라고는 할 수 없으며 보완해야 할 부분이 적지는 않다"면서 "하지만 이번 연구를 통해 금사 제작 기술을 확실히 밝혀내고, 그것을 직조한 기술을 복원하는 한편 이를 토대로 실제 유물까지 복원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평가했다. 이를 위해 우선 심 교수 팀은 관련 문헌 조사에 착수했다. 국내 문헌은 물론이고 중국과 일본 문헌 자료까지 총 111종에 달하는 기록을 살폈다. 

금사 재단
금사 재단

그 결과 금사는 형태나 용도, 제작장소, 금사 바탕에 덧대는 종이인 배지(背紙) 등에 따라 명칭이 달랐다. 금사(金絲)·은사(銀絲)·금선(金線)·당금사(唐金絲)·중금사(中金絲)·수중금사(繡中金絲)·수금사(繡金絲)·소금사(小金絲)·대금사(大金絲)·칠중금사(漆中金絲)·양피금(羊皮金)·피금(皮金)·훈금(渾金)·초금(草金)·편금(片金 혹은 編金) 등이 그것이다.

나아가 금사 제작의 가장 중요한 재료인 배지에 대한 용어로 금박지(金箔紙)·요지금(要紙金)·지금(紙金)·금지(金紙) 등을 찾았으며, 아울러 이런 종이에다가 금박이나 은박을 붙이는 접착제로는 아교(阿膠)·당교(唐膠)·주토(朱土) 등을 사용한 흔적이 드러났다.

금사 제작과 직·간접적으로 관련된 조선시대 공장으로는 사금장(絲金匠)·금박장(金箔匠)·연금장(鍊金匠)·재금장(裁金匠)·니금장(泥金匠)·도다익장(都多益匠)·부금장(付金匠)·금전지장(金箋紙匠) 등이 모습을 드러냈다.  

연구팀은 이런 문헌조사를 통해 다양한 종류의 금사가 사용되었을 뿐만 아니라 금사 제작과 관련된 배지, 접착제, 그리고 공장 체제 및 장인에 대한 구체적인 자료를 정리했다. 아울러 이런 기록들을 통해 금사가 수입품이 아니라 한반도에서 자체로 제작했음을 밝혀냈다.

이를 토대로 실제 금사 관련 유물에 대한 과학적인 조사를 했다. 금사의 형태와 색상이 뚜렷한 유물 중에서 국내 소장 37건, 국외 소장 31건으로 총 68건을 선정했다. 한국은 고려·조선시대 이래 대한제국 시기까지, 중국은 요·원·명·청대, 일본은 모모야마시대(17세기)·에도시대(18세기) 유물을 대상으로 삼았다.  

문직기
문직기

그 결과 금사를 제작하기 위한 배지로는 우리나라는 닥지를 사용한 반면 중국은 뽕나무나 대나무를 활용한 상피지와 죽지, 일본은 산닥나무 계통의 안피지를 쓴 것으로 나타났다.

심 교수는 "이런 결과를 통해 이제 금사 직물의 국적을 확실히 하게 됐다"면서 "이전까지는 수입품인지 국산인지조차 확인할 방법이 없었다"고 말했다.

아울러 배지와 금박을 붙이는 접착제로는 금사 유물 배지 표면의 특징과 열화(劣化) 실험 등을 통해 아교와 같은 투명 접착제를 쓰되 주토(朱土)와 같은 붉은색을 섞어 쓰기도 했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이런 여러 과정을 거쳐 연구팀은 실제 금사 제작을 시도했다. 금사 재현에 적합한 배지, 접착제, 금박의 최적 재료 요건을 마련해 이를 실제로 적용해 금사를 제작한 것이다. 얇은 금박을 아교로 한지에 눌러 붙인 다음 여러 공정을 거쳐 마침내 이를 실처럼 재단한 것이다.

문직기를 설명하는 심연옥 교수(왼쪽)
문직기를 설명하는 심연옥 교수(왼쪽)

연구팀은 이렇게 뽑아낸 금실을 실제 유물 복원에 적용했다. 복원 대상으로 고려시대인 1346년 제작한 남색 원앙문 직금 능(藍色鴛鴦紋織金綾)과 16세기 조선시대 금원문 직금 능(金圓紋織金綾) 저고리, 그리고 같은 조선시대 연화문 직금(蓮花紋織金)을 삼았다. 이 중에서 고려시대 유물은 금사 직물을 만들던 전통 수공 틀인 문직기(紋織機)를 이용했으며, 나머지 2점은 서양식 기계 방식을 가미한 자카드(Jacquard) 수공 문직기를 사용해 제작했다.

전통 문직기는 임원경제지가 수록한 그림과 중국에서 현재 전승되는 실물을 참조해 만들었다. 자카드 수공 문직기는 1800년대 자카드 수공 문직기의 원형을 참조해 이미 2007년에 복원한 기구.  

심 교수는 무엇보다 이번 연구를 통해 "무수하게 남은 금사 직물을 전통 방식에 따라 재현하는 길을 열었다는 데서 찾을 수 있다"고 말했다.

국립대구박물관 소장 용인 영덕동 출토 16세기금원문직금능 장저고리
국립대구박물관 소장 용인 영덕동 출토 16세기금원문직금능 장저고리

 



 
   
 



불교일보 동영상 전문채널
서울 불교방송
가장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