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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4-05-13 00:00
[불자소식] 조직의 '번개'에서 불가로 귀의한 수암정사 진공스님
 글쓴이 : 편집국
 
스님의 절집 인연은 61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8남매 중 막내인 스님은 위로 7남매가 모두 죽자 명(命)을 이어야 한다는 부모의 절박함으로 7살에 사찰에 맡겨졌다. 19살까지 절에서 생활하던 스님은 부친이 작고하자 ‘대를 이어야 한다’는 친척들의 권유로 결혼을 하고 곧바로 군에 입대했다. 그리곤 몇년 후 주먹세계에서 5년간 방황했다.

스님은 평택·서울 부산 동래에 차례로 포교원 수암정사를 세우고 부랑아들을 거두었다. 평택에 자리를 잡은 건 ‘번개’시절 미군부대가 있던 평택역전에서 짭짤하게 수입을 올린, 친숙한 지역이었기 때문이다.

평택시장에선 스님을 모르는 이가 없다. 한푼이라도 깎아 살림에 보태야 하기 때문에 별명도 ‘깎는 스님’으로 통한다. “잔칫집에서 음식을 얻어오고 탁발로 밥을 빌어 아이들과 노인들을 먹여살렸습니다. 노인들의 몸을 누일 곳이 없어 담배잎 빻는 공장에 몰래 숨어들어가 잠자리를 마련해주다 쫓겨나기도 했구요.”

요즘은 그나마 형편이 나아졌다. 안성 수암정사에서 제사 지내주고 남은 돈으로 노인들과 고아들을 돌보고 있다. 사실 수암정사는 브로크에 슬레이트 지붕의 형상이어서 절 같지 않다. 하지만 스님은 ‘부처님이 화려한 절집보다 믿음을 보신다’며 생기는 돈을 몽땅 봉사에 쏟고 있다.

그 덕에 거리에 버려진 19명의 고아들을 대학까지 졸업시켜 결혼시켰다. 지금은 대학 2년을 휴학하고 군대간 현래, 방선현(평택 한광중2)·성진(원곡 초등4년)과 무의탁 노인 1명이 스님의 가족이다. 그동안 호적에 올린 아이만도 스님이 낳은 3남매 말고도 스님이 키운 15명이 더 있다.

가족건사말고도 스님은 바쁘다. 95년 5월부터 매주 월요일 평택역전에서 무료급식을 계속하고 있다. 매월 셋째주 일요일엔 원주 소쩍새마을 아이들에게 300그릇의 자장면을, 매월 첫째주 월요일엔 안성 사회복지법인 혜성원의 중증지체장애인들에게 250그릇의 자장면을 나눠준다. 해마다 서울 독립문공원 경로잔치도 마련하고 15명의 스님으로 구성된 교화위원회를 이끌고 월2회 천안 소년교도소를 찾는다. 평택경찰서 경승실장이기 때문에 주 1회 구치인교화도 앞장선다. 고달플 만도 하다. 그러나 스님은 빙그레 웃으며 한마디 던졌다. “과거의 죄를 씻으려면 죽을 때까지 몸바쳐 봉사해도 부족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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