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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4-08-23 00:00
[불자소식] 황룡사 목탑과 잉쉬앤 목탑
 글쓴이 : 편집국
 
잉쉬앤 목탑은 고려 고종 25년(1238), 몽골 병화(兵禍)에 한 줌 재로 변해 영영 사라져 버린 신라 황룡사 목탑을 복원하기 위한 전범(典範)으로 지목되고 있다.  그러나 이같은 이유에 앞서 학술적 비교연구 대상으로서도 일찌감치 한국 학계의 주목을 받아왔다.

두 탑은 건립 연대에서 꽤 긴 간극이 있다. '삼국사기'나 '삼국유사' 등에 따르면 황룡사 목탑은 신라 선덕왕 12년(643), 중국 유학을 마치고 귀국한 승려 자장(慈藏)의 건의로 진흥왕이 건립을 시작한 황룡사에 건립됐다.

북방 거란족의 세운 왕조로서 한동안 중원대륙 북방을 호령한 요(遼)나라가  청수(靑守) 2년인 서기 1056년에 건립한 불궁사 석가탑, 속칭 잉쉬앤목탑(應縣木塔)보다 황룡사 목탑 축조 연대가 400년 가량이나 앞선다.

따라서 모두 9층이며, 재료가 목재라는 등의 외형에만 주목해 두  탑이  모종의 공통점을 지닌다고 안이하게 생각할 수는 없다.

이에 더해 잉쉬앤목탑은 비록 간헐적으로 개보수가 있기는 했으나,  건립  이후 지금에 이르기까지 약 950년 동안이나 원형을 유지하고 있는데 비해,  황룡사는  그 구조가 정확히 어떠했는지를 엿볼 수 있는 자료가 거의 없다.

비록 '삼국유사'에 그 구조와 규모가 간략히 언급돼 있고, 경주와 황룡사  목탑을 탐방한 고려시대 몇몇 시인 묵객들이 읊은 문학작품에서 그 편린을 엿볼 수 있다고 해도 도면이나 그림 자료와 같은 좀 더 '확실한' 자료가 남아있지 않아,  황룡사 복원이 말처럼 쉽지만은 않다.

그렇지만 21세기 한국의 문화재 재창출이라는 측면에서 학계 일부를 비롯해  우리사회 일각에서 황룡사 목탑을 복원해야 한다는 목소리 또한 만만치 않으며,  실제 이런 작업이 추진되고 있다.

이번 명지대 한국건축문화연구소의 '산시성 고건축 하계답사'에 동참한  국립문화재연구소장 출신 조유전(62) 문화재위원도 여기에 속한다.

그 자신 황룡사 발굴조사 책임자였으며, 박사학위 논문 또한  황룡사를  주제로 잡았던 조 위원은 "발굴조사 결과 드러난 바로 그 목탑지 자리에다가 탑을 복원한다면 문제가 심각하겠지만, 인접 지역 적당한 곳에 21세기형 황룡사 목탑을 세우는 방안을 이제는 긍정적으로 생각해 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동안 한국 관련 학계의 잉쉬앤목탑에 대한 관심이 실물이 사라져 버린 황룡사 목탑의 이해를 위한 중요한 참고자료였다면, 이제 관심의 초점이 황룡사목탑 복원으로 옮겨지고 있음을 보이는 대목이다.

비록 창건연대와 그들이 위치한 공간적인 격차 모두 적지 않지만 두 탑이  곧잘 비교 대상이 되는 까닭은 모두 순수 9층 목탑이기 때문이다.

황룡사는 기록에 남아있는 도량형 단위를 어떻게 환산해야 하는가 하는  논란이 있으나, 대략 총높이 80m를 넘는다는 데는 이의가 거의 없다. 잉쉬앤목탑은  총높이 67.31m에 1층 지름은 30.27m로 측정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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